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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Sep 01. 2021

싸가지 없는 착한 딸

20살이 되고 매주 토요일마다 9시부터 4시(짧으면 2시)까지 그리고 매일 저녁 7시부터 가게 마감인 8시까지 엄마 약국에서 일을 했다. 약국에는 직원이 3명이나 있었지만 토요일은 영업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손님들이 몰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바빴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먼저 엄마를 도와주겠다며, 특별한 일(시험기간이나 여행)이 있지 않는 이상은 나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시절 내내 토요일은 약국에서 보냈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안 와도 된다라는 약속을 했지만 양심상 특별한 사정을 만들 수 없었다. 일 하는 엄마를 나 몰라라 하고 놀러 나갈 수는 없었다. 시험기간에도 단 한 번도 일을 빼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만약 평일 저녁에 친구들을 만날 일이 생기면 약국 근처로 약속을 잡아서 중간에 혼자 약국에서 마감을 끝낸 뒤 다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내가 없다고 해도 가게는 문제없이 돌아갔겠지만

엄마는 늘 주위 사람들에게 나를 “유일하게 엄마 도와주는 딸이에요”라며 소개했기 때문에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게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20살이 넘어서도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는 꼴이 불쌍하기도 하고 한심스러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처음에는 일이 끝날 때마다 “수고했어 우리 딸”이라며 고마워하던 엄마는 내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도와주러 온 건데 왜 나한테 화를 내지?’란 생각에 불만이 쌓였지만 '말은 안 해도 엄마가 나한테 고마워하고 있을 거야'라는 마음이 한켠에 있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중간고사 기간 때 일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토요일에 일을 하다가 책상에 놓인 달력을 봤다. 공휴일은 엄마와 둘이서만 일을 했는데 그다음 주에는 추석이 껴 있어서 그 주에는 4일가량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밤에 더 공부해야겠네라고 생각했겠지만 당시 전공 시험들이 몰려 있었기에 아무리 잠을 줄인다고 해도 너무 힘들 것 같았다. 하루 쯤은 빠져도 되겠지란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시험공부 때문에 다음 주 토요일은 못 나와."


당연히 그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내게 뜻밖의 말을 했다.


“싸가지 없는 년”  


순간 벙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빠진 얼굴로 서있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야 시험공부는 평소에 하는 거야. 너처럼 닥쳐서 하는 게 아니고.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서러움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버리니 아빠가 곧바로 따라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며 자초지종을 묻는 아빠에게 있는 대로 말했다. 성적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아빠였기에 이번만큼은 내 편을 들어주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내 머리를 밀치며 말했다.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 너는.”


꾸짖음을 가장한 욕설과 때릴 듯한 제스처를 보이다가 아빠가 방을 나갔고 나는 그렇게 혼자 남겨졌다. 감정이 격해지자 나는 서랍장에 수면제를 찾아 삼켰다.


2시간 뒤에 퇴근한 엄마가 약에 취해 비몽사몽 거리는 나를 끌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무릎을 꿇은 나는 죄인처럼 엄마의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있었다.


“엄마는 네가 약국에서 일하는 거 하나도 안 고마워. 네가 당연히 해야 되는 거지. 어디 싸가지 없게 일을 못한다고 해.”


말을 마친 엄마는 나를 노려봤다.


“앞으로 용돈 못 주니까 네가 알아서 벌어. 알겠냐.”


비굴하게도 나는 그때 매달 받았던 그 30만 원 때문에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되나 고민했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나에게 억울함과 서운함보다는 당장 이번 달의 휴대폰비와 교통비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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