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 ‘죽음과 종교’라는 수업을 들을 적이 있었다. ‘죽음’에 대해 학문적으로 알고 싶다는 취지는 아니었고 무교인 내가 갑자기 ‘종교’에 흥미가 생긴 건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교수님들이 꺼려해 희소했던 금요일 1-2교시 수업이었고 대형 강의임에도 팀플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금요일은 공강을 만드는 학생들이 많아 조금만 인기가 없으면 정원 미달로 폐강됐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수업하기 꺼려하셨다).
나른한 금요일 오전에 어울리는 나른한 수업이었다. 2주에 한번 꼴로 영화를 보고 영화 속에서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 포맷이었기 때문에 조조영화를 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자체 휴강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없었기 때문에 한적한 학내를 누빌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는 점도 좋았고.
그날의 영화는 <버킷리스트>였다.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이 버킷리스트를 함께 이뤄가는데, 영화의 전개 절정 결말이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그런 반전은 찾아볼 수 없는 스토리였다. 수업 후 다음 주까지의 과제는 자신만의 버킷리스트 30개를 작성해 오라는 것. 영화 스토리만큼이나 예상 가능한 과제였다.
자주 가는 카페에 앉아 1부터 30까지의 숫자를 쓰고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렸다. 고3 때 독서실에서 수능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을 수첩에 꾹꾹 눌러 적으며 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고도 하찮은 버킷리스트였다.
해리포터 시리즈 정주행 하기, 베스킨 한 가지 맛으로 하프갤런 사 먹기, 부모님께 근사한 요리 대접하기,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있기.
수능이 끝났지만 나의 버킷리스트는 달성되지 못했다. 막상 시간이 남으니 해리포터는 시리즈는 정주행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31 베스킨 아이스크림은 한 가지 맛으로만 채우기에는 30가지의 다른 맛들의 유혹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먹어본 적도 없는 밀푀유 나베를 해주겠다던 나의 호기로운 포부는 가족들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혀 시도조차 할 수 없었고(평소 저염을 좋아해서 가족들이 내가 한 요리는 배척한다. 그래서 한 입 맛보라고 권유할 때마다 ‘나 답지 않게 요리했어’라며 가족들을 꼬셔야 한다), 또한 그때 마침 아버지가 가죽 소파를 돌 소파로 바꾸는 바람에 하루 종일 누워있기에는 돌 소파는 너무나도 차갑고 딱딱했다.
아무튼 그 리스트 중에서 그나마 남들이 봤을 때 버킷리스트답네 라는 항목은 하나였다.
서핑하기
바다를 좋아하는 내게, 그중에서도 파도를 사랑하는 내게 안성맞춤인 소망이었다. 그러나 대학 입학과 동시에 우울증은 눈에 띄게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우울한 내게 스스로 형벌을 내렸다. 나는 내 안에서 고립되어갔다.
감춰두었던 버킷리스트가 다시 생각나자 나는 애꿎은 커피만 빨대로 휙휙 저으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아 나 서핑해보고 싶어 했지. 그랬었지. 나 바다 좋아했지. 바다 못 본 지 오래됐네”
순간의 사색이 지나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첫 번째 버킷리스트에 다시 한번 서핑을 채워 넣고 꾸역꾸역 30개의 소망을 쥐어짜 내 과제를 제출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과제를 제출하고 바로 바다로 향해 파도를 타고 새로운 인생을 맞이했겠지만 나는 지극히 현실에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하루를 살았고. 아파했으며 웃기도 했고 한없이 우울했다가 무언가에 몰두하기도 했고 도망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21살의 대학생은 사소한 감정에는 조금은 무뎌진 27살이 되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찬란한 바다를 사랑했다. 금방 싫증을 잘 내는 내가 하고 있는 가장 오랜 짝사랑이었으니 말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바다를 만나러 갔다. 파도와 백사장의 경계선에서 발을 담근 채 가만히 눈을 감으면 밀려 오가는 파도에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때마다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내가 바다에 담글 수 있는 건 발목까지였다.
물론 서핑을 하려면 당연히 할 수 있었지만 나는 무서웠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마냥 적게도 보지 않는 스물일곱 살이라는 나이가 된 내게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버킷리스트가 없어지는 게 두려웠다. 눈에 띄게 줄어가던 하고 싶은 일들이 그마저도 현실 속에 타협되어가기 시작해서일까.
“막상 서핑을 탔는데 너무 시시하거나 별거 없으면 어쩌지”
나를 살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그저 시시한 경험으로 버려질까 봐. 공허함이 가득 차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끔은 상상 속 이상으로만 남겨진 일들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으니 말이다. 파리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우울증인 파리 신드롬처럼.
그래서 서핑을 하러 가자는 친구의 물음에 선뜻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하고 나서 별거 없다고 생각되면 어쩌지”라며 머뭇거리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네가 너무 좋아할 수도 있잖아. 왜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별로면 겨울에는 스노우 보드 타고 다시 여름에는 수상스키 타보면 되지! 우리 안 해본 게 얼마나 많은데!”
들뜬 친구의 목소리에 나도 같이 들떠 마침내 버킷리스트의 첫 번째 항목을 지워낼 수 있었다. 바다에 온 몸을 맡겨본 게 대체 언제 적인지. 10년도 더 되어 기억도 나지 않았다.
기대했던 서핑은 기대만큼만 즐거웠다. 이 일을 계기로 파도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 전문 서퍼가 되지는 않을 것이고 수중에 가진 돈 몇 푼을 가지고 무작정 바닷가에 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과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은 딱 기대만큼의 순간이었다.
하나의 파도에는 한 명의 서퍼만 탈 수 있다. 파도를 잡는 순간 그 파도는 파도를 잡은 서퍼만의 파도가 되는 것이다. 또한 보드에 올라타면 시선은 앞으로 고정해야 한다. 두려움에 바다를 내려봤다가는 금방 중심을 잃고 바다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그래서 파도를 잡았으면 그 파도를 믿고 몸을 전부 맡겨야 한다. 자연에 있는 그대로 몸을 맡긴다는 건 가히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순간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내가 미워했던 나 하나뿐이니까.
서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파도가 더 세차게 밀려오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새로운 소망을 꿈꿨다.
수평선 너머로 오는 나의 파도를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