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소개팅 2

추보살의 점지 편

by 이지속

지속은 극단적이긴 하나 이 정도면 자신의 팔자에 남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일례의 소개팅으로 사람에게 질렸다. 굳이 사랑을 남자와 할 필요가 있나 내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혔구나. 난 이제 나와 사랑한다. 지속은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차려먹던 식사도 예쁜 접시에 플레이팅 했으며 연애를 하면 남자와 하고 싶던 소소한 일상을 혼자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인간 자웅동체, 지속은 스스로를 그렇게 칭하며 영혼 없이 웃고 있었다.

어느 날 지속에게 친구가 솔깃한 제안을 하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이 인간 자웅동체로서 생식활동만 불가능할 뿐 모든 걸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점 보러 안 갈래? 뭐 궁금한 거 없어?"

그 순간 지속의 머릿속을 꽉 채운 단어는 '남자'였다. 그랬다. 지속은 남자가 궁금했다. 자신의 DNA에 기록된 무수한 역사를 지속은 거부할 수 없었다. 지속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첫 무속신앙과의 조우를 코 앞에 두고 있었다. 지속은 혹여나 무당이 굿을 해야 한다고 겁을 주거나 부적을 쓰지 않으면 큰 화를 입는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다리를 기괴하게 꺾으며 흰자위만 보인채 신이 들린 듯 연기하여 무당을 당혹스럽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런 볼썽사나운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법당으로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추 보살은 정갈한 말총머리에 화장끼 없는 수수한 얼굴로 회색 개량한복을 입은 채 지속을 맞이했다. 예상과 다른 비주얼로 왠지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추 보살은 지속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고 노빠꾸 지속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팔자에 남자가 있냐고 물었다. 지속은 추 보살이 눈을 감고 집중한 그 짧은 순간 잔뜩 긴장한 채 그녀의 입만 바라보았다.

"있지 없긴 왜 없어."

지속은 그 남자가 키가 크냐고 물었다.

"키는 작아."

조금 실망한 지속은 남자가 잘생겼냐고 물었다.

"못 생겼지."

지속은 이럴 바엔 차라리 팔자에 남자가 없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생각할 때쯤 추 보살이 마저 말을 이었다.

"키도 작고 인물도 없는데 착하네. 만나면 너에게 득이지 실은 절대 없어."

지속은 추 보살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복채를 지불하고 나왔다. 같이 점을 본 친구는 깔깔대며 소지섭, 박해일이 이상형인데 어쩌냐며 웃어댔고 지속은 참담했다. 그리고 며칠 뒤 지속은 같이 점사를 들었던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추 보살이 점지해 준 남자를 찾았는데 만나볼래?"

지속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올 것이 왔구나. 그래 운명아 덤벼라. 내가 맞서 주겠다. 지속은 친구에게 알겠다고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이성적인 지속은 어느새 정신줄을 놓은 채, 운명이란 물살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렇게 병히를 소개받았다. 지금은 폭발하여 사라진 노량진 육교 위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28살 동갑내기 병히는 지속처럼 모태솔로였다. 지속은 늘 생각했다. 어딘가 자신처럼 먹고살기 바쁘고 제대로 된 인연에 닿지 못해 연애를 못해 본 남자 버전 지속이가 살고 있다고 그래서 그를 만나면 단번에 알아보겠노라고. 지속은 병히를 본 순간 짜리 몽땅한 체형에 큰 머리, 자유분방한 이목구비는 보이지 않았다. 지속을 바라보는 반짝이는 동공만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지속의 가슴을 반짝이게 밝혀줄 백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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