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한 번 못 해보고 대학을 졸업한 지속은 고향 영어학원에서 매일 동성 강사들과 어린 학생들, 학부모만 보았을 뿐 이성은 구경도 못했다. 어느덧 서른을 앞두고 있던 이십 대 후반에 지속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연애는 어쩌다 재수 좋게 맞는 복권 당첨이 아니다. 남자를 적극적으로 만나보자!
술도 춤도 영 꽝인 지속이 천안이나 서울로 원정 클럽을 간들 남자를 만날 수 있겠는가? 아니오. 미모가 연예인 급이라 그저 걸어만 다녀도 남자를 홀릴 수 있는가? 아니오. 남자들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성격이 밝고 잘 웃어 동호회 여신으로 굴림할 수 있는가? 아니오. 그렇다면 지속이 남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개팅뿐이었다.
내향적인 지속은 친구의 소개라 할지라도 모르는 남자와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나와 잘 맞을지 각을 재고 따지는 것에 젬병이었다. 솔직히 얼빠라 자리에 앉은 지 3초 만에 소개팅 결과는 판가름 났지만 주선자와의 관계가 있어 끝까지 예의를 갖추던 그녀였다.
한 번은 주말에 대기업에 막 취직을 성공한 남자를 소개받았는데 글쎄 출입증 카드를 목에 걸고 와서 지속을 당황하게 했다. 놀라 출입증을 쳐다보자 남자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외출할 때 버릇이 돼서 자기도 모르게 걸고 나왔다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지속은 어이가 없었다. 듣기론 한 두 달 출근한 걸로 아는데 벌써 버릇씩이나 되어 굳이 주말 소개팅에 대기업 출입증을 목에 걸고 나온 남자는 허세 쟁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허세 쟁이 아웃!
또 한 번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 반토막 만한 미니어처 맨이었는데 지속은 남자의 외모가 귀여워 작은 키도 괜찮았다. 언뜻 나란히 섰을 때 건물 유리에 비친 실루엣으로 보아 163센티의 지속과 비슷하거나 쪼금 더 큰 듯했다. 조근조근 말하는 것도 귀엽고 사람도 괜찮아 소개팅 후 연락을 계속했는데 남자에게 우리 또 언제 보지?물으면 이번 주는 친구 생파가 있어서 못 봐. 그래서 한 주를 기다리다 다시 물으니, 이번 주는 농구 경기 관람 약속이 있어 못 봐 그래서 다시 한 주를 기다리니 정말 미안한데 이번 주는 친구들하고 스키장에 가기로 했어...... 지속은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오르는 걸 참지 못했다. 친구 생파와 농구 경기, 스키장에 밀렸는데 또 웃으며 괜찮아요 다음에 만나요라는 소리가 나오겠는가. 지속은 후 한 숨을 한번 쉬고 남자에게 말했다.
우리 만날 날 내가 정했어요. 다음 생에 인연이 된다면 그때 만나 밥도 먹고 영화도 보죠.
지속은 뭐라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은 뒤 남자의 번호를 차단했다. 미니어처 맨 아웃!
제철회사를 다니던 곱슬머리남은 키도 훤칠하고 안경을 쓴 모습도 지적으로 보여 전반적으로 외모가 괜찮았다. 지속은 드디어 자신의 짝을 만났다고 생각해 의자를 남자 쪽으로 당겨 앉기까지 했다. 곱슬 남도 지속이 마음에 들었는지 묻지도 않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일장 연설하더니 갑자기 지속에게 도둑년이라고 했다. 상황이나 맥락 없는 말에 지속이 놀라니 자신의 마음을 훔친 도둑년이라고 설명하며 배시시 웃었다. 지속은 이래서 연애를 인터넷 짤로 배우면 안 된다고 이리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자신의 순서까지 온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떨궜다. 곱슬남 너 아웃!
또 한 사람.. 이 남자 이야기를 써야 할까 말까 지속은 고민했지만 간략하게 라도 쓰기로 했다. 별칭도 없을 예정이다. 소개팅 첫 만남에 지속의 가슴팍을 한참 보더니 되게 마르셨네요....
오동통한 체형의 지속은 태어나 처음으로 되게 말랐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남자의 시선이 문제였다. 후...
소개팅으로 인연을 찾는 게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빼어날 필요도 없고 잘날 필요도 부자일 필요도 없이 평범하면 되는데 지속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게 평범인 걸 깨달았다. 무엇하나 모자람 없이 모남 없이 중도를 간다는 것. 우리의 지속은 과연 언제쯤 자신의 짝을 만날 수 있을까? 만나기는 하나? 태어나 존재는 하는가?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