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인터뷰 과제 때문에 팀원이 모두 모였다. 문창과 성골 조장은 서로 한가한 시간이 다르니, 단톡에 시간 되는 사람을 구하는 글을 쓰고 여건이 되면 답장을 해 함께 움직이자는 의견을 냈다. 지속은 이런 암묵적인 룰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동의했다. 그리곤 머지않아 깨달았다. 성골들끼리 적극적으로 서로의 인터뷰 파트너가 되어 주었고 지속이 시간 되는 사람을 찾을 땐 단톡이 조용했다. 지속은 서울 지리도 모르고 혼자 중년의 아저씨를 인터뷰할 생각에 막막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확정된 짝을 지어 인터뷰를 다니면 분명 지속과 같은 조가 될 성골이 있을 테니 미연에 방지하고 또 대놓고 나쁜 사람은 되기 싫으니 머리를 잘 썼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지속은 조장을 주축으로 한 성골들에게 분노했다. 그래서 그들 중 누구라도 소설가로 성공하면 예스 24와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별점을 하나만 주고 책은 읽지도 않은 채 쓰레기가 쓴 쓰레기 책이라고 리뷰 테러를 하겠다 다짐했다. (참고로 그들 중 아무도 유명해지지 않아 복수는 아직도 못하고 있다)
그 막막한 순간에 지속은 소개팅으로 만난 병히를 떠올렸다. 독립적이라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안 하는데 이상하게도 병히에겐 아쉬운 소리가 나왔다. 지속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혹시 함께 인터뷰를 가줄 수 있냐 물었고 병히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다. 지속은 무려 세 번의 인터뷰를 병히와 함께 다녔다. 둘 다 차가 없었기에 지하철로 먼길을 다녔는데 병히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지속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질문도 하고 과제에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소개팅으로 딱 한번 본 여자의 부탁을 이리도 들어주다니. 지속은 병히가 타고난 호구이거나 아니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지속은 어쩐지 자신이 병히를 이용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홈쇼핑으로 구매한 립밤을 선물했는데, 병히는 기뻐하며 립밤을 바로 뜯어 바르더니 입술에 치약을 바른 것처럼 쏴 하니 시원하다고 좋아했다.
실은 써보니 지속과는 성분이 맞지 않아 처치 곤란의 립밤이었는데, 작은 선물에도 몹시 좋아하는 병히를 보고 있자니 지속의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고마우니까 병히랑 사귀어야 하나? 연애의 시작이 원래 이런 건가? 카페에 앉아 여러 물음표들로 지속이 어지러울 때 병히가 아이스커피의 빨대를 정신 사납게 계속 휘젓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연애할 생각은 없는 거야?"
"..... 우리 사귈래?"
지속은 그저 연애할 생각을 묻는 병히에게 이렇게 말했다. 병히는 놀랍고 기쁜데 얼떨떨한 표정으로 지속을 바라보다가 정말 잘하겠다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말하곤 첫 연애의 시작을 기념하고 싶다고 지속의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지속은 새초롬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병히는 폰을 공손하게 받쳐 들더니 지속의 사진을 찍었다. 지속은 그런 병히를 빤히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미안하지만 넌 6개월짜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