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기자 생활 1

텃새가 짹짹 웁니다 편

by 이지속

지속은 석사 수료 후 또다시 냉혹한 사회에 던져졌다. 병히와의 연애에 정신이 팔린 지속은 기분이 늘 좋아 분노하는 일이 적었으며 무엇보다 소설이 써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온 지속에게 땔감이 떨어지자 불은 꺼지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지속의 가슴에 매운맛 분노를 심어 줄 무리들이 몰려오고 있었으니 바로 언론사 놈들.

석사학위도 없는 서른의 수료자 지속을 환대할 회사는 없었다. 지속은 더 이상 영혼 없이 돈에 매여 자신을 좀먹는 강사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입사원서를 써냈고 딱 한 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란 연락을 받았다. 그곳은 인터넷 언론사로 인턴을 구하는 곳이었다. 평소 인턴에 대해 싼값에 돌리는 인력쯤으로 여겼지만 절박한 지속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국장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면접을 봤고 바로 다음 주 출근을 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속은 근본 없는 시스템에 얼떨떨했지만 출근하라니 그저 좋았다. 나도 드디어 서울에 살며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구나 꿈꾸던 어른이 비로소 됐었다고 게다가 기자라니. 지속은 부채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머지않아 그 부채를 내던지고 칼춤을 추게 되지만. 지속은 아무것도 모르니 좀 신나게 일단은 놔둬보자.

국장과 정규직 기자 셋, 머리 희끗한 대기자 한 분과 영업부장, 편집기자, 촬영기자,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회장님과 그의 와이프이자 사장님 그리고 지속이 초점 시사의 일원이었다. 취재는 어떻게 하는지 기사는 어떻게 쓰는지 전혀 몰랐던 지속은 첫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듀얼 모니터 앞에 앉았다. 국장은 하루에 15편씩 경제 기사를 쓰면 된다고 뉴시스나 연합뉴스 기사들을 긁어 문장을 손 본채 초점 시사 홈페이지에 올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지속은 등골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자신이 사이비 언론사에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할당된 기사를 다 못쓰고 안절부절못하는 지속을 두고 저녁 7시가 되자 하나 둘 퇴근을 했다. 지속에게 그쯤 했으면 됐다고 첫날이니 다 못 써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8시가 되었고 지속은 울면서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지속은 자신이 불량품이라고 생각했다. 톱니바퀴처럼 모두가 제 몫을 해내고 있는데 지속 혼자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불량 부품이 되어 여기는 맞을까, 저기는 맞을까. 틈새에 억지로 구겨 넣다가 결국 부러지고 마는 애초에 잘못 만들어진 불량품. 밤 10시까지 이미 서울에 계약을 해버린 원룸 월세는 어쩌지 집엔 또 뭐라고 말하지 걱정하며 울고만 있는데,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국장이었다. 챙기지 못하고 퇴근해 미안하다며 울면서 갔다는데 내일 꼭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지속은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별 수가 없었다. 똥인 걸 이미 아는데 찍어 먹어야 하는 기분으로 다음 날 지속은 초점 시사로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지속은 매일 혼났다. 새파랗게 어린 다른 기자들 앞에서 국장에게 혼나니 그들도 지속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서른 살 인턴은 무시를 당해도 억울한 입장이 아니었다. 정규직 세명 기자 중 남자애는 26살이었고 나머지 여자애들은 24살, 23살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남자애는 국장과 밥을 먹었고 여자애들은 지속을 챙기라는 국장의 말에도 은행 볼일을 보러 간단 핑계를 대며 둘만 사라졌다. 그래서 지속은 늘 혼자 점심을 먹었다. 지속은 괜찮았다. 이미 대학원에서 단련했기에 어린 여자애들의 따돌림이 귀여웠다. 다만 지속이 분노했던 건 눈에 보이는 24살 보름 기자의 여우 짓이었다. 보름이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유독 지속을 챙기는 듯 말을 걸었다.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전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언니 취미가 뭐예요? 등등. 남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이 언뜻 보기엔 나이 든 인턴을 챙기는 배려로 보였겠지만 사회생활로 인간에게 이골 난 지속은 보름을 꿰뚫어 본 지 오래였다.

지속도 처음엔 보름이 고마워 성심성의껏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다음 날 같은 질문을 또 하는 보름,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보름은 지속을 엿 먹이듯 똑같은 질문만 계속했다. 지속은 보름이 미친 게 아닌가 생각하다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확신했다. 참다 참다 지속이 그녀의 질문을 씹거나 말없이 보름을 노려보면 국장은 지속에게 화를 냈다. 어린애가 다가가고 싶어서 말을 걸면 좀 받아주라고 그런 성격으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냐고 꾸짖었다. 지속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꼬수운 듯 남몰래 씩 웃는 보름의 입꼬리를 보고 분노했다. 지속은 24살 풋내기에게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우리의 지속이는 노빠꾸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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