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기자 생활 2

구슬픈 한 마리의 기레기 편

by 이지속

초점 시사는 사이비 언론사였으나 지속에게 이상한 짓은 시키지 않았다. 이를테면 미용실 광고 기사를 써줄 테니 기사료를 받고 공짜 파마를 해주길 요구한다거나 식당에 가서 맛집으로 홍보 기사를 써줄 테니 공짜 식사를 대접하라 같은 구걸 말이다. 하지만 언론사로서 제일 이상한 취재 없이 기사를 베껴 쓰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지속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한 마리 기레기가 되어 정처 없이 도심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학원이란 족쇄를 겨우 풀고 나왔더니 이모양이구나. 지속은 어뷰징에 걸리지 않도록 진짜 기자들이 쓴 기사를 요렇게 저렇게 바꿔 쓰느라 머리가 아팠다.

보름이는 뭐가 좋은 지 꽃분홍 키티 키보드와 마우스를 가져와 자신의 자리를 꾸몄는데 파스타집 화장실에 가면 있을 법한 디퓨져까지 자리에 놓고 신나 보였다. 지속은 그 향기가 역겨워 보름의 자리에 갈 땐 숨을 참았다. 되게 못된 계집애인데 그런 보름을 보고 있자니 가끔은 귀여웠다. 단, 보름이 선을 넘기 전까진.

지속은 사무실에서 화장실 쓰기가 불편했는데 이유는 남녀 공용이었다. 한 번은 칸막이 좌변기에서 지속이 볼일을 보는데 밖에서 대기자님이 소변보는 소리를 라이브로 들은 뒤로 지속은 출근하면 물을 마시지 않았다. 두 달 가까이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어 여자분이었던 편집기자에게 말씀드리니 화들짝 놀라며,

"어머나! 이기자, 거긴 팻말만 공용이고 남자 화장실이야 여자 화장실을 3층에 따로 있어. 다른 여기자들이 말 안 해줬어? 그동안 엄청 불편했겠다."

지속은 가슴속 한 동안 잠잠했던 분노가 예열되고 있음을 느꼈다. 기본적인 것도 알려주지 않고 남자화장실을 불편하게 쓰는 걸 다 알면서 킥킥거렸을 보름이와 보름이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23살 기자, 보름 아바타에게도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보름이는 지속만 괴롭혔던 게 아니었다. 지속의 바로 옆자리 대기자님도 무시했는데 이유는 나름 이름 있는 언론사 기자였으나 데스크 자리는 하나뿐이니 이해관계에 밀리고 밀려 관두고 아픈 와이프 병원비 때문에 경비원 일까지 알아보다 초점 시사에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보름은 자신이 대기자의 이력서와 입사원서를 봤다며 급여도 최저시급으로 받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떠벌렸기에 지속도 그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보름은 한 번씩 달콤한 간식을 가져와 직원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지속이에게 과자를 하나 주곤 획 돌아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분명 지속 바로 옆에 대기자님이 계신데 그분에게만 간식을 안 주고 가버린 보름을 보며 설마 일부러는 아니겠지, 실수겠지 하며 애써 불편한 마음을 접었는데 며칠 뒤 간식을 가져온 보름이 또 대기자님만 쏙 빼놓고 빵을 나눠 주는 걸 보면서 지속은 예열된 분노가 끓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지속은 보름이 싫었다. 그럴수록 그녀를 보며 더 활짝 웃었고 새로 머리를 하고 온 날엔 예쁘다고 칭찬했으며 말라 볼품없는 보름의 몸매를 늘씬하다고 칭송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자 어느 날 보름이 지속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고 지속은 기쁜 표정으로 보름, 아바타와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 자리에서 지속은 두 사람의 업무 능력과 미모를 칭찬하며 한 번은 식사대접을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시원하게 식사비를 결제했다. 그 후로 보름과 아바타가 지속을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지속은 달라진 그들의 태도를 보며 작업이 먹혀들었음을 직감했다.

매일 점심을 같이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개인적인 일상도 알게 됐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나이트클럽 죽순이였다. 보름은 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사귀였음에도 몰래 클럽을 다니며 다른 남자들을 만났고 아바타도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있었으나 보름과 클럽을 다니며 일회성 남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보름과 아바타는 초점 시사의 명함을 클럽 남자들에게 마구 뿌리고 다녔다. 지속은 그런 애들과 같은 소속인 게 몹시 부끄러웠다. 비록 정통 언론사를 흉내낸 사이비 회사라 애사심은 진작 개나 줘버린 지 오래였지만, 혹여나 지속의 명함을 본 사람들이 그들과 자신을 같은 취급 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미움을 넘어선 증오가 싹텄다.

지속은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뭐든 글로 돈을 벌 수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러울지 몰랐다. 병히와 가족들은 서울 인터넷 언론사에 기자로 취직한 지속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지속 자신은 속일 수가 없었다. 지속은 자신이 사이비 기자란 생각에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바닥으로 바닥으로 꺼져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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