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기자 생활 3

아리송한 회장님 편

by 이지속

초점 시사의 회장님은 지속의 기준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국장 혼자 기사 승인과 기자들을 모두 관리하는 총책임자였고 회장님은 아침이면 슈트를 쫙 빼입고 성공한 CEO 미소를 직원들에게 날리며 짧은 다리로 졸랑졸랑 걸어 들어왔다. 들리는 바엔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사무실로 손님이 자주 왔고 그들을 대접하는 다과상은 인턴 지속의 몫이었다. (이건 창피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업무다) 손님이 오면 기사를 쓰다 말고 벌떡 일어나 인사를 드리고 회장실로 차를 내었다. 그럴 때면 회장은 인자한 미소로 고맙습니다 하며 겉치레로 인사를 전했다.

한 날은 회장이 지속을 호출했는데, 지속 바로 뒤가 회장실이라 그냥 불러도 들리는데 굳이 전화를 걸었다. 지속이 들어서자 뭔가를 짧은 손가락으로 꼼지락대는 회장이 보였다. 회장은 제법 크기가 큰 스펀지를 가위로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며 진지한 표정이었다. 저 인간이 뭘 하는 거지 지속은 흔들리는 동공을 회장에게 주시하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회장은 지금 인체공학적 베개를 연구 중에 있다고 근엄하게 말했다. 지속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지 어리둥절했다. 인체공학에 가위질이 웬 말인가 싶었지만 너무도 진지한 회장의 눈빛에 압도당해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회장은 지속에게 대학원 논문은 완성했는지 물었고 지속은 못했노라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3백만 원이면 완성된 졸업논문을 받을 수 있는데 왜 미련을 떠냐며 맞은편 액자를 가리켰다. 그곳엔 회장이 받은 석사학위장이 높게 걸려있었다.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교 학위였다. 지속은 저건 범죄인데 회장이란 작자는 대체 정체가 뭔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순간 회장은 A4용지 한 장을 꽉 채운 원고를 지속에게 말없이 건네줬다. 받아 읽어보니 베개를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한(짧은 손가락으로 가위질 한 ) 세상에 없던 베개가 왔다.(계속 없어도 되니 가라) 지속은 처음부터 끝까지 빽빽하게 거짓으로 가득한 원고를 속으로 바른 언어로 바꾸며 피식 웃었다. 회장은 지속의 미소를 긍정적으로 보았는지 더 멋지게 고쳐오라며 시켰고 지속은 알겠다고 말하며 회장실을 나왔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냐. 지속은 그렇게 한참을 멍을 때렸다. 요상한 인간을 피해 왔더니 더 요상한 인간을 만났다. 이 정도면 굿을 하거나 머리를 밀고 비구니가 되어 산으로 떠나야 할 판이었다. 지속은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이 지긋지긋했다.

그럼에도 매사 최선을 다하는 지속이 아니던가. 머리를 싸매고 집에 가서까지 원고를 수정해 다음 날 회장에게 주니 크게 칭찬하며 역시 문예 창작과는 다르다고 자신이 먹기 위해 사온 샌드위치를 노고의 대가로 주었다. 지속은 회장이 준 편의점 샌드위치를 한 손에 든 채 회장실을 나오며 꺼이꺼이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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