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프러포즈

한강에 반지를 던지고 싶다 편

by 이지속

지속은 돈 한 푼이 아쉬웠다. 인턴 월급으로 원룸 월세와 공과금에 생활비까지 충당해야 했기에 한 여름에도 오래되어 누리끼리한 색을 띠였던 원룸의 벽걸이 에어컨은 장식이었다. 열대야에 지속은 1.5 페트병에 아리수를 채워 얼린 뒤 수건을 감아 안고 잤다. 세정거장 거리의 언론사에 천백원하는 지하철 교통비가 아까워 운동을 핑계 삼아 걸어 다녔다. 지속은 구질구질한 자신과는 다르게 퇴근길 고급 일식집에서 요리와 생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부러워 가게 밖 창문을 추잡스럽게 쳐다보곤 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풍기는 갓 튀긴 튀김 냄새에 하마터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속은 먹고 싶었다. 하지만 사 먹을 돈이 없었다.

늘 가난했던 지속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가난을 체감 못했다. 부모님 집에서 생활비 한 푼 보태지 않고 뭉갰고 홈쇼핑 VIP로 10% 할인권을 매달 받아 사고 싶은걸 샀으며 마음껏 치킨을 시켜 먹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며 지속에게 힐링이던 소소한 사치가 불가능해지자 비로소 가난은 지속을 집어삼키려 입을 쩍 벌린 채 코 앞에 서 있었다.

주말에 병히가 놀러 오면 에어컨 리모컨부터 찾았는데, 함께 있는 내내 돌아가는 에어컨을 보며 지속은 시원해서 좋다가 아닌 전기료 걱정이 먼저 앞섰다. 자기가 비용을 내지도 않으면서 눈치 없이 제 집처럼 에어컨을 팡팡 켜는 병히가 좀 얄미웠다. 쪼잔해 보일까 대놓고 말도 못 하고 안절부절못하다 지속이 춥다고 에어컨을 끄면 잠시 뒤 나는 더운데? 하며 병히는 다시 에어컨을 켰다. 그럼 지속은 체념한 채 종일 돌아가는 에어컨만 바라볼 뿐이었다.

밖에서 데이트를 할 때도 비용부터 걱정하는 지속이었다. 병히가 두 번을 사면 지속은 반드시 한 번을 사는 비율로 절대 세 번을 연달아 얻어먹지 않았다. 그런데 지속이 식사를 살 순서에 병히가 콘레드 호텔의 디너 뷔페를 예약한 것이 아닌가! 둘은 대놓고 네 순서, 내 순서 하진 않았지만 암묵적인 룰로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곤 했다. 지속은 병히 모르게 인터넷으로 디너 뷔페 가격을 검색하곤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너무너무 비쌌다. 병히는 잔뜩 신이 나 많이 먹고 오자고 말했고 지속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사한 호텔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종류의 음식, 병히는 신이 나 음식을 푸러 가고 지속은 깊은 한숨을 지었다. 어떤 카드로 결제를 해야 펑크가 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지속이 쭈뼛쭈뼛 빌지를 들고 계산을 하려는데 병히가 이렇게 말했다.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던데 설마 나 밥 사주기 싫어서 그래? 그냥 줘 내가 낼게"

병히는 빌지를 빼앗 듯 가져갔고 지속은 재빠르게 자신의 카드를 꺼내어 직원에게 결제를 부탁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지속이 밥값을 냈다. 병히와 지속은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식사 후 유람선을 타기로 했는데 지속은 집에 가고 싶었다. 눈물이 자꾸 나는데 병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병히는 지속의 기분도 모른 채 유람선을 예매했으니 타야 된다고 우겼다. 그렇게 꾸역꾸역 유람선에 올라 한강의 야경을 봤다. 지속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번지는 불빛을 보자 빛 한점 들지 않는 자신의 궁핍하고 척박한 일상이 떠올라 슬퍼졌다. 그때 병히가 가방에서 편지와 작은 쇼핑백을 꺼내 지속에게 주었다. 프러포즈 반지였다. 편지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결혼을 하자는 병히의 글귀가 적혀있었다. 병히는 반지를 꺼내 지속이 손에 껴줬는데 사이즈 미스로 금방이고 빠질 듯 헐렁거렸다. 생각지 못한 프러포즈에 멍하던 지속은 병히가 준 반지를 빼서 한강에 던지는 시늉을 했다.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병히에게 지속은 반지를 안 받겠다고 했다. 병히는 애절하게 두 손을 모아 빌며 받아달라고 사정했고 그 모습을 말없이 보던 지속은 스스로 반지를 다시 꼈다. 그렇게 엉터리 프러포즈를 받고야 말았다. 지속은 아직도 후회한다. 그때 반지를 한강으로 던져버렸어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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