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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Mar 22. 2021

고독하지 않은 삶

사건번호 2020 고합 567 앞으로 종이 1g의 무게를 더합니다.

올해 1월 6일, 반오십 짧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정서라는 것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법률 지식 전무, 뉴스조차 잘 보지 않는, 어떻게 보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요즘 청년' 세대의 전형이었을 거예요. 쓰는 법도 몰라서 포털사이트 블로그 후기를 찾아보고, 몇 줄 얼추 비슷하게 쓴다고 썼는데 여전히 엉성했습니다. 


우체국이든 은행이든 발로 갈 일이 별로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집 근처에 우체국이 두 곳이나 있었는데, 그걸 이사한 지 1년이나 지나 알았지 뭐예요. 손도 귀도 얼 것처럼 추운 날에 길까지 헤매느라, 정말 많이 추웠습니다.


1g이나 될까 싶은 가벼운 종이 한 장인데, 그걸 두고 돌아오는 길 마음은 썩 가볍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사실 꼭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의 왠지 모를 서운함. 당연히 같은 쪽을 바라봐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의 허전함. 돌아보면 저도 지난 일들에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텐데요. 그래서 잠깐 외로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의 온도보다 마음을 더욱 쓸쓸하고 쌀쌀하게 만드는 건 단절감이 아닐까 합니다. 연락은 하지만 닿아있지 않은 관계들부터, 살아가면서 얼굴 한 번 마주칠 일 없는 사람들의 소식과 나의 일상 사이에 있는 틈. 내가 느끼고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만 살아도 바쁘고 벅찬 세상이잖아요. 그렇게 다들 혼자만의 동굴로, 집으로 꽁꽁 싸매고 들어가는지도 몰라요. 


나를 먼저 챙기라는 말이 절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서있는 곳이 안전하고 단단하다는 확신이 들어야 옆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기는 법이잖아요.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기쁨과 아픔, 슬픔에 전부 공감하다가는 우리가 사는 오늘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는 거겠죠. 언젠가 지나왔던 시절이 되었든, 언젠가 마주하게 될 내일이 되었든. 




하지만 가끔은 아쉬워요. 매일을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마음이 쓰이는 날, 그런 순간을 마주한다면 우리가 너무 망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면면을 품기로 시도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그게 믿었던 가치를 잠깐 양보하는 것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감수하는 일일 수 있고, 지나온 일을 덮기로 결정하는 일일 수도 있겠죠. 쉽지 않은 것을 알지만, 여유가 없는 것을 알지만. 언젠가 내가 정말 가쁜 숨을 쉬어야 할 때요, 그럴 때 누군가 뒤에서 지켜봐주고 있다는 생각. 손 내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안심하고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 독고다이라고 많이들 하지만, 어쨌든 모래사막에서도 오아시스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걷다 보면,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이 약간은 더 반갑게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이 될까요, 그리고 당신의 외로움을 조금 덜어줄 수 있는 인연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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