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지나는 계절
겨울을 좋아했던 적이 있을 거야. 눈이 펑펑 내리는 것도 마냥 즐겁기만 하고, 하루 종일 뛰놀아도 지치지 않던 때가. 겨울의 온도나 그 해 겨울의 모습이 지금의 겨울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길도 풍경도 그대로인데, 걷는 사람이 달라진 거야.
흔히 기분이나 마음 상태를 계절에 많이 비유한다. 비가 오는 날처럼, 추적추적 축축 처지는 날도 있고, 그냥 마냥 흐린 날도 있고, 이상하게 신나고 설레는 봄날 같은 날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너에게 겨울은 어떤 계절인지 묻고 싶어. 하얀 입김과 미끄러운 눈길이 먼저일까, 아니면 황량한 풍경과 앙상한 나뭇가지 생각이 날까. 아니면 이불속 포근함과 어쩌면 조금의 설렘이 먼저일까.
나는 그랬어. 이상하게 겨울은 유난히 끝나지가 않을 것만 같았다. 남들은 추워도 어찌어찌 잘 사는 것만 같았는데, 나는 이상하게 자꾸만 더 미끄러지고, 발이 진창에 빠지고, 제일 싫어하는 진눈깨비만 계속 오는 느낌인 거야. 도대체가 언제까지 이럴 작정인지 누구한테라도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동시에, 나만 이렇게 지나가는 겨울에 유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작 이 정도 추위에 옹송그리고, 나가기 싫다고 생떼를 부린다고. 될 놈 못될 놈 구분하면 아마 이 정도면 못난 놈 축에 들어가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안 그래도 추운 마음을 더 걸어 잠갔던 것 같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도 끝이 보이고, 아직은 쌀쌀하지만 봄날이 왔다. 봄이 되니까 조금씩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약한 햇볕도 너무나 따가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보통은 선선하다고 하는 날씨에도 두꺼운 코트가 필요하다는 것 말이야.
같은 날씨에도, 체감온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아무 의심도 없이 모두가 꼭 같이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어.
모두가 같은 지역 같은 시간대에 살 수는 없지. 누구는 시베리아에 살고, 누구는 적도 어딘가 푹푹 찌는 날씨에서 살고 있을 거다. 사계절인지 이계절인지 모르겠는 이곳에도, 어쨌든 계절이란 건 있는 것 같고 말이야. 딱 하나 확실한 것은, 영원한 계절은 없다는 것.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도, 어쨌든 365일, 24시간, 7일 내내 같은 날씨일 수는 없다. 더 나빠질 수도 있지. 더 좋아질 수도 있고.
그러니까 자연의 일에, 지나가는 계절에, 그 시기를 걷는 너를 부러 가혹히 다루지 말았으면 한다.
각자의 겨울은, 또는 각자의 여름은, 봄은, 가을은. 언제 찾아오고 언제 가는지, 얼마나 계속될지 그거 아무도 모르는 거야. 얼마나 좋을지도, 얼마나 버거울지도 모르는 거다. 그러니까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지나가면 개운해질 거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도 생각날 거야.
오늘 하루를 걷고 있는 네가, 내일도 또 다르지 않게, 여상하게 걸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