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두 번 다시 그 나라, 그 도시에서 살게 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한 번쯤 여행을 가볼까 싶다가도 환승지에서 지겹게 기다릴 생각과 열댓 시간 비행기 안에 갇힐 걱정에 이내 마음을 접곤 했다.
남편이 느닷없이 다시 인도 주재원으로 가게 되었다. 이미 퇴직한 회사의 인도 법인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 해결할 사람으로 그곳 경험자인 남편이 지목되었고, 비자가 나오자마자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겨버렸다.
퇴직과 귀국, 코로나 팬데믹 3년 동안의 휴식과 충전, 그리고 다시 인도행. 모든 일정이 마치 누군가가 세밀히 짜 놓은 계획 같았다.
체력도 보충했고, 한국 여행도 많이 했고, 우리나라 적응도 되었다. 팬데믹도 끝난 시기, 남편이 뭔가를 다시 시작해 보려는 딱 그때에 회사의 부름이 있었고,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인 제안이었다.
남편이 인도 첸나이에 간지 열흘 째이다. 전화기 속의 밝고 활기찬 남편의 목소리와 보내주는 사진 속의 그곳이 나를 안심시켰다.
2009년, 알지 못하는 나라에 가 있는 남편 걱정에 잠 못 이루던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공항 배웅을 할 때만 해도 염려되는 마음이 가득이었는데 막상 그곳에서의 생활을 듣고 나니까 알고 있는 나라에 나도 빨리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15년 전에는 남편이 걱정이 되어서 가고 싶었다면, 지금은 인도가 보고 싶은 이유가 더 크다.
"와이프도 인도에 같이 간다고 해?", "너도 인도에 갈 거야?" 인도 얘기가 나오자 우리가 듣게 된 질문이었다. 이상한 질문을 한다고 남편도,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집사람은 인도를 좋아해서 바로 따라간다고 할걸!", "당연히 남편 따라서 가야지!" 우리의 대답이었다.
"인도에 따라갈 거야?"라는 질문 속의 그들의 인도와 '당연히, 빨리 가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나의 인도는 다른 나라일까?
인도 첸나이에 살 때 그림 구경하러 가끔 다니던 갤러리가 있었다. 한국에서의 생각과 달리 인도의 미술 교육과 미술 작품의 수준이 터무니없어서 놀랐던 기억과 그래도 인도 화가들의 그림 감상을 할 장소를 찾아서 좋았던 기억의 작은 갤러리였다.
그곳에서 이메일이 날아왔다. 전시회 개막식 초청 메일이었다. 방명록에 남겨 둔 메일 주소로 보내온 초청장이었다.
남편을 배웅하던 공항에서도, 남편이 보내주는 첸나이 사진에서도, 전화기 속으로 들려오는 그곳의 남편 목소리에서도 인도가, 첸나이가 이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는데 이메일 하나가 나를 인도 첸나이로 강하게 이끌었다.
브라만 부자동네 골목 안의 주택을 개조한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는 내가 보였고, 귀여운 오리 조형물이 나란히 나를 반겼고, 여자 관장이 인사를 했다. 벽에 걸린 그림을 천천히 둘러보고 방명록에 간단히 감상 후기도 남겼다. 어느새 나는 인도 첸나이에 가 있었다.
팬데믹이 끝나서 다시 갤러리도 문을 연 듯했다. 새로운 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보내던 이메일이 그동안 잠잠하다가 거의 3년 만에 온이메일이었다.
남편이 또 먼저 가 있는 인도는 내가 11년 동안 살았던 나라이지만 기억이 잘 안 나는 곳이 되어버렸고 희미해진 기억 딱 그 정도의 농도로 그리웠던 인도였다. 남편이 가 있지만 실감이 안 나던 인도였다. 이메일 안의 영어 글씨와 인도식 이름과 갤러리 로고가 나를 순식간에 그곳에 데려다 놓았다. 한국에 해결할 일들이 있어서 금방 비행기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빨리 인도에, 남편에게 갈 생각이다.
남편은 예상도 못했던 인도에 다시 가 있고, 시의적절하게인도의 갤러리에서 이메일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