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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ug 15. 2023

나는 맥시멀리스트이다.

미니멀 인테리어가 유행이다.

미니멀한 공간은 단순함이 주는 깨끗함과 실제보다 넓어 보이는 효과가 확실히 있다. 하지만 나는 미니멀 인테리어를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그것이 가정집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첫눈에 깔끔해 보이는 실내이기는 하지만 너무 단순한 그 공간에 조금만 있을라치면 그 단순함이 휑함으로 느껴져서 차츰 불편해진다. 따뜻함보다 차가움이 그 공간에 휘몰아친다.


집이란 것이 가족의 지난 히스토리와 현재의 이야기가 좁은 공간에 수선스럽게 뒤끓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거실 소파에 기대어서도, 식탁에 앉아서도 가족의 지난 역사와 지금의 사는 모습이 복닥거리며  함께할 수 있어서 카페나 식당과는 차별화된 공기가 흘러야 다는 생각이다.


인위적으로 보이는 그림 액자와 건들면 안 될 것 같은 화병, 반듯하고 깔끔한 군더더기 없는 가구들은 가정집인지, 사무실인지, 카페인지, 어쩌면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인지 구별이 안 되는 공간처럼 보인다.

그 집 가족의 이야기는 어디에 숨어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나는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맥시멀 공간을 좋아한다. 미니멀하지 않다는 것이 흐트러져 있다는 뜻은 분명히 아니기 때문이다. 단정하지만 너무 휑한 집보다 정리된 알록달록 박작박작한 집이 나는 좋다. 손때 묻은,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이 내 눈에 띄었으면 한다.

현관을 들어서면서부터 가족의 이야기가 나를 반기면 좋겠고, 거실에도, 주방에도, 2층 올라가는 계단에도, 안방, 아이들 방에도, 심지어 화장실에도 우리 가족의 지난 히스토리가 널려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밖에 나와있는 물건들이 많다. 바글바글 숙덕숙덕 소란하지만 질서 정연하다. 그런 수선스러움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도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가족의 세월이 담긴 찻잔과 접시들이 그릇장에 비좁게 모여서 수군대고, 장식장 위의 들쭉날쭉 사진액자 속의 지나온 우리의 시간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고, 집안 구석구석 나와있는 여행지의 소품들은 그 나라, 그 도시와 같은 공간과 시간머물게 하고, 거실 구석에 세워둔 딸의 그림은 사춘기 때의 딸이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건다. 소파 위의 색색깔 쿠션들은 가족의 채취를 간직하고 있다.


맥시멀 공간을 좋아하지만 어수선한 것은 못 참아서 정리정돈이 몸에 배었지만, 그래서 바지런을 떨어야 하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숨겨두고 싶지는 않다.


식탁 옆에 가지런히 놓인 관절약, 오메가 3, 비타민 등의 건강보조식품 약통들이 나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 약통들은 얼른 먹으라며 나를 챙긴다.


나는 알록달록, 복작복작 내 집이 좋다. 맥시멀 인테리어가 편하고 따뜻하다.

미니멀한 공간이 단정하고 안정감이 있다는 이들은 이해 못 할 나는 맥시멀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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