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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의 나와 마주하다.


남동생이 세월의 빛깔이 얼룩덜룩 묻어있는 낡은 앨범 하나를 들고 왔다.

수년 전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정리를 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형제자매들이 각자 챙길 건 챙겨갔다고 했다. 그때 가져갔던 앨범이라고 했다.


어린 연년생 두 딸과 씨름을 하던 때여서, 작은딸 아토피 피부염과 전쟁을 치르며 잠을 제대로 못 잤던 때여서 나는 그때의 기억이 온전히 모두 남아있지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에 가서 10여 년을 살다가 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그 해의 기억이 다른 비슷한 일들과 섞여서 뒤죽박죽 내 머릿속은 물안개 속에 덩그러니 놓인 것처럼 선명하지가 않다.


그랬단다.

모두 각자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갔단다. 내가 챙긴 건 무엇이었는지 도통 기억이 없다. 인도에서의 11년은 이전의 한국에서의 많은 부분을 지워버렸다.


눈에 익은 앨범 겉표지를 보자마자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 요동치기 시작했고, 앨범을 펼쳐서 보이는 사진 한 장이 순식간에 우리 자매들의 어린 시절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했다.



부산 여행을 간 기억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그때 그 시간 속에 세 자매가 있다.

열다섯, 열여덟, 그리고 스물하나 인 세 자매의 40여 년 전의 어려서 예쁜 모습을 눈앞에 마주했다.


'예쁘네, 어렸네, 말랐네.'등의 모습이 먼저 보였고, 나이키 운동화가 보였다. 형제자매가 많아서 저런 브랜드 운동화를 사 줄 엄마가 아니었는데, 내 발을 감싼 운동화가 의아했다.

언니 말로는 둘이서 각자 모은 용돈을 합쳐서 함께 사서 신은 운동화라고 했다.

차근차근 살펴보는데, 헤어스타일도 차림새도 40년이 훨씬 더 지난 모습 같지가 않았다.


사진을 본 딸이 말했다. "흑백 사진이 아니네. 촌스럽지 않네. 어제 찍었다 해도 믿겠어."라고.


내 사진인데, 중2 때의 나인데 사진 속의 저 아이는 내가 어제 만난 소녀 같다. 과거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어느 아이 같다. 곧 예순이 되는 나는 나의 열다섯 살이 남 같다.


중2의 내가 쉰여덟의 나를 빤히 바라본다. "아주머니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그런 너는 누구니?, 예쁘고, 날씬하고, 헤어스타일도 좋고, 옷도 예쁘게 입은 너는 누구니?"

쉰여덟의 내가 그 아이를 요리조리 살피며 묻는다.


머리로는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사진 속의 소녀가 낯설기만 하다.


시간 이동을 한 열다섯 살의 내가 2024년으로 와서 쉰여덟의 나를 만나러 온 것만 같다.


'나구나, 나였구나, 내가 저런 모습이었구나, 세월이 나를 변하게 했구나,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왜 먹먹할까? 지나온 시간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중2의 내가 반가워서 눈을 못 떼고 있다.


반가웠어. 열다섯의 나야.

쉰여덟의 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

43년 동안의 시간을 기대해도 좋아.

후회스럽고, 되돌리고 싶은 순간도 많지만, 그마저도 네 인생이니까 말해주진 않을 거야.

결정의 순간이 많겠지만,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을 때도 있겠지만 결국엔 쉰여덟, 지금의 내가 되어있을 거야.


괜찮았어. 내 인생.

네 인생, 기대해도 좋아.

너를 닮은 예쁘고, 똑똑하고, 재주 많은 두 딸이 기다릴 거야.

착한 남편도.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해.

네가 가진 재주를 환경 탓을 하며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해.

이 나이에 해보려니까 쉽지가 않네.


반가웠어. 예뻤던 열다섯 살의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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