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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Mar 19. 2022

인도의 스타벅스, 그리고 커피와 짜이 이야기


  비가 내린다. 으슬으슬 몸이 차갑다. 이런 날에는 인도에서 마시던 생강향 그득한 뜨거운 짜이 생각이 나곤 한다. '커피'보다는 홍차에 뜨거운 우유를 섞어 마시는 '짜이'를 인도인들은 더 즐긴다. 아시아 2대 커피 원두 수출국이라는 인도인데, 정작 그들은 커피보다 우유에 탄 홍차를 더 좋아한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영향인 듯했다. 영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 차밭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인도 남서 지역 고산 깊은 곳에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차밭이 많이 있다. 깊고 높은 산속에 찻잎 운반을 위해 철로도 건설되어있고, 거대한 차밭이 있는 고산 마을에는 차 공장도 있다.


인도 무나르(Munnar) 차밭


 파란 하늘 아래 산을 덮은 초록의 차밭 고랑 사이로  원색의 전통 사리를 입은 인도 여자들이 찻잎을 따고, 키 큰 유클립투스 나무가 차밭 주변에 하늘을 찌를 듯이 곧고 높게 서있다. '인도 차밭'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차밭 노동자들


 내가 살던 도시, 인도 남동쪽 첸나이에서는 비행기를 몇 시간 타거나, 야간 침대 기차로 밤새 달려가서 다시 차로 구불구불 산길을 몇 시간씩 올라가서야 만날 수 있는 귀한 풍경이었다.


차밭 주변의 유클립투스


 서북쪽으로 넘어가면 그곳은 또 커피밭이 그렇게 많았다. 커피 꽃을 처음 봤을 때의 감격과 커피 꽃향의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없다. 빨간 커피 열매가 옹기종기 매달린 모습도 너무 예뻤다.


커피꽃과 커피열매(인도 쿠르그:Coorg 커피농장)


 오전 11시경에 한 번, 오후 3,4시경에 또 한 번, 약속이나 한 듯이 인도 사람들은 모두가 짜이를 마셨다. 남인도는 여름만 있다.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펄펄 끓는 짜이를 호호 불면서 마시면 나른한 몸이 충전되는가 싶었다. 라자스탄 사막 한가운데에서 밤새 추위에 떨다가 마신 뜨거운 짜이 한잔을 잊을 수가 없다.


라자스탄, 자이살메르 사막에서의 1박 후 새벽, 짜이를 끓이는 사막인.



 첸나이에는 길거리 노점이나 자전거에 싣고 다니는 짜이 장수들이 많았다. 짜이는 로컬 식당에서도 꼭 파는 메뉴였다. 생강가루와 설탕도 듬뿍 넣어서 마시는 '맛살라 짜이'를 나도 좋아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자전거 짜이 장수, 동네 어귀의 짜이 장수와 코코넛 장수 아저씨. 사진을 찍을 때 늘 차렷자세를 하는 인도인들이다.


동네 골목의 짜이 노점상


 피보다 짜이를 더 좋아하는 인도인들이다 보 제대로 된 카페 문화라는 게 별로 없었다. 집 앞만 나서면 카페가 수도 없이 널린 한국과는 참 달라서 그 부분이 많이 불편했었다.


 인도 자체 카페 브랜드인 '커피데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커피가 너무 쓰고 맛이 없었다. 그마저도 몇 군데 있지도 않았다.


빨간색 로고가 특색인 Cafe Coffee Day


 첸나이에 스타벅스가 처음 입점된 건 2014년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한국인들에게 큰 이슈였었다. 쇼핑몰 안에 스타벅스가 생기면서 커피데이는 더 이상 발을 안 들이게 되었다. 스타벅스는 인테리어도 달랐고, 인도에서는 처음 보는 다양한 커피 메뉴에 커피 맛도 달랐다.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현대적인 카페 분위기도 즐기고 싶어서 자주 다녔었다.


첸나이 스타벅스 1호점, 선물용으로 다량의 바우처를 구입했더니 굳이 저렇게 기념 촬영을 당했다(?). 기프트카드에 '고맙습니다'라고 한글도 적혀있다.


인도 첸나이 스타벅스 풍경. 전통 복장을 입은 여대생들과 스타벅스, 현재의 첸나이를 설명하는 모습이다.


 몇 년 후에 드디어 내가 살던 아파트 길 건너에도 스타벅스가 생겼지만 그곳도 걸어서 다닐 수는 없었다. 너무 더웠고, 길거리 개들이 너무 많았고, 소들이 도로 위를 마구잡이로 돌아다녔다. 오토바이 소리와 귀가 찢길 듯한 자동차 경적소리도 문제였다. 무엇보다 잠시 5분 걷는 그 시간 동안에 매연을 견디는 일이 제일 큰 문제였다. 그래서 낮잠 자는 기사를 깨워서 차를 움직여야만 했다. 번거로웠지만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그 시간은 인도에서의 우리들의 여유로움이었고  작은 사치였다.


인도 첸나이 스타벅스 O.M.R점


 지금은 첸나이에도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카페가 많이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집 앞에 걸어가는 우리나라 카페 문화를 상상하면 안 될 것 같다.


 11년의 인도 생활을 뒤로하고 벌써 귀국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문 앞만 나가도 베이커리 카페며 스타벅스를 비롯한 다양한 카페 체인이며 카페 천국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카페를 가려고 막히는 도로를 뚫고 몇십 분씩, 멀리는 1시간씩 다니던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 흔하지 않아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더 소중하고 귀했던 것 같다.


 인도 생각이 많이 나는 날이다. 아직은 차가운 날, 비도 내리는 날, 생강향 그득한 뜨거운 짜이 한잔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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