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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un 08. 2024

한낱 벌이 아니더라


3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정원이 딸린 도심외곽의 주택으로 이사를 오고부터 한 가지 습관생겼다.

원래도 사물이나 사람 관찰하기를 즐겨하는 편이었는데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까 정원의 생명체 관찰을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정원의 생명체'라 함은 나무나 화초등의 식물은 당연히 포함이고, 새와 나비, 벌, 지렁이, 무당벌레, 달팽이, 돈벌레, 나방, 애벌레등의 곤충도 포함이다.



주택으로 이사를 온 뒤로 나의 아침 일상은 매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섯 시 반 경에 눈을 뜨면 대충 방정리를 하고, 온 집의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킨다.

주방 유리문을 열고 데크로 나와서 밤사이 내 화초들의 안녕을 살피고, 꽃이 더 폈는지, 졌는지, 꽃잎이 떨어졌는지 빠르게 정원을 스캔한다.

물호스의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빗물'에 맞춰서 가볍게 정원에 물을 뿌려준다.


그리고 캡슐커피 한 잔과 빵, 과일, 소시지, 계란, 요거트등 그때그때 냉장고를 뒤져서 간단한 이침거리를 챙겨서 데크 테이블에 앉는다.

내 3평, 작은 정원이 한눈에 가득 담긴다. 컬러풀한 꽃들에 먼저 시선이 닿고, 다음으로 눈은 위를 향하면서 나무들을 보게 된다.



내 작은 정원에는 내가 골라서 심은 다섯 그루의 나무가 있다. 큰 배롱나무와 목련나무, 보리수나무, 뽕나무, 대추나무이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애정하는 나무는 단연 목련나무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왼쪽에, 현관문을 나서면 오른쪽에, 주방문을 열고 나오면 정면에 적당한 크기와 예쁜 수형의 목련나무를 심었었다.



하얀 목련꽃이 아쉽게 떨어지고 나서, 예쁜 나뭇잎이 무성히 자라나던 5월 중순 즈음에 작은 벌 한 마리가 나뭇잎 뒤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말벌집 퇴치하는 장면을 많이 봐서인지 덜컥 겁이 나서 벌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나뭇잎을 떼어버릴까 생각을 했지만 벌집 짓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벌의 수고가 안타깝기도 해서 한동안 지켜보며 구경을 했다. 이후로 나의 흥미로운 관찰거리가 되었다.


5/11  갈색 벌집
5/23 흰색으로 변한 벌집

다행히 그 벌은 말벌도 아니었고, 벌집은 엄지손톱만큼 작은 한 층 짜리 예닐곱 구멍만 있는 작은 집이었다.


옅은 갈색의 작은 벌집은 목련 나뭇잎 가운데 줄기에 긴 꼬리를 달고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는 튼튼한 집이 되어있었다.

벌이 자주 드나들었지만 열흘쯤 지나면서부터 갈색이 흰색으로 변한 것 외에는 더 커지지도 않았고, 다른 특별한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벌집에 관심이 줄었고, 매일 관찰도 안 하게 되었다.


6/6 비바람에도 건재한 벌집


벌이 집을 짓기 시작한 지 한 달쯤이 되던 어느 날, 전날 오후에 소나기가 무섭게 몰아치고 난 다음날이었다.


비가 내린 뒤라 하늘도 맑았고 날씨가 쾌청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내 아침 루틴이 시작되었고, 롤케이크 한 조각과 블루베리를 토핑 한 플레인 요거트와 캡슐커피 한 잔을 들고 정원 앞 데크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날씨가 깨끗해서 꽃이며, 나무며, 나비가 여느 날보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무심히 올려다본 목련나무에 이전과는 다른 모양과 색깔의 벌집이 햇빛이 투과되어서인지 초록이 연두로 보이는 목련나뭇잎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새 제법 커 보이는 벌 한 마리가 열심히 벌집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6/7 벌집이 연두색이 되었고, 벌집 안에 알들이 보이고, 연두색 물질로 벌집 입구를 막고있다.


가까이에 가서 올려다보니까 세상에 갈색에서, 흰색으로 변해있던 벌집이 목련나뭇잎과 똑같은 연두색이 되어있었고, 길이도 길어졌었을 뿐만 아니라 팔각형 벌집마다에 연두색 무언가가 갓 구워서 부풀어있는 식빵처럼, 카푸치노 거품처럼 구멍마다 채워져 있었다.

벌은 열심히 그 구멍들의 가장자리를 몸통으로 비며 단단히 메꾸는 듯이 보였다.


작은 벌집도,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집을 짓던 작은 벌도, 나뭇잎의 정 가운데 튼튼한 줄기 위선택한 것도, 갈색, 흰색 그리고 보호색인 연두색으로 변한 벌집 색깔도, 알을 낳고 그 알을 보호하려고 덮어놓은 알 수 없는 물질도 모두 모두 너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지금까지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관찰하게 되었지만, 알이 부화해서 벌이 되는 과정은 매일 매시간 고개를 쳐들고 관찰을 하게 될 것 같다.


처음보다 길어졌어도 여전히 내 엄지손가락 반만큼의 작은 벌집이 나에게 주는 감동이 말도 못 하게 크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팔각형의 예쁜 집을 어떻게 짓는지, 어떻게 알고 이파리 중에서 가장 튼튼한 가운데 줄기에 터를 잡는지, 어떻게 나뭇잎과 똑같은 색깔의 벌집을 만들 수 있는지, 수천번을 날아다니며 힘들게 집을 짓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하다.


내가 자주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전에 없이 오랜 시간 동안 벌집을 지키고 있는 벌을 보며, '너도 우리 같구나!', '자식이 모든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최대한 멀리서 관찰하게 만들었다.

알이 부화해서 아기벌이 날아가는 장면도 내 눈으로 부디 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명의 탄생 과정은 '한낱 곤충', '한낱 벌'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위대한 과정인 것을 내 작은 정원, 작은 목련나무, 작은 나뭇잎, 너무 작은 벌집에서 보고 있다.

어미의 수고와 인내와 사랑을 보고있다.


한낱 벌 한 마리의 일생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생명의 탄생 과정은 시람이건, 벌이건 오묘한 우주의 섭리가 틀림없다.


내 3평 작은 정원에는 날마다 새로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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