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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Oct 10. 2024

새로운 꿈이 생겼다.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어 졌다.

두어 달 집중하며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머리도 식힐 겸, 동네 산책을 다녀와서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TV 채널을 훑다가 혼자 사는 연예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곳에 멈췄다.

신경 쓰느라 굳은 머리를 풀기에는 자연 속 산책도 좋았고, 가벼운 TV 보기도 괜찮았다.


별생각 없이 보던 프로그램의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누가 보면 큰일이 난 것처럼 펑펑 울고 있었다. 낮에 혼자 TV 앞에서 뭔 청승이었는지 모르겠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억하며 눈물짓는 출연자와 그 옆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엉엉 우는 MC를 보면서 나는 순간 내 아버지와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스물여섯이던 해에 돌아가신 아버지, 마흔한 살이던 해에 돌아가신 엄마가 그 순간 보고 싶어서 울다가, 친할머니, 할아버지 정도 많이 모르고, 외할머니, 할아버지 정도 모르고 자란 내 딸들이 안타까워서 또 그게 그렇게 눈물이 났다. TV 속 연예인들의 눈물이 이해는 되지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온전히 알 수는 없어서 더 슬펐던 것 같다.


딸들은 서른이 가까워졌고, 나는 예순이 가까워졌다. 엄마의 역할은 미미해졌고, 그 사실이 후련하기도 하지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리라 다짐을 하며, 심심해진 시간을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지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 낮에 혼자서 보던 TV 프로그램은 나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내 인생의 새로운 역할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엄마의 자리에  할머니의 역할, 그것도 외할머니의 역할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비록 딸들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만 얻을 수 있는 역할이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일도 아니지만, 두 딸 중에 적어도 한 명은 그 역할을 나에게 가져다줄 것이라 믿으며, 심심해지기 시작한 내 인생에 이미 마음은 바빠졌다.


부모와는 또 다른 사랑을 베푸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늦둥이로 태어난 나도 모르고, 안타깝게도 내 딸들도 잘은 모른다. 외할아버지는 본 적이 없고, 외할머니와 친할아버지는 손녀들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친할머니는 손녀들이 인도에 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할머니'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눈물이 쏟아지는 그 역할을, 나도 알지 못하고, 딸들도 잘은 모르는 그 사랑을 그다음 세대를 위해서 감히 감당해 보리라는 꿈이 생겼다.

나도, 내 딸들도 잘 알지 못하는 할머니의 사랑을 미래의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날 누군가에게는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


딸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야 하고, 내가 그때도 건강해야 하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내 인생에 귀한 역할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렌다.



MBC '나혼자 산다' 영상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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