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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Mar 06. 2024

어제보다 늙은, 내일보다 젊은 오늘의 나는.

앞머리가 어느새 눈을 찔러대서 좀 잘라야겠다는 생각에 욕실 거울 앞에 서서 한국에서 챙겨 온 내 앞머리 전용 가위로 눈썹을 살짝 가릴 정도로만 잘랐다. 수십 년을 해오던 일이다.


그런 날이 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음에 안 드는 날. 그날은 갑갑하게 이마를 가린 내 앞머리가 당최 못마땅한 날이었다. 앞머리를 길러서 이마를 좀 드러낼까라는 생각을 하며 손으로 머리를 걷어올려서 이마를 드러내 보았다. 거울 속의 내 이마와 얼굴을 찬찬히 관찰하기에 이르렀다.


이마를 드러내어도, 앞머리를 내려도 50대 후반의 여자는 별 차이가 없다. 이미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다시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 달쯤 뒤에 어김없이 앞머리가 길어서 양쪽 눈썹에 그 머리카락이 걸려서 자동으로 이마 위에서 머리카락이 두 구역으로 갈라지면, 미간 팔자 주름이 보이면, 또 고민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앞머리를 자를까? 더 길러서 이마를 드러내고 다닐까?'라고.


이마를 드러내고 다녔던 내가 기억에도 없는 그 어느 날, 수 십 년 전의 부터 항상 이마를 가리고 있다.

아마도 아는 친인척 한 명 없는 낯선 도시에서 연년생 두 딸을 키우느라, 편도선염을 달고 살았던 큰 딸과 아토피 피부염이 너무나 심했던 작은 딸을 혼자서 버둥대며 키우느라 살이 많이 빠져서 나이도 들어 보이고 얼굴이 더 길어 보인다고 스스로 느낀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두 딸과 씨름을 하던 그때, 내 외모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그때, 커트 머리를 감행했고, 그 머리가 단발이 되도록 미용실에 갈 마음의 여유와 체력의 여분이 없이 지내던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 이마가 앞머리로 가려지게 된 시작의 그 어느 날이.


좀 더 어렸을 때, 지금보다 젊었을 때 이마를 드러내고 살았어야 했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한결같은 헤어스타일로 살다 보니 이제는 이마가 보이는 내 얼굴이 어색하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도 같고, 얼굴도 커 보이는 것 같아서 좀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겨우 이런 일에 '용기'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그 '용기'라는 단어에 미안할 경이지만 20년 가까이 숨겨뒀던 이마를 드러내는 일은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인도에 놀러 온 큰딸이 엄마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말했다. "엄마는 뱅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엄마 나이에 그 스타일이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앞머리는 내리고 뒷머리는 올림머리를 하니까 엄마 얼굴형에 찰떡인 것 같지?"


엄마 마음을 읽고 있는 듯한 딸의 말에 갑자기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이 더 이상 갑갑하게만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딸의 얘기를 듣기 전과 후가 다를 것이 없는데, 딸의 그 말이 내 심리를 만져주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평범한 나이 든 아줌마인데, 내 마음속의 그 모습은 뱅스타일이 어울리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아줌마였다. 어차피 그 모습이 내 모습인데 딸의 한마디에 거울을 보는 내 마음이 룰루랄라가 되었다.


육아에 지쳤던 30대의 내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 긴 머리를 짧게 잘랐지만, 20년이 지나서 본 사진 속의 30대의 나는 너무나 젊었고, 예뻤다.

갱년기를 보낸 50대 후반의 내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앞머리를 어떻게 해볼까 고민을 하고 있다.

20년 뒤에, 70대 후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사진 속에서 본다면 분명 그렇게 말할 것이다. "젊었네!, 예뻤네!"라고.


나는 내가 살 날 가운데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뿐이다. 가끔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나이 들어가는 내 외모가 마음에 안 들뿐이지 실제로는 내 나이에 맞게 외모도, 생각도, 삶의 자세도 함께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안다.


김치도 젓갈도 배추일 때보다, 생선일 때보다 생김새는 덜 예쁘지만, 생 것일 때는 갖지 못했던 깊은 맛과 더 많은 유익한 영양소를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삭혀지고 있는 나도 그러할 것이라 믿으며, 어제보다 늙은, 내일보다 젊은 오늘의 나는 그저 시간의 순리대로 신체도, 생각도 삭혀지고 있음에 감사하며 살기로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카페 옆자리의 40대 전후로 보이는 한국 아줌마들의 시끄러운 수다소리가 들린다.

'나도 저 땐 저랬지, 소금 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직은 숨이 죽은 배추였지.' 여전히 푹 삭혀진 김치는 아닌 내 귀에 외모는 젊어서 예쁘지만 덜 삭혀진 듯한 그녀들의 대화내용이 오늘따라 귀에 쏙쏙 박히고 있다.


가장 최근의 내 모습(남인도 어느 바닷가 리조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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