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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Dec 11. 2023

얼굴이 그대로이시네요!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10대 때와, 20대 때와, 30대 때와, 하물며 40대 때의 시간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50대 중반 여자의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얼굴이 그대로라는 것은 마법을 부리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실이 아닌 그 말에, 사실이 아닌 줄 아는 그 말에 스르륵 올라가는 내 압꼬리를 제어할 명분은 없었다.


갱년기가 지나면서 부쩍 살도 붙고, 피부도 거칠어고, 얼굴살도 처지고, 거뭇거뭇 얼굴에 기미는 자꾸 짙어지고, 늘어만 가는 눈가 주름의 개수도, 깊어지는 입가 주름의 음영도, 눈에 거슬리는 목주름도, 그 이유 때문에 심리의 질감도 푸석하고 건조해지고 있다.


내 외모에 그리 자신감이 없지는 않았다. 10대 때는 귀엽단 소리를 들었었고, 20대 때는 예쁘단 소리는 듣는 편이었고, 3,40대 때는 두 딸 키우는 일이 인생 최대 숙제였던 때라 외모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주관적인 관심도 줄었고, 타인의 평가도 중요하지가 않았다.


50대가 되었고, 제2의 사춘기라는 갱년기를 지나면서 변한, 변하고 있는 나의 외모의 주관적, 객관적 평가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1년에 1킬로씩, 내가 눈치도 못 채게 야금야금 내 몸은 살이 불어있었고, 눈꺼풀도, 턱살도 처졌고, 피부는 잡티가 지저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옷으로 두리뭉실해진 허리를 교묘히 커버를 해야 했고, 화장을 하지 않고는 현관밖을 나서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대로라고 말한다. 나이를 왜 안 먹느냐고 말한다. 사실이 아닌 줄은 안다.

본인들이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니까 남에게도, 나에게도 그저 하는 말이다. 그 정도는 안다.


그 사실을 잘 알지만 40대 때까지는 어떤 말도, 그 말이 진실이든, 입바른 소리이든 내 외모에 대한 표현에 신경이 별로 쓰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50대가 되고 보니 의미 없이 하는 인사치레에 괜히 사실인양 기분이 좋다. 구부러진 어깨가 펴지고 더 당당해지는 것만 같다.


"하나도 안 변했어요. 그대로이시네요. 나이가 안 먹나 봐요"

거짓인 줄 알지만, 내 귀로 들어오는 순간, 그 말은 진실이 되고, 진실인 척 되고, 그 말의 약효는 적어도 이틀 이상은 지속력이 있다.


100세 시대라는데, 이제 겨우 6할도 못 넘겼는데, 나이 들어서 변하는 나의 외모에 자꾸 주눅이 들려고 한다. 아무도 변한 내 외모에 관심을 두거나 평가를 하지도 않는다. 사춘기 때의 내가 그랬듯이, 오춘기의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호르몬 변화와 반대의 변화일 텐데 감수성은 그때와 같은 성질이 된 것만 같다.


사춘기 때 어른들이 하셨던 말이 있다. "너희 때는 안 꾸며도 예뻐. 나이가 예쁜 거야."

제2의 사춘기가 되었다.

여전히 7, 80대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예뻐, 젊어서 예뻐!"라고.


사춘기 때, 내 나이가 예쁘다는 걸 이해 못 했다면, 50대인 나는 젊어서 예쁘다는 그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감성적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80대가 된 내가 50대가 된 딸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게 될까?"예뻐, 젊어서 예뻐!"라고.

40대의 내가 10대의 딸들에게 "어려서 예뻐, 나이가 그냥 예뻐!"라고 했듯이.


"얼굴이 그대로이시네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그 말에 또 사나흘 약효를 얻어본다. 그리고 나도 되갚아 준다. "어쩌면 그대로이세요? 늘 변함이 없으세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서로 해가며 우리는 제2의 사춘기를 건너는 중이다. 지금보다 젊었던 나의 외모와 끝없이 경쟁하면서. 나만 기억하는 서너 달 전의 나와 비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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