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Sep 07. 2023

나는 소파에 누워서 글을 쓴다.

웅성웅성 시끌시끌, 아랑곳하지 않고 카페 구석자리에 내가 있다. 브랜드가 네이밍 된 커피 잔이 올려진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 펼쳐져 있의자에 등을 붙이고 꼿꼿이 앉아서 글을 쓰는 단정하게 차려입은 내가 있다.

등 뒤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고, 조용한 서재의 널찍한 책상 위에는 가지런히 펼쳐놓은 노트북이 있고, 눈은 아래를 내려다볼 필요도 없이 오로지 화면만 향해 있고, 양손으로 다닥 타다닥 키보드 위에서 열 손가락이 능숙하게 움직이며 글을 쓰는 내가 있다.

도서관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주변의 어떤 상황에도 휘둘리지 않고 내 노트북에만 집중하며 글을 쓰는 내가 있다.

그렇다. 그 모습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나는 주로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또는 늦은 밤 잠들기 전에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글을 쓴다. 차림새는 상상하는 그대로이다. 잠옷도 아닌 것이, 일상복도 아닌 것이 잠잘 때 입으면 잠옷, 동네 산책을 나갈 때 입으면 일상복이 되는 그런 차림이다. 수년 째 똑같은 돋보기안경이 코끝에 매달려있다. 장소도 한없이 자유롭고, 복장도 너무나 편하다.


나는 작은 스마트폰으로 글을 쓴다. 블로그에 가벼운 글도 쓰고, 브런치에 마음먹은 글도 쓴다. 열 손가락이 아닌, 두 손가락도 아닌 오로지 오른손 엄지 손가락만 열심이다. 왼손은 폰을 잡는 용도, 오른손 엄지 손가락은 키보드 자판을 터치하는 용도이다.


그 장소, 그 자세, 그 차림새, 그 핸드폰일 때 글이 잘 써진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인도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방식 그대로 여전히 오른 엄지손가락만 바쁘다.


아직 기가 막힌 글을 써보진 못했지만 언젠가 그런 글이 써진다고 하더라도 내 글쓰기 환경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사람마다 집중이 잘 되는 소와 자세가 있고, 편하게 써지는 도구가 있다. 나에게 그것 우리 집 거실 소파이고, 비스듬히 기댄, 거의 누운 자세이고, 손에 익은 내 핸드폰이다.


지금도 나는 온 지 딱 2주가 되는 인도의 우리 집 소파에 척추가 없는 것처럼 거의 누운 듯이 기대어서 돋보기는 코끝에 걸치고 왼손으로 들고 있는 내 오래된 휴대폰의 익숙한 자판과 글씨크기의 키보드를 오른 엄지 손가락 만으로 부지런히 터치 중이다.

 

나는 내 방식이 어떤 좋은 환경보다 편하고 집중이 잘된다. 느리지만 글씨도 잘 써진다.

모두 멈춘 공간, 세상 조용한 나만 깨어있는 듯한 시간, 내 오른 엄지 손가락만 바삐 움직인다.


큰딸이 열심히 글을 써보라고 사 준 새 노트북은 딸이 독립하면서 엄마 서재로 쓰라고 비워 둔 한국집 그 방 책상 위에 얌전히 놓여있다. 브런치북을 발행하느라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열렸다가  다시 닫힌 지 2주 째이다.


가꾸다 만 한국집의 내 화단만큼 내 노트북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나는 내 방식이 편하고 좋을 뿐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다.


나는 누워서 글을 쓴다. 나는 거실 소파에서 글을 쓴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나는 엄지손가락 하나로만 글을 쓴다. 코끝에는 돋보기가 걸쳐져 있다.

단정하지도 꼿꼿하지도 않으며 한없이 헐렁하다. 그래야만 글이 써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