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대추나무 옮겨심기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때마침 비가 내린다.


4월이 되고 나서 내 작은 정원은 겨울을 걷어내고 봄을 덮고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별이 안되던, 칙칙한 갈색 투성이던 정원은 살아있다고 얘기하듯이, 명랑한 초록잎들로 가만가만 덮이고 있다.


노지월동이 되는 화초들이 겨울을 뚫고 봄을 맞고 있고, 나무에도 초록 봄이 열리고 있고, 새로 옮겨 심은 야생화들도 제자리를 잡고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3평짜리 작은 정원이지만 배롱나무, 목련나무, 보리수나무, 대추나무, 뽕나무가 한 자리씩 자리하고 있는데, 대체로 수형도 예쁘고, 꽃이 피거나 지거나 풍성한 잎만 있어도 좋다. 그런데 유독 눈에 거슬리는 나무가 한그루 있다.


남편이 원해서, 어린 시절 집마당의 추억 때문에 심었던 대추나무이다.


가을에 열매를 맺는 대추나무는 봄 내내 마른 가지로 있어서 미관상 그리 좋은 나무는 아닌 것 같았다. 뽑아버리고 싶지만 남편이 원했던 나무여서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옮겨 심을 만한 적당한 땅을 발견했다.

작은 정원의 좁은 땅을 알뜰하게 가꾸고 있는데, 담장으로 둘러 심어놓은 에메랄드그린 뒤편에 대추나무 한그루 정도 심을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 집과 옆집 사이에, 우리 집 영역인 좁은 공간, 해와 바람이 잘 들지만 사람 손은 안타는 딱 알맞은 곳이었다.


가을에 왕대추가 제법 열렸던 나무인데,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정원에서 쫓겨날 대추나무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자리에는 꽃나무를 심을 요량이었다.



남편과 둘이서 힘겹게 대추나무를 옮겨 심었다.


그런데 옮겨 심은 대추나무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적응력이 강한 나무라고는 하지만 괜히 옮겨서 자리를 못 잡고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염려가 되었다.

에메랄드그린 뒤편에 있어서 대문 안의 우리 집에서는 이제 눈에 잘 안 띄게 되어서 신경을 덜 쓰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린다.

때마침 비가 내린다.

내 걱정을 눈치라도 챈 듯이.


정원을 가꿔보니까 수돗물과 빗물은 식물에 미치는 영향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물을 줘도 시들하던 식물이 비가 내린 다음날엔 눈에 띄게 싱싱해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실제로 빗물은 수돗물과 달리 약산성에, 질소도 포함되어 있고, 염소나 불소 같은 인공첨가물이 없어서 식물에 긍정적이라고 한다.


옮겨 심은 대추나무에, 신경을 덜 쓰게 될까 봐 걱정되었던 대추나무에, 남편이 좋아하는 대추나무에, 가을에 왕대추가 달릴 대추나무에 비가 내리고 있다. 방치하듯이 눈에 안 띄는 구석땅으로 옮겨 심은 다음날이다.


부디 봄비를 흠뻑 마시고, 새 땅에 뿌리를 잘 내려서, 튼튼히 자라주기를..


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린다.

대추나무 위에 비가 내린다.

때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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