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잎이 나고
작은 정원을 가지게 되었다.
아파트를 포기하고 서울을 버렸더니 나에게 꽃밭을 가꿀 수 있는 행복이 찾아왔다.
이사 오기 전부터 이 나무는 내 정원에 꼭 심겠다고, 아무리 정원이 작아도 심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한 나무가 있었다. 이른 봄에 하얗고 큰 꽃이 피는 목련 나무이다.
이사 오기 전, 아파트 주방 창가에 내내 서 있던, 누구보다 먼저 봄을 알리던, 내 시선이 닿던 곳의 나무였다.
희고 큰 우아한 꽃과 사랑스러운 연두잎과 튼실한 짙은 초록잎과 눈 덮인 멋스러운 나뭇가지, 정이 들었던 나무였다.
그래서 정원이 조성되고 심은 첫 나무가 목련이었다.
인도에서 지냈던 작년 4월에는 딸이 보내주는 사진으로만 내 정원의 첫 나무, 첫 꽃을 볼 수밖에 없었지만, 올해는 겨울을 나는 목련나무의 겨울눈과 추위를 지키던 아린과 이른 봄의 꽃망울과 작은 꽃순과 선녀의 드레스같이 우아한 꽃까지, 목련나무에 꽃이 피는 과정 모두를 눈으로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올해로 두 번째 맞는 주택에서의 봄이고, 첫 번째 보는 목련꽃이었다.
우리 집 목련나무는 이웃의 목련보다 꽃이 이르게 폈고, 크고 풍성하게 나무 전체를 하얗게 덮었다. 정원은 여전히 겨울인데 목련나무만 봄이었다. 차갑고 삭막한 정원에 목련꽃이 유일하게 따뜻하고 포근했다.
역시 내 선택이 옳았다며, 작은 정원의 품격이 되어 준 내 목련나무가 더 좋아졌다.
그런데 너무 자랑을 했던 모양이었다.
곧 4월인데 갑자기 눈이 내리더니,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 있었다. 눈 덮인 내 목련꽃은 속수무책으로 영하의 기온에 얼어버리고 말았다. 만개해서 한창 예쁜 때에 그렇게 되고 말았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봉긋하게 힘 있던 하얀 꽃은 갈색이 되어서 모두 축 처져 버렸다. 정원에 나갈 때마다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너무 보기 싫어서 손이 닿는 곳은 억지로, 까치발까지 들고 꽃잎을 떼어내기까지 했다.
이후로는 목련나무에 눈길이 안 갔다. 예뻤던 만큼, 그보다도 더 큰 실망이 그렇게 만들었다.
화원에서 봄꽃 모종을 사서 꽃밭을 가꾸며, 또 그 꽃들이 예뻐서 이미 마음이 떠난 목련나무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연둣빛 귀여운 잎이 달리기 시작했다. 얼어서 힘없이 갈색으로 처져있던, 흉하기까지 했던 그 꽃자리에.
날이 갈수록 연두 이파리는 목련나무를 가득 채웠고, 꽃이 만개했던 때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자태로 변하고 있었다. 꽃잎보다 귀여운 나뭇잎, 흰색보다 사랑스러운 연두색. 흰꽃보다 더 예쁜 연두잎이 나무 가득 덮고 있었다.
활짝 핀 꽃이 최고는 아니었다. 흰꽃이 우아했다면 연두잎은 사랑스러웠다. 꽃도 잎도 최고였다.
목련나무의 변화를 보면서 세상에 최고라고 단정 지을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각자가 가진 매력이 다르기 때문이고, 맞는 때에, 맞는 재능이 발현되는 것이었다.
언제일지 몰라도 묵묵히 내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 매력이, 내 재능이 나뭇가지에 달리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가 반드시 있다고 믿게 된다. 우아하던지, 사랑스럽던지, 귀엽던지, 재미있던지, 부지런하던지, 끈기가 있던지, 참을성이 있던지 각자의 재능과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꽃이 핀다고 마냥 희망을 가질 것이 아니었고, 꽃이 진다고 쉽게 실망할 것이 아니었다.
꽃은 지게 되어있고, 우아한 꽃이 지고 나니까 때를 기다렸던 사랑스러운 잎이 또 다른 매력을 가득 매달았다.
3평 작은 정원은 때마다, 계절마다 사람을 가르친다. 이번에는 목련나무가 내 선생이다.
실망도 끝이 아니고, 시작이 희망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