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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새순이 단단한 나무를 뚫었다.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작년 봄에 호기롭게 구매한 나무가 있다.

이웃집에서 본 한 나무가 너무 멋스러워서 비록 정원은 작지만 우리 집에도 꼭 심고 싶었다.


여러 날 고민 끝에, 폭이 좁은 우리 집 정원에 어울릴만한 수형으로 과감히 한그루 들여와서 용감하게 심었다.


그 나무는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100일 동안 꽃이 핀다는 백일홍(배롱나무)이었고, 제법 큰 그 나무는 하늘 가득 꽤 많은 홍자색 꽃을 피워냈고, 정원 데크에 꽤 넓은 그늘도 만들었고, 벌과 나비, 새들도 머무는 꽤 재미있는 볼거리도 제공해 주었다.


작년, 만개한 우리집 배롱나무


화원에서 막무가내로 키워서 나무가 전체적으로 한쪽으로 기운 듯한 수형이었지만, 가지 정리가 안되어서 한쪽은 집 외벽에 붙어서 더 뻗지도 못했지만, 키가 크고 울창해서 그것만으로도 좋아서 일 년 동안은 나무가 자리를 잡도록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붉은 꽃이 초록잎 사이에 넘치도록 피어서 내내 감탄만 하던 어느 날, 나무 관리가 아직은 서툴었던 탓에 그만 병충해를 입히게 되었고, 아까운 꽃이 거의 떨어지고 말았다.


봄에 우리 집으로 온 배롱나무는 그렇게 여름과 가을을 지내고 겨울을 맞았다.

추위에 약하다고 해서 겨울 내내 부직포에 밑기둥이 감싸진 채로 겨울을 났고, 다시 봄을 맞았다.



병충해 예방도 할 겸, 나무 모양도 다시 예쁘게 만들 겸, 과감히 가지치기를 했다.


하늘이 안 보일 만큼 풍성했던 가지를 가졌던 나무는 키도 많이 작아졌고, 다시 잎이 나고, 꽃이 필지 걱정이 될 정도로 굵고 단단한 가지만 남게 되었다. 벌거벗은 듯한 모양새로 찬 공기에 덩그러니 있었다.


'너무 많이 자른 것이 아닐까?, 저 크고 단단한 가지에 잎이 다시 날까?, 꽃도 잎도 없이 한여름을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수년 동안 벌거벗은 모습만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매끈한 굵은 가지만 남은, 키가 너무 작아진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가지치기를 적당히 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꽃샘추위를 여러 번 겪고 나서, 제법 봄기운이 여러 날 이어지고 있었다.

겨울을 지낸 식물들이 땅을 뚫고, 혹은 연한 가지 틈을 비집고 새순을 보이기 시작했다. 성질 급한 놈들은 어느새 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배롱나무는 여전히 헐벗은 모습으로 정원 구석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화원에서 사 온 꽃모종을 옮겨 심으며, 꽃이 만발한 철쭉과 꽃잔디를 보며, 새로운 봄을 즐기던 즈음이었다.


먼지바람이 지나간 다음날, 정원 화초에 물을 주고, 나무에 물을 뿌려서 먼지를 씻어내었다. 물을 좋아한다고 들은 배롱나무에 빨리 새 가지가 나기를 바라며, 나무 아래 뿌리 쪽만 내내 보며 물을 주느라 가지가 있는 위는 자세히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위쪽으로 물을 뿌리던 내 눈이 굵은 나뭇가지에 붙은 작은 점을 향했다. 본능적으로 가까이 가서 관찰을 하게 되었다.


그 작은 점은 새순이었다.


크고 단단한 나무에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고 연한 새순이 붙어있었다.

감탄사만 나왔다. 흥분되고 들떴다. 믿기지 않는 광경 앞에 얼음이 되어서 내내 그 작은 점을 바라보았다. 진짜 새순이 맞나 싶어서 돋보기까지 끼고 자세히 볼 정도였다.


그 작은 점은 마치 사춘기 남학생의 턱 아래에 돋은 여드름이 모공에서 삐져나온 듯이, 나무 눈에서 힘들게 삐죽 튀어나와서는 매일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흰색 꽃이 피는 이웃의 흰배롱나무 새순이 연두색인 것과 달리, 붉은 꽃이 피는 우리 집 배롱나무의 새순은 꽃을 닮은 붉은색이어서 그 또한 신기했다.


크고, 굵고, 단단한 나무에 어떻게 저런 작고 연한 새순이 돋는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나무눈이라는 것도 연한 새순이 뚫을 정도로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정원의 대추나무나 뽕나무에 돋는 새순과는 분명히 다른 힘이 느껴졌다. 배롱나무는 더 굵고, 더 단단했기 때문이다.


생명의 힘이, 식물의 생명력이 너무 대단하고, 대견하고, 위대해 보였다.


더 이상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자연의 힘은 계절변화와 함께 자신만의 시간을 겸허히 살고 있었다. 새순이 나야 할 봄이 되면 아무리 크고, 단단할지라도 능히 그 나무를 뚫고 연한 순을 세상에 내어놓고야 말았다. 겨울 추위를 견디느라 단단해진 나무를 봄의 따뜻함이 뚫고 나오고야 말았다.


'설마 저 단단한 나무에 순이 나올까?'라며 불신했던 나를 비웃으며 봄이 새순을 내어놓았 듯이, 그 순은 자라서 가지가 될 것이고, 그 가지는 초록잎을 낼 것이고, 결국에는 하늘 가득 붉은 꽃을 100일 동안 피울 것이라고 믿게 된다.



연함이 단단함을 이겼다.

약함이 강함을 이겼다.


강함이 꼭 약함을 이기리란 보장이 없고, 약함이 반드시 강함에 진다는 법도 없다.

안될 것이라고, 불가능할 것이라고, 미리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세상은 예상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자연의 시간도 그렇고, 인생도 마찬가지다.


크고 단단한 가지를 뚫고 나온, 작고 연한 붉은 순은 하늘 높이 피게 될 같은 색의 수많은 꽃을 품고 있었다.


오늘도 내 3평 작은 정원에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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