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낌없이 주는 뽕나무

덜컥 사 버렸다. 까맣게 반짝이며 매달린 오디가 어린 시절로 냉큼 데려다 놓아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질러 버렸다.

그렇게 충동 구매한 뽕나무가 우리 집 작은 정원의 한 자리를 차지한 지 3년이 되었다. 예쁜 꽃이 피는 꽃나무나 수형이 괜찮은 적당한 크기의 과실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꽃도 안 피고, 나무 모양도 투박한, 정원수가 아닌 뽕나무가 떡하니 심긴 지 3년이 되었다.


사람의 외모에 비유하자면 뽕나무는 세련되지 못한 외모를 가졌다. 기둥은 진하거나 연하지도 않은 매력 없는 색을 띠었고, 뻗은 가지는 일자로 곧거나, 타원형이 아닌 정리 안 된 머리카락 마냥 중구난방으로 규칙 없이 자라기만 하고, 잎은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많이 나서, 크고 두껍게 가지를 가득 덮어서, 큰 키도 아닌 나무를 갑갑하게 뒤덮었다.


작은 정원의 정중앙에 생각 없이 심은 뽕나무는 3년째 되는 올해 봄에 유독 내 눈에 거슬려서, 오디를 따먹는 재미는 뒷전이고, 뽑거나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내내 누르고 있었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촌스러운 색과 나무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 이른 봄에 그 충동이 최고치에 달해서 혼자서 뽑을 수만 있었으면 진즉에 내 정원에서 뽑힐 나무였다.


목련나무와 배롱나무 사이, 정원 한가운데 심긴 뽕나무


봄기운이 가득 공기를 덮을 즈음에 뽕나무에 녹색 가지가 나고, 연둣빛 작은 잎이 달리고, 조금씩 나무에 생기가 돌면서, 안 예뻐서 내 마음에서 홀대받던 나무에 신기하게 눈이 가고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여느 나무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빠른 뽕나무는 잎이 커기도 전에 귀여운 초록 오디가 잎들 사이에 숨어서 달리더니, 다른 과실수 보다 빠르게, 한여름이 되기도 전에, 까맣게 익어서 빛나고 있었다. 올해는 봄비가 잦아서 곰팡이균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손가락 끝을 보라색으로 물들이며 잘 익은 오디를 따먹는 재미를 선사했다.


오디도 충분히 달려서 얼려 두고 먹거나, 청으로 담가 먹기도 한다. 오른쪽 사진은 보리수열매와 오디로 만든 청이다.


햇볕이 강해지며 계절은 여름으로 빠르게 달렸다. 작은 정원의 나무와 화초들도 그 볕을 충분히 먹으며, 부쩍부쩍 잘 자라주었다.

뽕나무는 더더욱 빠르고 풍성하게 키도 크고, 잎도 많아졌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꾸만 크는 키와 풍성해지는 잎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수시로 가지를 쳐내는 일이 내 정원일 중의 큰 부분이 될 정도였다.


곁가지를 남은 가지만큼 잘라내고, 키를 줄여도 이렇게 풍성한 뽕나무


그 모습을 본 누가 말했다. 뽕잎을 먹으면 되는데 아깝게 왜 버리냐고. '뽕잎을 먹는다고? 누에가 먹는 건데?'. 내 얕은 상식으로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정보를 찾아봤더니, 뽕잎은 새순은 나물로 먹고, 연한 잎은 쪄서 쌈으로 먹고, 장아찌로 담가서 먹는다고 했다. 몸에 좋은 성분도 꽤 많았다.


너무 자라서 감당이 안되던 뽕나무 잎이 식재료가 된다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당장 연한 잎을 쪄서 나물을 무치고 쌈으로 먹어봤다. 찐 호박잎이나 깻잎보다 식감이 좋으면서 연한 향도 있어서 먹는 재미가 새로웠다. 봄에 난 새순을 모두 잘라 버린 것이 갑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비만 오고 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키가 커서 담장을 넘긴 뽕나무의 연한 잎은 잎맛이 없는 더운 낮에 자주 쌈이 되어서 우리 입으로 들어가고 있다.

뽕잎을 쪄서 쌈장이나 양념간장으로 쌈을 싸서 먹고있다.


올해는 예년보다 무척 더 덥고, 이른 여름이 찾아왔다. 정원 앞 데크에 볕이 너무 뜨거워서 삼각형 천막을 두 개 사서 볕을 가렸더니 한결 시원해졌는데, 마침 두 천막 사이의 빈 공간에 무성히 자란 뽕나무가, 자꾸 커가는 뽕잎들이 그늘막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두 개의 삼각 천막 사이에 잎이 크고 빽빽한 뽕나무가 볕을 가려주고 있다.


귀여운 열매는 초록에서 보라, 검정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와 골라서 따는 기쁨과 달콤한 오디를 먹는 즐거움을 주고, 넘치게 달리는 잎은 새로운 먹거리와 햇볕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홀린 듯이 사서 심었다가 안 예쁘다는 이유로 뽑힐 위기에 있었던 뽕나무는 그렇게 먹거리와 그늘로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고 있다.

농장에서 대량으로 재배되어야 할 뽕나무 한그루가 어쩌다가 작은 우리 집 정원으로 와서는 뽑힐 위기를 면하고 사랑받는 나무가 되었다. 오래 보아야 그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은 변치 않는 진리 같다. 사람도 그렇고, 나무도 그랬다.


비록 3평 남짓 작은 정원이지만 자연을 통해서 배우는 가치가 정원 크기 이상으로 큰 것 같다. 기르는 재미와 더불어 배우는 기쁨을 내 작은 정원이 사계절 내내 가득 품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보리수 열매가 말랑말랑 익어가는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