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슬슬 걸어서 자이살메르 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호텔로 내려온 우리는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사막 사파리를 떠날 채비를 했다.
전날 저녁에 호텔 도착과 함께 가장 먼저 한 일이 사막 사파리 신청이었다. 여행사까지 가지 않아도 호텔에서 그 모든 일이 가능했다. 사파리 출발의 집결지도 그 호텔 앞이었다.
오후 2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오전 11시에돌아오는 사막 사파리 일정은 인당 1900루피에 가성비 대박인 프로그램이었다. 지프차를 타고사막의 폐허가 된 동네 구경도 하고,신비롭고 아름다운 오아시스를 거쳐서 낙타를 1시간 동안이나 타고 가서 사막 한가운데에서 캠프파이어도 하면서 일몰 구경,달과 별구경, 간식도 먹고 저녁도 먹고 캠프에서 1박을 하고일출을 보고 아침을 먹고다시 1시간 동안 낙타를 타고 나와서 지프차로 호텔까지 데려다주는 일정이었다.
단돈 3~4만 원에 우리는 쉽게 해 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했고,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인도, 네팔, 스리랑카까지, 인도를 떠나면서 했던 배낭여행 일정 중에 가장 좋았고,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은 곳이 바로 라자스탄, 자이살메르의 사막 사파리와 캠프였다면 믿을까?
노랗게 반짝이는자이살메르 성을 마주하고 따뜻한 볕을 쬐며호텔 정원의 테이블에 앉아서 사막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지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투숙객을 포함해서 총 19명의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모였다. 쭉 둘러보니까 거의 2~30대의 젊은이들이었고, 우리 부부가 제일 연장자로 보였다. 3대의 지프차에 나누어 타고 드디어 출발을 했다.
남편이 이번 북인도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그순간의 시작이었다. 이집트 사막 1박의 경험이 있었던 나와는 그 기대감 자체가 달라 보였다.너무 좋았던 경험이 있던나는남편과는 또 다른 기대감을 안고 지프차의 외국 젊은이들 틈에 끼어 앉았다.
시내를 벗어나서 얼마 가지 않아초원은 곧이어 황무지로 바뀌었다. 이집트에서는 카이로에서 아침에 출발을 하면하루 종일 지프차를 타고깜깜한밤이 되어서 사막에 도착을 할수 있었는데 그곳은 2시에 출발하면 이것저것 구경도 하면서 가도 아직 해가 떠있는 시간에 사막 캠프장도착이 가능했다.마지막 1시간은낙타를 타고 가는데도 그랬다.
운전기사가 잠시 들를 곳이 있다며 차를 세웠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 위의 마을이라고 했다. 돌로 지은 집들이 폐허가 된 곳이었는데 첫눈에 이탈리아의 폼페이를 보는 듯했다. 언젠가 사람들로 북적였을 부서진 마을은 쓸쓸했고 적막했다. 풀풀 날리는 먼지와 따가운 볕은 사막 위의 사라진 마을을 더 흉흉하게 만들었다. 땅도 말라서 죽은 듯보였고, 마을도 죽은 마을이었다. 허망한 마음이 들었고 목도 말랐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노점의 음료수를 한잔 마시고 다시 캠프장으로 향했다.
먼지 날리는 마른 흙과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황무지의 작은 나무들만 차창 너머로 간간이 보이던 내 시야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런 곳에 있을만한 풍경이 아니었다.생뚱맞고 이질적이었다. 오는 내내 보이던 흙먼지와 건조한 공기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말로만 듣던 사막 위의 '오아시스'였다.
얕아 보이는 연못은 꽤 넓었고, 햇빛에 반짝이는 잔물결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했다. 정차와 동시에 지프차 안의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 나라 식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차에서 내려서는 내리 연못을 향해서 걸어갔다.
오아시스 주변에서 꽤 오랜 시간 멈추어있었다.사막 한가운데의 연못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신비로운 그곳 주변을 으슬으슬걸으며 사람보다 훨씬 큰 선인장을 구경하려고 언덕 위에 올라섰다. 오아시스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연못에는 하늘이 본래보다 더 짙은 색으로 담겼고, 제법 큰 나무들도 구불구불 그대로 담겼고, 놀고 있는 꼬맹이들도 아른아른 담겨있었다.
어디선가 가늘고 길고 높은 피리 소리가 들렸다. 인도 전통 복장을 한 남자가 부는 피리 소리였다. 그 남자는 분명히 내 눈에 보이는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는데 피리 소리는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은지평선의 어느 틈을 헤집고 나와서 내 귀 언저리까지 날아와 꽂히는 느낌이었다. 풍경도 신비로웠고, 피리 소리는 마치환청처럼들렸다.'오아시스'라는 특별한 장소가 주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프차만 오면 어디선가에서 피리 부는 남자가 나타났다.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버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인도 옷과 피리 소리와오아시스는 외국인인 우리 눈에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박수를 치고 10 루피씩을 건넸다.수입이 나름 괜찮아 보였다.
다시 차가 움직였고 얼마 가지 않아서 마을도 보이고, 학교도 보였다. 그 황무지 사막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쫓아오는 교복 입은 귀여운 아이들에게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길을 걷고 있던 특이한 복장의 여자 근처에 차가 멈췄다. 운전기사가 아는 사람인 듯 보였다.
노랑, 분홍 짙은 색 옷을 입고 스카프로 머리와 얼굴을 모두 가린 여자들은 굵은 은팔찌를 어깨 아래부터 팔꿈치까지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인도에 10년 넘게 살면서 여러 도시를 여행 다녔지만 처음보는 복장이었다. 사막의 소수 민족인 듯했다. 보조석에 앉은 관광객 여자의 손바닥에 그려진 헤나가 예쁘다며 한참 동안 살펴보더니운전기사와 인사를 건넸다. 얼굴을 가린 스카프는 끝끝내 그대로 휘감은 상태였다.
여자들과 헤어지고 차는 낙타로 갈아 탈 장소까지 내리 달렸다. 앞서가는 지프차들도 갑자기 많이 보였고, 이미 낙타로 갈아타고 사막 캠프장으로 이동하는 그룹들도 보였다. 지프차마다 정해진 장소가 있어서인지 우리 차는 낙타 무리를 지나서 한참을 더 올라갔다.
드디어 우리가 탈 낙타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도착을 했다. 색색깔 천으로 덮은 등 안장을 지고무릎을 꿇고 모여 앉아 있는 낙타 떼의모습이 귀여우면서 장관이었다.각자 한 마리씩 정해서 낙타 등에 올라탔다.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주변에서 탔던 낙타보다 작고 순해 보였지만 역시 낙타 등은 꽤 높았다.
여자들이 앞서고 그 뒤를 남자들이 따랐다. 끈으로 이어서 줄을 지어 걷게 했다. 19마리 낙타에 몰이꾼은 세 명이 전부였다. 젊은 남자가 앞선 무리를 맡고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낙타꾼이중간쯤의 내 낙타를 끌었고 뒤에도 남편이 속한 한 무리가 따랐다.내가여자이면서 나이가 가장 많아 보여서인지중간 무리의 맨 앞에 세우더니 낙타꾼이 내 낙타를 잡고 끌어 주었다.
그들의 염려와 달리 나는 이런 액티비티를 즐기는 편이다. 비록 낙타 등은 높았고, 비틀거려서 꽉 잡아야 했고, 엉덩이도 아프고, 허벅지 근육이 당긴 듯했지만 나는 한 손만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으며 그 시간들을 즐겼다.
황무지 사막의 먼지 날리는 길 위를 높은 낙타 등에 앉아서 흔들흔들 지는해를 따라서 서쪽 방향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풍력발전기들이 설치미술품처럼 하얗게 서있는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걸었다.
생각보다 제법 낙타도 잘 타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여유롭게 한 손으로 사진을 찍는 내 모습에 나이 많은 낙타꾼이 계속 잘 탄다며 칭찬을 했다. 뒤 따라오던 남편도 처음에는 조심하라며 신경을 쓰더니 점점 안심하는 눈치였다.허리도 아프고 허벅지 안쪽이 당겼지만 너무 재미있는 낙타 타기는 그 불편함 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앞서 걷던 낙타 한 마리가 말썽을 부렸다. 젊은 낙타꾼이 어떻게 해 보려고 해도 뭣 때문에 뿔이 났는지 그 낙타는 한동안 버둥대며 소란을 피웠다. 지켜보던 나이 많은 낙타꾼이 진정을 시켰고, 내 낙타를 끌고 맨 앞에서 앞장을 섰다. 기분이 꽤 괜찮았다. 모든 낙타들이 한 줄로 서서 내 뒤를 따르는데 마치 그 무리의 리더가 된 마냥 으쓱했다. 그 순간에 나는 그 무리들의 대장이었다.훠이훠이 사막의 마른바람을 가르며 낙타 떼도 이끌었고 다리가 긴 낙타 그림자들도 이끌었다.
우리를 가로질러 가는 다른 그룹들은 알록달록 예쁜 인도 두건을 쓰고 라자스탄의 사막인들처럼 하고서 그 분위기를 즐기는 듯 보였다. 긴 낙타의 다리 그림자가 그 무리를 따라서 같이 움직이는데 그 풍경이 장관이었다.
누런 땅과 누런 낙타, 그 위의 빨강, 노랑 두건들과 검은 긴 그림자들이 말도 못 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지는 해의 노란빛이 마치 조명처럼 비추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어느새 황무지는 모래사막으로 바뀌었다. 갑자기낙타가 달리기 시작했다. 몰이꾼이 재미를 위해서 그렇게 유도를 했다. 모래 위를 키 큰 낙타 등에 앉아서 달리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유로웠고, 자유로웠다. 달리고 걷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다시 슬슬 걷기 시작했는데 뒤 따르던 젊은이들은 계속 달리고 싶어 했다. 내 나이가 그때서야 실감이 났다. 나는 좀 힘들었었다.
그렇게 1시간여를 낙타 등에 앉아서 아름답고 고요한 사막을 걸었다. 해는 점점 기울었고, 지평선 위의 하늘은 조금씩 주황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낙타의 그림자는 다리 길이가 최대치가 되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졌다. 건물에 둘러 쌓인 도시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그림자였다.
우리들의 목적지인 캠프장에 도착했다. 마른 잎으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그늘막이 보였고, 캠핑에 필요한 물건들이 비닐에 덮여있었다. 사막에서의 1박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1시간 동안 정이 든 낙타에서 내렸다. 훈련이 된 낙타들은 얌전히 앉아서 꼼짝을 안 했다.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캠핑장 근처를 둘러보고, 낙타와 사진도 찍으며 사막에서의 캠핑에 들떠있던 그 순간, 지평선 위의 하늘이 온통 주황빛으로 물이 들고 있었다. 해가 지는 곳부터 점점 옅어지는 주황빛이 360도 둥근 지평선 하늘 위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모두 숨죽여서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장관'이라는 단어의 실체가 눈앞에 펼쳐졌다.
넓고 넓은 사막 위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일몰의 장관을 감상했다. 남편은 어느새 멀리 모래 언덕에 올라가서는 처음 본 사막에서의 일몰에 푹 빠져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부드러운 모래의 감촉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걷고 걷고 계속 걸었다. 모래가 양말속에도 머리카락 속에도 옷 속에도 날아들었지만 그마저도 사막의 재미였다.
해가 내려앉고 나니까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서 코끝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춥다고 느껴졌다. 때마침 미리 와있던 캠프 도우미, 사막인 청년들이 따뜻한 짜이와 쿠키를 건넸다. 넓은 사막 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짜이 한 잔과 쿠키 몇 조각이 사막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꽤 괜찮은 간식이 되어 주었다.
갑자기 불을 피우던 사막인들이 튀김을 만들기 시작했다. 금방 튀긴 과자와 야채 튀김은 사막에서 먹으니까 더 맛있었다.
젊은 청년들은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서 가지고온 맥주와 양주를 꺼내 마시면서 처음 본 이들과 금방 친구가 되어서 노래도 부르면서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그 자리에 낄 수는 없고 미리 펴 놓은 텐트에 가방을 옮겨 놓고 잠시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청년들에게 맥주 한 잔을 얻어 마신 남편은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꿈꾸던 여행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보였다. 캠핑장 주변을 어슬렁 거리면서 깜깜한 사막을 즐기고 있었다.
주부 마음이 발동한 나는 저녁 준비를 하는 사막인들사이에 껴 앉아서 같이 짜파티를 구웠다. 외국인이 자기들과 놀아주고 같이 음식도 만드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그 사막인 청년들이 계속 말을 시키는데 한국어 단어를 꽤 알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들 오는 곳인 것 같았다. 나는 콩글리쉬,그들은 드문드문 한국어로 대화가 오갔다.가장 재미있었던 말, "한국 사람 염소고기 잘 먹어요"
제일 연장자 낙타꾼의 나이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세상에 마흔 살이란다. 내 눈에 분명히 70대 할아버지였는데 마흔 살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사막에서 35년을 살아서 빨리 늙은 거라며 멋쩍게 웃었다. 매일 낙타를 끌고 사막을 왕복 2시간을 걷고 궂은일도 하고 사막 그 추운 데서 잠을 자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이해가 되었다.
사막에서의 저녁밥이 꽤 푸짐했다. 모닥불로 만든 음식이라고 믿기지 않을 메뉴였다. 커리에 비빈 밥도, 닭고기 요리도, 금방 구운 따뜻한 짜파티와 소스도 제법 먹을 만했다. 후식으로 스위티도 있었다. 제대로 인도 로컬 음식을 맛봤다.
식후에 모닥불 주변으로 둥글게 모두 모여 앉아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인종, 다양한 나이, 다양한 직업의 젊은이들이 그날 그 밤에 그렇게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플라스틱 물통을 악기 삼아서 연주를 하며 즐겁게 노래 부르는 청춘들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달이 떴다. 사막의 달은 유독 더 커 보였다. 밝은 달빛에 별들은 모두 숨어 버렸다. 하늘엔 달과 인공위성만 반짝였다.
청년들끼리 놀게 하고 우리는 일찍 텐트에 들어갔다. 반은 텐트, 반은 야상 침대에서 자야 했는데 남자들이 야외에서 자는 걸로 얘기가 되었다. 2인용 텐트에 1인당 매트와 담요 하나씩 지급이 되는데 그걸로 사막의 찬 냉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가지고 온 옷을 모두 껴입었다. 내복, 목티, 니트, 패딩조끼, 패딩 그리고 털모자를 쓰고 스카프로 목부터 얼굴 반을 가렸다. 그렇게 하고 가지고 온 침낭에 들어갔는데도 찬 기운을 막지는 못했다. 낙타를 오래 탄 덕분인지 추위에 떨면서도 잠이 들었고, 물통 두드리는 소리와 노랫소리도 자장가로 들렸다.
가장 먼저 잠이 든 우리가 가장 먼저 잠을 깼다.텐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느껴져서 나가 봤더니일몰을 봤던 반대편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위치만 다를 뿐 전날 밤과 똑같은 풍경이 지평선 위에 펼쳐져 있었다. 남편은 언제 갔는지 어느새모래 언덕 위에 올라가 있었다. 일몰 때와 자리만 다를 뿐 그 모든 모습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아 보였다.하늘은 동쪽에서 시작된 붉은 기운이 360도 둥근 지평선 전체를 차츰 연한 색을 입히고 있었다.
하루 사이에 일몰도, 달도,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도 그리고 일출까지 볼 수 있는 사막이었다. 산과 바다에서 보는 일출도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 사막에서의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았다. 사막이라는 특별한 장소가 주는,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해돋이라는 이유가 큰 것 같았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만 보고 있었다. 새벽 늦게까지 놀고 잠이 든 젊은이들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 나이에는 그럴 수밖에 없다며 남편과 같은 생각을 했다.
추위에 떨며 그 할아버지, 아니 그 아저씨가 모닥불에 짜이를 끓이고 있었다. 옆에서 거들고 있는 젊은 인도 남자가 너무 옷을 얇게 입고 있어서 내 패딩을 빌려줬다. 고맙다면서 짜이 첫 잔을 나에게 건넸다. 밤새 떨었던 몸이 뜨거운 맛살라 짜이 한 잔에 금방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모래 속에 전날 저녁에 사용한 식기가 있길래 이유를 물어봤더니 사막은 물이 귀해서 모래로 설거지를 한다고 했다. 모래로 닦아내고 천으로 한번 더 닦는다고 했다.
하루 사이에 우리도 이미 사막인화가 되었는지 그 모습을 보고도 내 손에 들린 짜이 컵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뜨거운 짜이 잔을 들고 조용한 캠프 주변의 사막 위를 산책했다. 낙타 떼를 따라왔던 백구가 제일 먼저 반겼다. 전날 저녁에 쿠키를 줬더니 알아보는 듯했다.
모래 위에는갖가지 발자국들이 많이 보였는데, 낙타와 개 발자국 옆에 내 신 발자국도 찍혔다. 유독 작고 귀여운 자국이 보여서 따라 가보니 '쇠똥구리'였다. 정확하게는 '낙타똥구리'라고 해야 맞는 귀여운 곤충이 작은 발자국을 찍으며 바쁘게 걷고 있었다.
사막에서의 아침 산책이 꽤 좋았다. 걸어도 걸어도 똑같은 거리의 지평선이 어느 방향으로 돌아서 봐도 똑같은 풍경이었다.
하얀색 달이 지는 곳이 서쪽, 빨간 해가 떠오른 곳이 동쪽이겠거니 생각은 되었지만 땅만 보면 거기가 거기인 모래위를 코끝이 차가워지는 것도 잊고 캠핑장이 눈에서 멀어지지 않게 뒤돌아 보면서 한참을 걷고 걸었다. 한 하늘에 달도 선명하고, 해도 선명해서 그 풍경이 너무 신비로웠다.
산책을 하고 돌아왔더니 그제야 하나둘 담요를 걷어내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야상 침대가 추웠는지 그곳은 이미 모두 일어나있었고, 텐트는 아직 지퍼가 닫힌 곳이 여럿 보였다.짜이를 한 잔 더 마셨다. 얼굴이 제법 얼얼해 있었는데 뜨거운 짜이가 녹여주었다.
사막인들의 아침 식사 준비 모습이 보였다. 과일을 깎고, 토스트를 굽고 라면을 끓였다. 사막에서의 아침 식사도 꽤 그럴듯했다. 잼과 버터, 마른 프라이팬에 데운 따끈한 식빵, 커리 라면, 파파야 바나나, 귤. 제법 괜찮은 아침 메뉴였다. 모두 둘러서서 맛있게 먹었다. 낙타를 또 1시간이나 타려면 든든히 먹어둬야 할 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바로바로 모래 설거지가 시작되었다. 다시 봐도 신기한 모습이었다.
그러고 둘러보니 낙타는 안 보이고 안장만 모래 위에 흩어져 있었다. 낙타꾼들이 어디에서 찾았는지 그 넓은 사막에서 낙타 떼를 끌어 오고 있었다. 먹이를 먹이고 데리고 온다고 했다. 사막에서도 그들은 길을 잃지 않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등에 안장이 올려지고 낙타는 관광객들에게 등을 내어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패딩은 돌려받고 잘 때 두르고 잤던 스카프를 추우면 하라고 건넸는데 나중에 보니 다른 사람 목에 둘러져있었다. 사막인들이라도 취향은 있을 테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이제 사막 캠핑장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일정이 바쁜 몇몇은 지프차로 바로 시내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다시 낙타 등에 올라탔다. 이제는 낙타 타기도 자연스러워졌다.아침 해는 더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고, 나는 남편 뒤를 따르며 사진을 찍으며 낙타 타기를 즐겼다.
그 할아버지, 아니 마흔 살의 아저씨가 사는 동네에 까지 내려갔다. 낙타를 그곳에 모아 두는 것 같았다. 아저씨의 두 아들이라며 인사를 하는데 아직 어려 보였다. 끝까지 안 믿기던 아저씨의 나이를 믿게 해 주는 두 아들이었다.
단체 사진을 또 찍었다. 사진 찍는 걸 유독 좋아하는 인도 청년의 제안으로 여러 장의 단체 사진을 찍고, 나는 그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와도 기념사진을 남겼다.
엄마 마음이 또 지갑을 열게 했다. 아들 과자 사주라고 용돈을 건넸더니 다음에 오면 꼭 자기 사진 보여주고 찾아오라고 했다. 낙타를 끌어 주고, 같이 짜파티를 굽고, 그 새벽에 짜이도 끓이면서 하루 사이에 꽤 정이 든 것 같았다.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렇더라도 찾게 될까 싶었다.
지프차를 타고 호텔을 향해 가는 중에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과 맞닥뜨렸다. 낙타 한 마리가 도롯가를 걸으며 우리 차 옆을 지나고 있었다. 도롯가에 낙타라니, 너무나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염소 떼도 자주 보여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 지루하지가 않았다.
아침햇살에 노랗게 빛나는 성벽이 보이더니 이내 맞은 편의 호텔에 도착을 했다. 예정 시간이었던 오전 11시 즈음이었다.
욕실이 좀 낡아서 다른 룸으로 바꾸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더 깨끗하고 넓은 방으로 옮겨 주었다.
짐을 옮기고 따뜻한 물에 사막 모래를 모두 씻어내고 한잠 자고 나온 우리는 야외 식당 테이블에 앉았다. 성벽을 마주하고 앉아서 뜨거운 블랙커피와 토마토 수프와 토마토 치즈 토스트와 버터 난을 주문해서 여전히 맛있는 점심 식사를 했다.
오후 반나절 동안 갈 만한 곳을 물어봤더니 호텔 직원 셋이서 설왕설래 한참을 의논해서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넸다. 번호 순서대로 가면 된다며 오토릭샤도 불러줬다. 그래서 우리는 그 찢어진 쪽지 하나만 들고 툭툭에 올라탔다. 우리가 가는 곳은 오로지 그 오토릭샤기사와 찢은 쪽지 하나게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