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떠나면서 하는 인도 여행(9)
4시간 30분 거리의 조드푸르에서 자이살메르로 가는 길이었다. 조드푸르의 호텔에서 연결해 준 착한 인상의 택시 기사는 시속 100km를 유지하며 지루하고 건조한 풍경 속의 일직선 도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돌을 넘치도록 실은 트럭들이 황무지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이 우리가 본 유일한 풍경이었다. 덮개도 없이 돌을 가득 쌓아 올린 트럭들이 우리 눈에만 위험해 보이는지 택시가 자꾸 그 뒤를 따라가서 기겁을 했다. 인도인들의 안전불감증은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얘기를 듣고 그제야 기사는 트럭을 피해서 운전을 해 주었다.
두어 시간 가다가 차를 세웠다. 채소도 있고, 짜이 장수도 있는 도로변 가게 앞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후 4시, 인도인들의 짜이 타임이었다. 우리도 내려서 짜이(thai: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지역의 밀크티)를 한잔 마셨다.
지저분한 노점은 인도에서 11년을 살았어도 적응은 어려웠지만 팔팔 끓인 뜨거운 짜이에는 이미 적응이 된 우리의 장이었다.
잔 받침대에 넘치도록 부어 주는 짜이가 남편은 못마땅한 듯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까 인도 남자들 모두가 잔 받침대에 짜이를 부어서 식히면서 마시는 것이 보였다. 문화의 차이가 그런 것이었다. 첸나이에서는 한 번도 못 본 광경이었다. 자칫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으로 오해할 뻔했다. 그래도 우리는 컵째로 호호 불어가며 생강향 가득한 뜨거운 짜이를 우리 식대로 마셨다. 여행길의 피로도 풀렸고, 졸린 눈꺼풀도 추켜올려졌다.
운전기사는 저녁거리 채소를 사고, 남편은 바나나를 사서 차에 올랐다. 몇 푼 안 하는 짜이 값도, 채소값도 남편이 같이 계산을 한 모양이었다. 운전기사가 너무 고마워해서 남은 여정의 택시 안이 갑자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자이살메르가 가까워질수록 땅은 더 건조했고, 사막의 모래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변에는 귀여운 염소가 많이 보였는데, 긴 막대기를 들고 염소몰이를 하는 나이 많고 마른 모습의 인도 남자들은 쓸쓸한 황무지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공기도 건조했고, 풍경은 더 건조했다.
해가 기울고 있는 도로 위에 어느 순간부터 군용 트럭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하더니, 부대가 얼마나 넓을지가 짐작되는 수백 미터가 될 것 같은 긴 군부대 담벼락을 지나야 했다.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도시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지만 갑자기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왜 긴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지내 본 2박 3일 동안의 자이살메르는 평온했고 안전했다.
황무지만 보이다가 군부대가 보이고, 작은 호텔들이 보이더니 어느새 자이살메르 도심으로 차가 진입을 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도 점점 쌀쌀해지는 기온이 느껴져서 검색을 해보니 섭씨 19도까지 떨어져 있었다. 사막 도시여서 일교차가 심하다더니 사실이었다.
귀국 비행기 예약부터 해 놓고 여행 루트를 잡다 보니 시간이 좀 빠듯했다. 그래서 라자스탄은 3개 도시만 돌아보기로 했었다. '우다이푸르'는 포기하고 '자이살메르 사막'에서의 1박을 선택한 우리였다. 해가 지면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사막이 가까이에 있다는 기분이 들면서 사막에서의 1박이 기대되었다.
해가 짧은 12월의 라자스탄이었다. 6시가 조금 넘었는데 이미 깜깜했고, 택시가 내려주는 곳에도 호텔 불빛만 있을 뿐 사방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짐을 내리고 호텔 입구 쪽으로 걷다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황금색 성벽이 검은 하늘을 배경 삼아서 눈앞에 가득,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밝은 성벽 외에는 그 무엇도 없는 야경이었다. 예약한 호텔이 성벽 바로 코 앞이었다. 아고다에서 대충 가격대만 보고 예약한 호텔들이 여행 내내 만족스러워서 다행이었다. 자이살메르에서도 역시나 그랬다.
호텔 실내는 자이살메르 그 자체였다. 앤틱 하지만 깔끔했고, 직원들도 모두 친절했다. 자물쇠도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 마저도 정겨웠다. 소품 하나하나가 모두 라자스탄의 자이살메르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유적지 도시에서는 현대식 호텔보다 그 지역 특유의 전통적인 분위기가 훨씬 좋은 것 같았다. 우리 부부 마음에 꼭 드는 호텔이었다.
야외 식당이 너무 추웠지만 그 밤에 다른 식당을 찾을 수도 없어서 호텔 식당에서 벌벌 떨면서 저녁을 먹었다. 따뜻한 양송이 수프와 난과 볶음밥과 킹피셔도 한병 주문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벽을 바라보며 추위에 떨면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배도 불렀고, 몸도 따뜻해졌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여행 중 마시는 맥주 한잔의 위로는 알고 있었다. 여행 내내 남편과 기울였던 맥주잔은 말을 대신하는 하루의 마무리였다.
섭씨 12도까지 기온이 떨어졌다. 최고 45도가 넘는 한여름만 있는 남인도 첸나이에서 10년 이상을 산 우리 체질에 12도는 거의 영하의 날씨로 체감이 되었다. 귀국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한국에서 가져다 놓은 매실청을 따로 챙겨뒀었다. 여행 가방에 넣어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뜨겁게 한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여전히 몸은 으슬으슬 떨리고, 코끝은 차가웠다.
사람이 습관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벽에 붙은 하얀색 전자제품이 우리는 당연히 에어컨이라고 생각했다. 11년 동안 봐 온 것이 에어컨이었으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에어컨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 없이 건드리지도 않았다. 추웠지만 인도이고, 겨울이니 어쩔 수없다고 생각했다. 피곤했던 탓에 두꺼운 담요를 푹 뒤집어쓰고 금세 잠이 들었고, 추운 줄도 몰랐다.
이후에 네팔에 가서야 알아차렸다. 벽에 붙어있던 하얀색 전자제품은 에어컨이 아니라 온풍기였다는 것을. 네팔의 호텔에도 똑같은 물건이 벽에 있었고 호텔리어가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었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된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다.
아침에도 전날 저녁때와 마찬가지로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오더 메뉴로 식사를 했다. 저녁때보다 더 추운 야외 테이블이었다. 유리컵에 부어 주는 뜨거운 블랙커피와 잼과 버터가 있는 토스트 식빵과 오믈렛과 토마토 치즈 샌드위치가 우리의 메뉴였다. 토마토 치즈 샌드위치가 딱 우리 취향이었다. 쓴 커피와 너무 잘 맞는 아침 메뉴였다. 이후로도 우리는 자이살메르에 머무는 내내 같은 메뉴를 선택했다.
가리는 음식이 없이 뭐든지 잘 먹는 우리 부부는 인도 배낭여행이 힘들지 않고 즐거웠던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식성이기도 했다. 한식을 안 먹어도, 김치나 고추장이 없어도 여행 중에 우리는 언제나 맛있게 잘 먹고 다녔다.
전날 밤에 조명 아래에 황금빛으로 빛나던 성벽은 황금빛이라기보다는 밝은 모래색이었다. 사암으로 쌓아 올린 성벽이 햇볕에 반사되면서 밝은 노란색으로 보여서 '골든 시티'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자이살메르에 오는 길에 많이 보였던 트럭 위의 돌들의 의문 점이 풀렸다. 그 돌은 이 도시의 건축자재였었다.
자이푸르의 화려한 외벽의 '하와 마할'과 조드푸르의 웅장하고 멋있었던 '메헤랑가르 성'을 먼저 보고 넘어왔던 우리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외벽의 생김새가 너무 소박하고 평범해 보였던 자이살메르 성이었다. 호텔에서 나와서 쉬엄쉬엄 걸어서 성 구경에 나섰다.
성 입구를 향해서 성벽을 따라 걸었다. 아침부터 무척 분주한 길이었다. 자동차, 오토바이, 오토릭샤, 거기다가 소들까지 사람들과 뒤엉켜서 혼잡한 길이었다. 우리도 그 모든 것들을 피해서 걸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성의 입구가 보였다.
티켓팅을 하려고 매표소를 찾았지만 그런 곳은 보이지가 않았다. 알고 보니 매표소 같은 곳은 없는 성이었다. 그곳은 구경만 하는 성이 아니라 현재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이상하게 호텔에서 올려다본 성의 창문마다 커튼이 달려있고, 에어컨 외부기도 보여서 의아하게 생각을 했었다.
성 문을 통과했더니 상점들과 노점들이 많이 보였다. 성이라기보다 동네 초입의 상가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사람이 살고 있는 성이라는데 가게가 있는 건 당연했다.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엄청 몰리고 있어서 우리는 상가는 지나치고 바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수공예품을 파는 노점들도 많았고, 차들도 드나드는 곳인데 너무 좁아서 첫인상은 크게 기대를 안 하게 만들었다.
혼잡한 입구를 빠져나오자마자 광장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아서 어수선한 느낌과 함께 활기찬 기분을 함께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높은 계단이 있는 오른쪽으로 향하는데 우리는 다소 한적한 왼쪽 길을 택했다. '자이나교 템플과 선셋 포인트'라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서민들이 사는 평범한 동네 골목이었다. 정말이었다. 사람이 사는 성이었다. 가정집도 있고, 식당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고, 서점도 있고, 할머니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오는 아가도 있고, 교복 입은 귀여운 여자 아이가 대문 앞에 서 있는 그런 동네였다.
성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전 도시에서 본 화려한 성에 비교해서 별 기대 안 했던 우리는 겨우 성안의 마을 초입에서 그 성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더 흥미로운 모습일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기대감이 주는 행복감, 그 좋은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념품 가게 구경도 재미있었다. 액자며, 도자기며, 자물쇠며, 스카프며, 냉장고 자석이며, 파는 물건 구경도 좋았지만 그 물건을 파는 겨울 복장을 한 인도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남인도에서만 10년을 넘게 살아서인지 북인도의 이국적인 풍경에 겨울 옷을 입은 사람들도 한몫을 했다.
낙타 뼈로 만든 세월의 손 때가 묻은 낡은 액자를 기념으로 하나 샀다. 귀국을 하면 북인도 여행을 추억할 사진 한 장쯤은 거실 한편에 두고 싶었다.
다소 복잡했던 초입의 가게 골목을 지났더니 노란색의 화사한 다른 분위기의 골목이 나타났다. 아침 햇살에 비치는 노란색 집들이 너무 예뻤다. 집 앞에 널린 빨래들도 먹을 걸 찾아서 골목을 떠도는 소들도 노란 집들과 함께 현실이 아닌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컬러감에서 오는 환각 증상 같았다.
조용한 동네를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궁금해서 그 끝까지 가봤더니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성안의 명소, 바로 'Sun Set Point'였다.
골목 입구의 이정표가 가리키던 곳이었다. 사람들이 거의 내려가고 나서 우리도 그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데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성벽 끝의 높은 곳에 대포가 놓인, 자이살메르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뷰가 끝내주는 장소였다.
사암으로 지은 집들은 아침해에 반사되어서 성 아래 마을 전체가 노랗게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골든 시티'라고 불리는 이유가 눈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은 그림자가 짙었고, 상대적으로 멀리 보이는 마을은 햇빛 때문에 밝고 반짝였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성벽 위를 오가며 한참 동안 그 아름다운 '골든 시티'를 눈에 담았다.
그 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두 내려가고 우리 부부만 그곳에 남아있었다.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고, 짜이도 팔고 있었다. 두 잔을 주문했다.
낡은 플라스틱 의자 위에 밥숟가락이 얹어진 설탕 그릇과 볼품은 없는 사기 잔에 담긴 짜이가 올려졌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멋진 카페였다. 그런 곳에서 그런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런 유니크한 테이블을 앞에 두고 마시는 짜이 한잔은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그 순간을 기억해 두고 싶어서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동네 풍경과 하늘과 가게와 멀리 성벽이 모두 보이게 사진 구도를 잡아 주고 그대로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수차례만에 겨우 원하는 사진을 얻었다.
인도 사람들은 모든 사진을 인물 위주로 사람만 크게 찍거나 화면 정 중앙에 사람이 떠있듯이 찍는다. 그래서 내가 설명하고 위치를 정하고 그대로 버튼만 누르면 된다고 해도 자꾸만 사람만 크게 찍곤 했다. 그래도 여러 번 찍어 주는 사진을 재미있어해서 고마웠고 다행이었다.
이름 그대로 해질 무렵에 얼마나 더 예쁠까 싶어서 다음날 저녁에 다시 와보기로 했다. 그때는 사람이 많아서 우리만의 멋진 카페는 차지할 수 없겠지만 골든 시티 위의 아름다운 보랏빛 노을을 보고 싶었다.
너무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고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광장 쪽일 것 같은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사람 사는 동네의 골목 구경은 언제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쉬엄쉬엄 남의 동네 구경을 하며 좁은 문을 빠져나오는데 남편 머리에 '픽'하고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니까 전깃줄에 비둘기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여행지의 매력에 푹 빠져서 너무 행복했던 우리는 그 마저도 즐거운 에피소드였다.
문을 빠져나왔더니 처음 그 장소, 광장이 나타났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있었고,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관광객을 상대로 핑크색 솜사탕을 파는 사람도, 전통악기 버스킹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역시 사람 구경은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가는 안 가본 골목을 우리도 따라 가봤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날 브라만의 고급 주택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박물관 안에 들어가는 건 포기해야 했다. 수학여행을 온 여학생들의 뒤꽁무니만 따라서 거의 밀리다시피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 마저도 재미였다.
범상치 않은 건축물이 보였다. 맨 처음 입구에서 본 이정표 사진에 있던 '자이나교 템플'이었다. 남인도에서 많이 본 '힌두교 템플'과는 다른 형태였고 내부도 심플했다. '골든 시티'의 템플 답게 눈에 띄는 노란빛의 예쁜 건축물이었다.
템플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데 하얀 소 한 마리가 자꾸 우리 주위를 서성이길래 겁에 질린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템플 옆의 문을 통과했다.
'시티뷰'라는 이정표를 따라서 걸어갔는데 부서진 성벽에 나뒹구는 돌들만 보였고 별다른 풍경은 없었다. 이제는 그만 성 밖으로 나가자 싶었다. 2시에 출발하는 사막 캠프 차량에 늦지 않게 점심도 먹고 짐도 싸야 했다.
돌아서 내려오는데 세상에 너무 예쁜 풍경이 눈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표현의 현실이었다. 노란색의 돌 벽에는 화사하게 햇빛이 비치고, 알록달록 빨래가 심심한 노란 벽 위에 재미를 더하고 있었고, 무심히 서있는 오토바이 옆으로 소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노란 벽에 하늘색으로 포인트를 준 집 안에는 벽색과 똑같은 노란색 사리를 입은 주부가 점심준비를 하는 듯이 보였다.
여행 중에 별것 아닌 것에 눈길이 가고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자이살메르 성안에서 내 눈길이 갔고, 감동을 받았던 풍경의 한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햇빛과 함께 화사한 그 모든 풍경이 너무 따뜻했고 평화로웠고 아름다웠다.
자기 눈에는 그 정도는 아닌데 내가 너무 오버한다 싶은지 남편은 내 말에 크게 동의는 안 했지만 멀찍이 서서 내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내 눈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성 입구를 향해서 빠른 걸음을 움직였다. 사막에 다녀와서 한번 더 와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성이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동네 구경을 하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성 안에는 기념품 가게나 식당뿐만 아니라 게스트하우스가 많았는데, 그곳에서 숙박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한글이 적힌 간판이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보여서 신기했다. 아마도 한국인 관광객이 적어준 것 같은 글씨체였다.
나는 원래 이런 곳을 좋아한다. 멋지고 고급스러운 곳보다 사람 냄새나는 곳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남편의 취향도 이런 곳이라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만 내려가고 싶은데 오히려 남편이 더 아쉬워하며 구석구석 눈에 더 담고 있었다.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두 시간 동안 성안의 동네 구경을 재미있게 했다.
아쉬웠지만 성 밖으로 나왔다. 사막에 다녀와서 한번 더 와보자고, 성 안에서 저녁을 먹고, 노을도 보고, 밤에도 다녀보자고 남편이 제안했다.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아쉽게도 그 바람은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그 정도로 자이살메르 성은 우리 둘 모두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성문 밖을 나오자마자 더 이상은 동화 속 세상이 아니었다. 동화 속의 엑스트라 등장인물이었던 우리는 그저 외국인 관광객에 불과했다. 유달리 소들이 많은 성문 앞에는 사람도 많고 오토바이도 많아서 정신이 히나도 없었다. 노점에서 귤도 사고 코코넛 주스도 마시고 호텔과 가까운 방향이 아닌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성벽을 따라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성문 앞과는 완전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도 별로 안 보이고 조용하고 한적한 길을 걸었다. 사막 캠프를 모집하는 여행사가 많이 보였고, 관광버스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성 안의 그 많던 사람들이 타고 온 버스인 것 같았다.
성벽을 한 바퀴 도는데 20분이면 충분했다. 해가 비치는 곳과 아닌 곳의 성벽의 색깔이 너무 달랐다. 골든 시티는 햇빛이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아침 메뉴와 같은 블랙커피와 토마토 치즈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전날 저녁에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예약을 해 두었던 사막 캠프를 가기 위한 채비를 했다. 여행사에 따로 가지 않아도 호텔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편리했다. 낮 2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오전 11시에 도착하는, 사막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캠프 프로그램이었다.
이번 여행 통틀어서 남편이 가장 기대하던 일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 해본 경험에 대한 기대였다. 이집트 사막에서 1박을 해 본 나는 그때의 좋았던 기억 때문에 인도 사막에서의 1박도 너무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