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떠나면서 하는 인도 여행 (8)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것만 같았다. 느긋하게 조식을 먹고 9시에 호텔을 나와서 메헤랑가르 성을 한 바퀴 돌고도 아직 11시였다. 우리가 이동할 라자스탄의 다음 도시, '자이살메르'까지는 차로 4시간 거리라고 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그곳에 도착하려면 조드푸르에서 2시쯤에는 출발을 해야 했다. 그래서 3시간 동안 조드푸르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이미 계획이 서 있었다.
아무 정보 없이 인도 여행을 할 경우에 호텔 직원에게 정보를 얻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디를 가면 좋을지도 안내받고, 여행 루트도 물어보고, 필요하면 교통편이나 가이드도 소개받을 수 있다. 북인도 여행 내내 우리는 그 방법을 이용했다. 그렇게 소개받은 다음 여행지는 호텔로 쓰이는 궁전과 왕의 추모공원이었다.
메헤랑가르 성에서 내려와서 가장 먼저 보이는 오토릭샤에 올라타고 '우메이드 바완 궁전'으로 향했다. 조드푸르 구도심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기까지 차는 많이 막혔고, 여전히 소음과 공해는 힘들었다.
여행 중에는 긍정적인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걸 잘 알아서 그 시간도 우리는 즐기고 있었다. 뚫려있는 오토릭샤 너머로 길거리 풍경이 바로 코 앞에 보였고, 정차 시간이 길어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원색의 집들도, 예쁘게 쌓아 올린 과일과 채소를 실은 앞에서 미는 인도 스타일 손수레도, 구멍가게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자봉지들도 모두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첸나이에서도 늘 보던 비슷한 풍경이었지만 조드푸르는 길거리 구경이 유독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꽤 시간이 걸려서 좁은 골목을 빠져나온 오토릭샤가 어느새 잘 닦인 아스팔트 위를 거침없이 달렸다. 구도심의 노후된 주택가를 벗어나서 아파트와 저택들이 보이는 깨끗한 부촌을 지나고 있었다.
메헤랑가르 성은 구도심에, 우메이드 바완 궁전은 신도시 가까운 곳에 각각 위치해 있었다.
조드푸르에 와서 처음으로 막히지 않는 깨끗하고 큰 도로를 달렸더니 모처럼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다. 오토릭샤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얼굴 가득 그대로 다 맞으며 신나는 오토릭샤 어드벤처는 계속되었다. 놀이기구 탄 듯이 신나고 재미있었다.
궁전 입구에서 티켓팅을 했다. 안 그래도 부자인 우메이드 왕족의 후손들이 여전히 부자로 사는 데 우리도 100루피씩 거들었다.
방이 347개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집이라고 하는데 현재도 왕족의 후손들이 거주도 하고, 대부분은 호텔로, 일부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라고 했다. 정원과 박물관 정도만 볼 수 있어서인지 큰 궁전이라는 느낌은 사실 없었다. 그 호텔에서 1박을 해봐야 하는가 싶었다.
단체 관람을 온 듯한 여대생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쭉 늘어선 뒤로 잘 지어진 그렇게 오래전에 지은 것 같지 않은 궁전 건물이 보였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건축한 궁전이라고 박물관 구경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도 선입견이겠지만, 궁전은 왠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이 멋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 궁전의 외형은 우리나라 놀이공원에서 본 듯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바로 전에 15세기에 건축된 거대한 '메헤랑가르 성'을 본 이유도 한몫을 한 것도 같았다. 서양과 동양의 양식이 혼합된 깔끔하고 단정한 건축물이었다. 초록의 넓은 잔디밭이 있는 영국식 정원도 보였다.
내부 구경을 했다. 궁전의 일부에 왕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괜히 더 신비한 생각이 들면서 그 왕족이 옛날의 부귀영화를 후대에까지 물려주고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메헤랑가르 성도 그 궁전도 모두 그 집안 소유라고 하는데, 왕정 국가도 아닌데 왜 궁전과 성이 여전히 개인 소유인지 역사 지식이 없는 나는 이해가 잘 안 되었다.
하긴 첸나이에서 우리 가족이 처음 살던 아파트 바로 앞에 큰 성이 하나 있었다. 10층이었던 우리 집 복도 창문으로 내려다보면 그 성의 일부가 자세히 보였는데 뾰족한 지붕의 고풍스러운 성은 큰 수영장도 보였고, 넓은 잔디밭을 가꾸는 인부들도 보였다. 그 성의 주인은 우리 동네 초입에 있는 첸나이에서 가장 큰 사립학교의 주인이었으며 큰 기업의 회장이기도 했다.
그 집 손주들과 우리 딸들은 같은 학교에 다녔었는데 같은 학년의 한국 아이들은 그 성에도, 바닷가 별장에도 놀러 갔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왕조시대에 그 조상들이 그 동네 땅 모두를 소유했었다고 들었다. 왕실의 후손들이 여전히 부자로 살고 있는 모습을 첸나이 집 앞에서도 줄곧 봤으면서 조드푸르에 와서 그 의문이 생긴 것도 놀라웠다.
외형도 단정, 내부도 깔끔했다. 박물관으로 오픈해 놓은 공간에는 왕족의 가족사진도 보였고, 영국제 고급 가구나 식기류, 그림들이 전시되어있었는데 지금도 사용하는 영국 고급 브랜드들이어서 신기했다.
시계 컬렉션을 한 왕이 있었는지 방 하나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시계만 전시되어있었는데 무척 좋은 구경이었다.
궁전은 중세라는 선입견 때문에 비행기 사진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창덕궁에서 본 고급 샹들리에와 자동차가 언밸런스했던 기억과 같은 느낌이었다.
흥미로운 궁전이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 그렇게 오래 전이 아닌 그 시절의 궁전은 인도에서는 처음 봤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이었다.
궁전 밖에 손님을 기다리며 노랗게 줄지어있는 오토릭샤들 중에서 인상 좋아 보이는 기사의 오토릭샤를 타고 왔던 길을 도로 내려갔다. 넓은 도로 옆으로 고층 아파트와 고급 주택 단지가 보이더니, 멀리 메헤랑가르 성과 그 아래 슬럼가가 되고 있는 블루시티가 보였다. 인도의 빈부 차이는 첸나이도 조드푸르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어딘들 다를까.
오토릭샤는 조드푸르의 신, 구 도심을 모두 지나치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바위 언덕 위에 말을 탄 왕의 동상이 시선을 끌었다. 큰 호수 변으로 2인용 테이블이 쭉 늘어 선 카페도 있었고, 호수에는 새들도 물고기들도 많았다. 시민들의 쾌적한 공원처럼 보이는 그곳은 19세기에 세워진 아버지 왕을 위해 아들이 건립한 추모 공원이라고 했다.
초록 나무가 많은 공원에 적갈색 목재와 흰색 대리석의 조화로운 건축물이 보였다. 영묘가 안치된 추모공원이라는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화려한 궁전처럼 보였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대리석 건축물은 멀리서만 봐도 범상치가 않았다. 분수대가 있는 정원에서 바라본 건축물은 좌우 대칭이 확실해서 화려한 조각과 더불어 안정감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본 대리석 건축물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타지마할을 가 보지는 않았지만 타지마할과 견주어서 평가받는다는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많이 크지는 않은 건축물인데도 최고급 하얀색 대리석에 섬세하게 조각되어있는 벽과 기둥과 아치형 문들을 세세히 둘러보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너무 아름답고 신기해서 자세히 볼 수밖에 없었다. 타지마할을 봤던 남편의 반응은 확실히 나보다는 미지근하긴 했다.
분명히 모두 같은 색의 대리석인데 빛의 각도에 따라 모두 다른 색으로 보였다. 흰색이었다가 베이지 색이었다가 핑크였다가 그늘 쪽에는 회색으로 보이기도 했고, 카키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작은 메모리얼 건물에 완전히 빠져서 계속 감탄사만 나왔다.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도 온통 하얀색 대리석이었고, 짙은 녹색 나무 문이 포인트가 되어서 너무 예뻤다. 내가 녹색을 좋아하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정 중앙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왠지 모를 엄숙함이 느껴졌다. 죽은 왕의 영혼을 기리는 장소라는 것을 제단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건축물은 아버지의 사후세계를 위한 아들의 효심에서 나온 예술품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너무 아름다운 대리석 건축물에 감탄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돌아 나오면서 본 정원 한편에 군인들의 무덤이 있었는데 하얀색 대리석은 장군의 무덤, 일반 대리석은 병사의 무덤이라고 했다.
호수 변에는 새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도 제법 보였고, 카페 테이블에 앉은 연인들도 보였다. 과거의 왕의 영혼을 기리는 우리나라의 사당 같은 곳이지만 평화로운 서민들의 공원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오토릭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던 길의 교통 체증은 조드푸르에서 지낸 시간 중에 가장 심각했다. 덕분에 우리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과 얼굴이 맞닿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스치게 되었다.
나란히 마주 지나가는 반대편 오토릭샤 안의 귀여운 아가들도, 오토바이가 제 기능을 할까 싶은 거대한 체구의 할아버지도, 바퀴에 끼이지나 않을까 걱정되던 치렁치렁 사리 천을 휘감은 오토바이 뒷자리에 걸터앉은 아주머니도, 한국어 간판 식당 앞의 한국인이 아닌 인도인 청년들도 스쳤다.
경적 소리, 얘기 소리와 함께 양보를 안 해서 서로 싸우는 소리까지 더해져서 툭툭 안은 3D 영화관에 앉은 착각이 들게 했다. 달리는 시간보다 정차해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호텔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사실을 인도의 조드푸르에서도 경험을 하며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호텔로 돌아갈 수 있었다.
조드푸르를 떠 올리면 거대한 메헤랑가르 성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그다음이 블루시티 골목길, 세 번째 정도가 좁은 골목길에 갇힌 듯 앉아 있던 오토릭샤였다. 그 정도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호텔 근처에 내려서 블루시티 골목을 걸었다. 조드푸르에서 걷는 마지막 골목길이었다. 낡았지만 정감 가는 앤틱 한 그 골목길이 한동안 그리울 것 같았다.
멀리 메헤랑가르 성벽이 보이는 호텔에 도착했다. 루프탑의 식당 창가에 앉아서 성벽을 바라보며 조드푸르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버섯 수프와 볶음밥과 난을 주문해서 4시간 동안 차를 타기 위한 배를 채웠다. 커피까지 마시고 여유 있게 점심 식사를 하고도 시간은 충분했다.
오전에 체크 아웃을 하고 맡겨둔 여행 가방을 찾아서 호텔에 미리 부탁해 뒀던 택시에 올랐다. 약속한 2시에 호텔 앞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택시였다. 빈차로 돌아와야 하는 금액이 포함된 가격 흥정을 했고, 호텔에서 책정해준 가격표 쪽지가 기사에게 전해졌다.
구글 지도에 북서쪽 4시간 32분이 찍히는 우리의 세 번째 라자스탄 도시는 '골든 시티'라고 불리는 '자이살메르'였다. 사막에서의 1박을 기대하며 택시가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