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떠나면서 하는 인도 여행 (7)
블루시티에서 내려온 우리는 조드푸르 골목길의 끔찍한 교통체증을 경험하며 오토릭샤를 타고 이동을 했다. 부딪칠까 조마조마 마주오는 오토바이, 오토릭샤, 소, 사람들을 간신히 비켜가며 먼지와 매연과 소음을 모두 견뎌야 했다. 귀국 준비 핑계로 그 도시에 대해서 아무 정보도 얻지 않은 채 떠나 온 우리는 호텔에서 소개받은 젊은 가이드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서 어디인지 알 길 없는 곳의 계단식 우물을 향해서 시장통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상인들이 진열해 놓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향신료와 곡류와 과일과 카펫과 장신구들이 혼잡한 시장통과는 다르게 질서 정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인도인들은 물건 쌓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며 시장 골목을 빠져나왔다. 첸나이에서도 많이 보던 재래시장이었지만 시장 구경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시계탑이 있는 시장 중앙의 작은 광장을 지날 즈음에 어느새 해는 기울고 있었고, 그 도시도 12월의 해는 짧았다. 가이드 뒤를 따라서 앞만 보고 걷고 있는데 머리 뒤로 알 수 없는 붉은 기운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본 순간 깜짝 놀랐다. 좀 전에 별생각 없이 지나 온 시계탑이 예쁜 핑크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람도 건물도, 사막지역 때문인지 공기마저도 모두 무채색인 시장 한가운데에 혼자만 밝은 빛을 내며 우두커니 서있는 시계탑은 오히려 생뚱맞기까지 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부산하게 사진을 찍으며 예쁘다고 감탄을 하고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매일 보는 별 흥미 없는 물건 취급을 했다. 그 시각, 그 장소에 우리 둘만 이방인 관광객이었던 것 같았다. 조드푸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라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꼭대기에 올라가서 조드푸르를 내려다보는 곳이라고 들었었다. 그런데 그날은 우리만 그 도시의 랜드마크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조드푸르에 온 이후로 내내 파란색과 흙색만 본 때문인지 짙은 핑크색이 상대적으로 너무 예뻐 보였다. 매일 저녁 6시에 조명이 켜진다고 가이드가 그제야 말을 했다. 융통성 없는 마을 청년은 우리가 가자고 했던 목적지인 계단식 우물만 향해서 걸었던 것 같았다.
그 청년에게도 그 시계탑은 시장을 지날 때마다 보이는 특별할 것 없는 동네의 탑이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운 좋게 6시에 우리는 그곳을 지나고 있었고, 부러 구경하러 오는 예쁜 시계탑 조명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에 시장 문을 빠져나온 우리는 거대한 계단식 우물 앞에 다다랐다. 인도 최대, 세계 최대 규모의 계단식 우물이라고 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깊어 보이는 우물이 나는 위험해 보이는데 남편은 자꾸만 계단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이 생각보다 가파른 데다가 어두워서 그 아래가 예측이 안 되는 우물이 나는 너무 무서웠다. 폰 플래시를 비추면서 어느 정도까지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우물이라기보다 가운데 연못이 있는 야외 계단 공연장처럼 생긴 그곳은 물고기도 사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연인들이 계단 위에 많이 앉아 있었다. 우물 주변에 카페들도 많고 하늘엔 예쁘게 달도 떠있어서 데이트 장소로 그만인 분위기였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깊고 무서운 곳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사물이 달리 보이는 경험을 하며 우리도 근처 카페에 올라 가 보기로 했다. 호텔까지는 걸어서 가도 되는 지척이라고 해서 가이드는 보내고 이후로는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도 되었다.
우물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카페들 중에서 우리는 계단 골목을 올라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계단식 우물을 내려다보며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곳이었다. 우물 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피자로 요기를 하고 시원한 맥주잔을 기울였다. 성곽처럼 둘러선 계단 아래에 끝이 안 보이는 까만 우물물과 하늘의 하얀 보름달과 사막도시 특유의 뿌연 밤공기는 사색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첸나이를 떠난 지 겨우 이틀째일 뿐인데 그렇게 먼 곳, 새롭고 유니크한 도시에 우리가 앉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인도를 떠나면서 하는 인도 여행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조드푸르의 계단식 우물 옆 어느 카페 창가 테이블은 우리 부부의 인도 첸나이 11년의 시간을 정리하는 자리가 되어주었다.
이제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구글 지도를 켰더니 걸어서 5분 거리에 호텔이 있었다. 밤길이었지만 조드푸르도 그즈음에 익숙해지고 있어서 쉽게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일교차가 크다는 북인도였지만 생각만큼 춥지도 않았고 걷기에 더없이 좋은 늦가을 날씨 같았다.
호텔로 걸어가는 밤의 골목길은 낮의 혼잡함은 전혀 없이 차분하고 조용했다. 불 켜진 가게들이 있어서 제법 밝았던 그 골목길의 분위기가 나는 참 좋았다. 인도에서 걷는 밤의 골목길은 이상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조드푸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높고 무거운 문을 밀고 호텔에 들어섰다. 밤 분위기는 낮에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조명이 켜져서 눈이 부신 거대한 메헤랑가르 성벽 야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다음날에 올라가 볼 성의 내부가 더 궁금해졌고, 기대도 커졌다.
그냥 잘 수는 없었다. 루프탑 테이블에 인도 맥주 '킹피셔' 한 캔을 앞에 두고 그 야경을 충분히 즐겼다. 우리와 같은 마음인 서양 관광객들도 제법 보였다. 더운 첸나이에서 올라간 우리는 싸늘한 조드푸르 밤공기마저도 너무 좋아서 그네 의자에 흔들흔들 앉아서 고양이와도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운치 있는 분위기 덕분에 행복한 밤이었다.
차도 오래 탔고, 많이 걷기도 한 조드푸르에서의 밤은 블루색의 꿈을 꿀 것만 같았지만 메헤랑가르 성과 블루시티 사이에 껴서 꿈꿀 여유도 없이 푹, 아주 푹 잘 잔 밤이었다.
조드푸르의 날이 밝았다. 제법 쌀쌀한 아침 공기를 만끽하며 루프탑부터 올라가 봤다. 눈앞의 성벽은 높은 곳에 여전히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조식을 먹고 커피잔을 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커피와 웅장한 돌 성벽을 함께 즐겼다.
걸어서 15분 거리라고 구글 지도에서 알려주는 길을 걸었다. 메헤랑가르 성을 향해서 언덕길 골목을 올랐다. 상쾌한 아침 공기도 좋았고, 조용하고 예쁜 골목길도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예쁜 문들 구경이 더없이 좋았다.
희끗희끗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과 원색의 문들은 숨이 차서 걷던 길에서의 행복한 잠시 멈춤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 앞의 초록 툭툭도 누런 황구도 한 폭의 그림이었다.
조드푸르는 동네 풍경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되어 주었다. 알려진 여행지보다 걸어 다닌 동네 골목길이 더 내 취향이었고 더 인도다웠다. 블루시티 골목길이 그랬고, 시장통이 그랬고, 호텔로 돌아가던 밤의 골목길이 그랬고, 그 아침에 성으로 올라가던 동네길이 그랬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큰 돌판들이 깔린 성벽 아랫길을 걸었다. 언덕 위의 커다란 성벽과 마주했다. 호텔 루프탑에서 보이던 비현실적이던 성벽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숨을 헐떡이며 성문 앞까지 도착하고 보니 어제 우리가 돌아다녔던 그 마을, 구시가지의 블루시티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높은 언덕 위의 성은 크고 웅장했고, 그 아래의 집들은 상대적으로 작고 초라해 보였다. 블루시티에서 올려다본 성벽은 분명히 코 앞의 가까운 곳이었는데, 성 입구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아주 멀고 희미한 모습이었다. 분명히 같은 거리인데 올려다볼 때와 내려다볼 때가 너무 달라서 실제로 그런 것인지 심리적인 이유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장 줄에 서 있었다. 인도에서 세금을 내는 남편은 내국인용 120루피, 나는 외국인용 600루피 티켓팅을 했다.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고성 아래에 알록달록 원색의 사리를 입은 인도 여자들은 성 안에 들어가 보기도 전에 이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마치 연출을 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드디어 성 안으로 들어섰다. 정교하게 돌을 쌓아 올린 높은 성벽과 파란 하늘과 성 아래의 블루시티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단언컨대 내가 본 가장 웅장한 성이고 요새였다. 화려한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보다 예쁜 남인도의 마이소르 성보다 그때 이후로 나에게 웅장한 메헤랑가르 성이 최고가 되었다.
목이 부러져라 위를 쳐다보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대한 성 안에 서 있으면 우리는 너무 작은 존재가 되었다. 압도당한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끼게 되는 곳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이유가 그 증거였다.
왕이 죽으면 같이 화장당했다는 왕비의 손 모형들이 성벽에 붙어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섬뜩한 생각이 들면서 중세시대 배경의 소설들에 많이 나오던 유럽의 끔찍한 왕실 얘기들이 떠올랐다. 가령, 쌍둥이 왕자 중의 한 명이 갇혔던 성 꼭대기 라던가 왕비의 질투를 받은 왕의 애첩이 갇혔던 지하라던가 뭐 그런 상상이 되어서 그 손 모형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런 류의 끔찍한 일들이 꽤나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거대한 성이며 요새였다.
성의 가장 높은 곳에 가장 아름다운 외형의 건물이 보였는데, 바로 박물관이었다. 언덕길을 올라와서 계단을 또 올라가며 숨이 차서 고개를 못 들고 있다가 마지막 발을 떼며 고개를 드는 그 순간, 돌로 만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짧은 감탄사 외마디만 나오는 더 이상의 표현이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궁궐이나 절에 가면 나무로 만든 건축물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로 인도의 궁궐이나 힌두 템플들을 보면 돌로 만든 건축물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곤 한다. 박물관 건물을 보는 순간도 그런 감정이었다. 참 예뻤다.
남인도 박물관만 다녀 본 나에게 메헤랑가르 성안의 박물관은 약간 충격적이었다. 관리가 안된 곰팡이와 먼지가 가득한 남인도의 여느 박물관과는 관리 수준도 완전히 달랐고, 그 안의 유물 보관 상태도 너무나 달랐다. 그 모습이 당연한데 10여 년 동안 나는 너무 다른 모습만 봐왔었다.
요새이며 성이었던 그곳 박물관에는 총이나 칼 같은 전쟁 용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남편 눈이 반짝였다. 나는 왕실 여자들의 가마나 옷 장신구들에 더 눈이 갔다. 재미있는 구경이었다.
넓은 성의 외벽은 그저 크고 웅장하기만 했다면 구석구석 그 내부는 화려하고 섬세했다. 나무 조각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돌을 조각한 솜씨나 색을 입히고 그림을 그린 내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보여서 우리도 그 사람들과 같이 성 내부를 구경하며 다녔다. 너무 넓은 성을 자칫하면 놓쳐서 못 보는 공간도 생기겠다 싶어서였다.
실내를 둘러보다가 이동하려고 바깥으로 나올 때마다 내려다 보이는 거대한 성 외벽과 그 아래 마을의 조화는 또 다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성의 내부보다 돌을 자르고 깎아서 쌓아 올린 성의 외벽이나 기둥이 내 눈에 사실은 더 아름답고 볼만했다.
성의 일부는 카페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카페 분위기가 꽤 색달라 보였고, 화장실도 너무 근사한 건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도 성의 한편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넓고 깨끗해서 기존의 인도에 대한 선입견과는 많이 달랐다.
메헤랑가르 성이 그려져 있는 자석을 하나 샀다. 램프나 가죽공예품, 타일 제품, 카펫 등은 첸나이에도 수입을 해서 팔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집에도 있는 똑같은 유리 램프와 가죽 코끼리를 보니까 괜히 반가웠다. 라자스탄에서 만든 것들이 인도를 대표하는 수공예품들인 것 같았다. 인도 어느 지역에 가도 볼 수 있는 제품들이었다. 성을 지은 솜씨나 예술적인 감각이 수공예품에도 그대로 보였다.
성의 내부는 거의 둘러본 것 같고, 이제는 요새로의 역할을 한 곳으로 나왔다. 병사들의 거처를 지나서 성벽 맨 꼭대기 넓은 정원을 한참 걸어가다 보면 힌두 템플도 보였고, 대포들도, 성벽에 뚫린 구멍들도 보였다. 메헤랑가르 'Fort'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장소였다.
대포나 총이 아니어도 그 가파르고 높은 성벽에 아무도 오르지 못할 것처럼 보였지만 병사들은 그곳을 늘 지키고 있어야 했던 것 같았다. 이번에도 남편이 꽤나 관심을 가지고 둘러본 곳이었다.
이제는 성 아래로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깨진 바닥의 돌을 새로 교체하는 인부가 보였다. 돌 크기와 인부의 몸집이 비교되면서 한 눈에는 모두 안 들어오는 성의 규모를 상상하게 되었다. 바닥에 깔린 돌은 돌아 나오는 그제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하나하나 밟으며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발걸음이 무거운 성 밖으로 내려가던 시간이었다.
북인도 여행 17일 동안 면도는 안 하겠다던 남편의 수염이 거뭇거뭇 제법 자라서 그 성과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30년 직장생활에서의 해방을 면도를 안 하는 것으로 기분을 내려던 남편과 넓은 성 안을 돌아다니며 즐거워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어딘가 모르게 일치되는 자유를 나는 본 것 같았다. 남편의 그 모습이 좋아 보였고, 면도를 안 하겠다는 생각도 쭉 지지했었다.
아쉬워서 성 입구 쪽으로 서서 마지막 기념사진도 남기고, 성 아래 블루시티도 한참 내려다보며 너무 반했던 '메헤랑가르 성'과는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메헤랑가르 성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여전히 가슴은 벅찬 상태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성 아래 서민들의 집들도 알록달록 내 눈에는 너무 예쁜 풍경이었다. 이건 이거대로 저건 저거대로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다음 여행지로 이동을 해야 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오토릭샤에 올라탔다. 호텔에서 알려준 팔래스와 메모리얼을 가 보기로 했다. 구 도심의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동안 우리의 오토릭샤 어드벤처가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