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떠나면서 하는 인도 여행 (6)
북인도의 첫 여행지였던 핑크시티 자이푸르(Jaipur)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자이푸르 투어를 했던 그 택시를 그대로 타고 우리는 조드푸르(Jodhpur:'블루시티'라 불리는 인도 서북부 '라자스탄'에 속한 성곽도시)를 향해서 시속 100km를 유지하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6시간을 달렸다. 근처에 사막이 있을 것 같은 무척 건조해 보이는 일직선 평지길을 달렸다.
6시간 내내 똑같은 창밖 풍경이었지만 간혹 보이는 시골 마을의 사람들이 그나마 긴 이동 시간의 눈요기가 되어주었다. 땔감을 머리에 이고 가는 원색의 사리를 입은 여자들이 많이 보였고, 귀여운 어린아이들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사람들보다 소들을 더 많이 본 조드푸르로 가는 길목이었다.
택시 기사가 내려 주는 도롯가의 로컬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볶음밥과 볶음국수와 난을 먹었는데 시골이어서 밥값도 쌌고, 인도 음식 제법 먹어 본 우리 입맛에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은 지겨웠던 도로 위의 시간을 제대로 반전시켜 주었다. 여행 중에는 맛있는 음식이 주는 행복감이 따로 있다. 그 사실을 또 경험하며 다시 차에 올랐다.
오전 10시 40분경에 자이푸르의 하와 마할을 출발한 우리는 오후 5시경에 조드푸르의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내에 진입하면서 차가 너무 많이 막혔고, 혼잡하고 소란하고 먼지도 많은 조드푸르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런 곳에 호텔이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복잡하고 낡은 골목길의 깊숙한 어느 문 앞에 차가 세워졌다. 구 도심의 평범한 마을 안이었다. 열린 문을 통해서 호텔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호텔 문을 들어서는 순간 지겹던 도로 위의 시간도, 혼잡하던 시내도 모두 잊혔다. 과거의 인도 어느 브라만의 가정집을 개조한 특이하고 재미있는 호텔은 우리 마음에 쏙 들었다. 1박에 4만 원 정도였던 3성급 호텔은 고급스러운 현대식 호텔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블루시티 마을 안에 위치한 호텔은 내가 본 가장 웅장한 성인 '메헤랑가르 성'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라자스탄 옛 가옥은 그 안에만 있어도 라자스탄을 만끽하는 느낌이 들었다. 벽에 그려진 벽화와 나무문 하나하나가 모두 라자스탄이었고 조드푸르였다. 욕실은 모두 파란색이어서 블루시티가 연상되었고, 띠벽지인가 싶은 것들도 모두 섬세한 그림이었다. 가구도 모두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라자스탄 스타일이었다. 방안이 라자스탄 박물관 같다는 생각을 했다. 17일간의 인도 배낭여행 중에 가장 저렴한 호텔 중의 한 곳이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호텔이었다. 확실히 내 취향은 모던 쪽 보다 앤틱 쪽이었다.
짐을 풀고 호텔을 찬찬히 둘러봤다. 분수대도 있고, 수영장도 있는 꽤 규모가 큰 주택이었다. 모든 바닥은 작은 타일로 모양을 냈고, 눈을 들면 메헤랑가르 성이 보이는 호텔의 루프탑은 아침에는 커피 한잔, 밤에는 맥주 한잔 하기에 그만일 것 같았다. 호텔을 둘러보면서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어두워지기 전에 블루시티 골목을 걸어보려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에 부탁해서 소개받은 가이드와 함께 블루시티를 걸어 다녀보는 일이 조드푸르에서의 우리의 첫 일정이었다. 복잡한 골목의 슬럼가 동네를 우리끼리 다니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고, 자칫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낭패가 아닐까 싶어서 그 동네 청년 한 명과 함께 골목을 걸었다. 블루 시티에 관한 흥미로운 설명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며 그 청년은 외국인 관광객인 우리에게 최선의 가이드를 해 주었다.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온통 파란색으로만 된 동네 골목을 걸어 다니는데 처음에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 과연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로 칠을 한 진한 파란색의 집들이 현실이 아닌 동화책 속을 걷는 기분이 들게 했다. 간혹 보이는 귀여운 어린이들도 컬러풀한 옷을 입은 인도 여인들도 모두 동화책 속의 등장인물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비록 오래된 낡은 마을이었지만 내 눈에는 동화책 속의 마을처럼 신비롭기만 했다.
블루시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이다. 우리나라 '통영의 동피랑 마을'이나 '부산의 감천 문화마을' 같은 곳이다. 파란색 골목을 구불구불 걷다 보면 그 동네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집 앞에 모여 앉은 아줌마들도, 골목길을 무심히 걸어가는 할머니들도, 저녁거리 사러 나온 채소 가게 앞의 주부도 만난다.
사진 찍어 달라는 동네 개구쟁이 꼬마들도, 좋은 여행 하라며 인사하는 잘생긴 남자아이도, 구멍가게 앞에서 과자가 먹고 싶은 귀여운 아이들도, 대문 안 계단에 앉은 숙제하는 자매도,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씩씩한 아이도 만난다.
한가로이 모여 앉은 동네 노인들도 보이고, 하얗게 예복을 갖춰 입고 마을 아래 어딘가를 다녀오는 남자들도 보인다. 한가로운 골목의 저녁 풍경이다.
사람이 사는 동네여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블루시티의 골목 걷기는 더 흥미로웠다. 내가 사는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마을 사람들은 많이 불편하겠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그 모든 모습들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어느 유명 관광지 구경보다 사람 사는 구경이 나는 더 재미있었다. 비록 냄새나는 하수구나 길거리 개똥들이 불쾌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들이 모두 감수될 만큼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뜻을 알 수 없는 그림 같은 힌디어가 기둥 양쪽에 빼곡히 적힌 구멍가게에는 형형색색 과자들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전화번호와 가격으로 추정되는 숫자가 적힌 나무문을 활짝 연 수선집의 재봉틀은 사리천 재단이나 바짓단 수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교차가 심한 12월의 북인도의 염소는 귀엽게 털옷을 입고 있었고, 문 앞의 얼룩 강아지는 저무는 햇볕의 끝자락에 엎드려서 쌕쌕 잠을 자고 있었다.
인도의 집들은 문이 참 예쁘다. 첸나이에서도 그랬고, 인도 다른 지역 여행 중에도 예쁘고 특이한 문들에 눈길이 많이 갔었다. 블루시티에서도 주택의 문들에 관심이 갔다. 비록 낡고 칠도 많이 벗겨졌지만 모양도 색상도 다른, 집집마다 개성 있는 문들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문 너머에 살고 있을 그 집 사람들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마을 아래는 집들이 깨끗하고 파란색이 짙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옅어진 낡은 집들이 보이더니 마을 맨꼭대기는 페인트칠도 안되어있고 곧 무너지지나 않을까 싶은 허름한 집들만 보였다. 마을 아래는 브라만, 맨 위는 불가촉천민이 살았다는 가이드의 말이 현재까지도 이어진 듯 보였다.
남자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가이드가 대뜸 그 아이들은 불가촉천민이라는 얘기를 했다. 말을 걸지 말라고도 했다. 내 눈에는 그 가이드나 그 아이들이나 똑같은 인도인인데 어이가 없었다. "노 프라브람"이라고 말하고 "하이"라고 일부러 나는 그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가이드가 나를 쳐다봤다. 법으로는 없어진 계급 문화가 생활 속에는 아직 남아있는 것을 목격했다.
첸나이는 대도시여서 눈에 띄는 차별은 많이 못 봤다고 생각했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간혹 보긴 했어도 계급 때문은 아니라고 여겼던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고 순간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청소 아줌마에게 괴팍하게 굴던 옆집 할아버지도, 메이드에게 늘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윗집 아줌마도 모두 브라만이었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을 뿐이지 내 주변에도 자행되고 있던 계급의 차별이었었다. 우리 집주인 할아버지의 집안 자랑과 계급 자랑을 그저 흥미롭게만 들어서는 안되었었다.
불가촉천민이 사는 마을 꼭대기는 메헤랑가르 성과 더 가까워서 눈만 뜨면 보이는 곳에 거대한 성이 있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성과 슬럼가 동네는 높은 성벽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었다. 서로 맞닿아 있지만 결코 올라갈 수는 없는 높이였다.
다음날 올라가 본 거대한 메헤랑가르 성에서 블루시티가 바로 내려다 보였다. 성은 크고 화려했고, 성 아래의 블루시티의 집들은 작고 초라했다. 성은 옛날 그대로 웅장하게 남아 있었지만 블루시티 마을은 더 이상 그 옛날의 성 아래 마을은 아니었다. 구 도심의 낡고 허름한 마을일 뿐이었다.
이제는 슬럼화가 되어가고 있는 그 동네는 여전히 대부분의 집들이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브라만들을 따라서 다른 계급들도 칠하던 파란색이 이제는 차츰 핑크색으로 바뀌는 집들이 많다고 했다. 색깔로 구분되던 그 브라만들이 이제는 많이 남아있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네가 되어버린 이유라고 했다.
재미있었지만 마음이 무겁기도 했던 블루시티 동네 구경을 끝내고 마을 아래로 내려왔다. 점점 슬럼화가 되어가는 동네는 신시가지의 번쩍이는 고층 아파트와 대저택들이 부럽겠지만 구경하는 관광객에게는 사라지지 말았으면 하는 옛 동네였고, 구옥이었다. 블루시티가 블루시티인 이유가 된 그 동네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가이드의 말이 안타깝게 들렸다. 오래되어서 부서진 집이 그대로 방치된 곳들이 많았다. 지자체에서 건축비 지원을 좀 해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네 골목을 빠져나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페인트칠도 더 깨끗했고, 집들도 좋아 보였다. 무채색이 점점 원색의 파랑으로 바뀌고 있었다.
파란 동화나라 같았던 블루시티 구경을 하고 내려온 우리는 곧바로 옛 왕조의 왕비가 건축했다는 거대한 '계단식 우물' 구경을 하기로 했다. 걸어도 될 거리였지만 너무 어두우면 안 될 것 같아서 오토릭샤를 탔다. 6시간 동안 택시도 탔고 1시간 반 동안 골목도 걸어서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 오토릭샤가 보였다. 팁이 고마웠는지 가이드가 우물까지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셋이서 오토릭샤에 올라탔다. 퇴근시간대의 조드푸르 시내의 교통 체증은 대도시 첸나이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5분이면 될 거리를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데 30분이나 걸렸다. 걸어가는 게 더 빠를 시간대였다. 마주오는 오토바이와 오토릭샤와 사람과 소를 피해서 아슬아슬 묘기를 부리며 우리가 탄 툭툭이 골목을 겨우 빠져나왔다. 체증보다 경적소리와 매연을 견디는 것이 더 큰 일이었다.
시계탑 근처의 시장 초입에 내렸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장통을 우리는 가이드 뒤만 졸졸 따라 걸었다. 어디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를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우리가 사는 첸나이가 아니라 낯선 도시 조드푸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