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떠나면서 하는 인도 여행 (5)
자이푸르에서의 이틀째 날을 맞았다. 전 날 밤에 차창 밖으로 스치며 봤던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났던 '하와 마할'이 눈에 아른거렸다. 건축물의 외관이 그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순간적으로 찍은 사진 속의 '하와 마할'은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주 박물관의 신라시대 황금 왕관처럼 보였다. 솜씨 좋은 금 세공사의 혼을 갈아 넣은 순금 작품이 아닐까라는 착각을 할 정도로 하와 마할의 외관은 화려하고 섬세한 예술품이었다. 그 예술품 안으로 들어가는 날이 밝았다.
인도의 도심 속 호텔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무심코 커튼을 젖힌 창밖 풍경이 낯설지가 않았다. 고급스럽고 깨끗한 호텔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자이푸르의 어느 서민 동네의 모습이었다. 십여 년간 내가 봐왔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첸나이도, 자이푸르도 여전히 발전은 더디었다.
조식을 먹고, 체크 아웃을 하고, 약속 시간에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 짐을 실었다. 하와 마할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서둘러 둘러보고 바로 '조드푸르(Jodhpur)'로 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호텔 밖은 하루를 시작하는 자이푸르 서민들의 활기찬 모습이 핑크빛 건물들을 배경으로 알록달록 생기가 돌았다. 노란색 파파야도, 보라색 담요도, 빨간색 오토릭샤도, 핑크빛 인도 여인의 치맛자락도 자이푸르의 살아있는 아침 색깔이었다.
하와 마할 앞에 도착했다. 지난밤에 봤던 조명에 빛났던 금관 같았던 화려함은 아니었지만 마치 무른돌을 조각도로 섬세하게 조각을 해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붉은 사암에 흰색 석회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빛의 각도에 따라 주황으로도 보이고 핑크로도 보이는 신비한 색을 가진 궁전이었다.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느라 목이 아팠지만 자꾸자꾸 볼 수밖에 없었다. 건축물이 아니라 조각 작품처럼 보였다. 수많은 격자 창문들은 궁전 내부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많은 창문 때문에 '바람의 궁전'이라고 불린다는데 그 예쁜 이름이 상상을 자꾸 하게 하는 이유를 더 했다.
큰 대로변에 우리를 내려 준 택시 기사는 입구를 가리키며 다 둘러보고 도로 건너편으로 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 입구란 곳을 당최 찾을 수가 없었다. 선입견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궁전의 입구이니 당연히 그럴듯한 통로이겠거니 생각하고 도로변 인도를 오가며 그 입구란 곳을 찾아 헤매게 되었고, 덕분에 동네 상인들의 아침 풍경도 구경하게 되었다. 장사를 준비하며 가게 앞에 물을 뿌려서 비로 쓸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밤사이에 비가 내렸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물이 흥건했다. 인도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똑같은 아침 풍경은 관광객인 우리도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해 주었다.
두어 번 궁전 앞길을 오갔지만 그럴싸한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연 기념품 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Way to Hawamahal'이라고 적혀있는 우리 눈에는 전혀 띄지 않던 허름한 이정표를 가리켰다. 그 이정표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두 상점 사이의 계단을 올라서 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한참 동안 걸었다. 긴 걸음 끝에 하와 마할 뒤편의 작은 광장과 맞닥뜨릴 수 있었다. 매표소에서 티켓팅을 하고, 티켓에 구멍이 뚫리고 입장을 했다.
분수대가 있는 궁전의 정원을 지나서 계단을 계속 계속 올라가면서 아름다운 궁전의 내부를 둘러봤다. 작은 격자창들이 무수히 많았다. 외부 출입을 못하던 왕실 여자들의 바깥세상 구경을 위한 창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궁전 안에 갇혀 지내던 18세기 자이푸르의 왕실 여자들이 상상이 되어서 누군가의 희생이 낳은 아름다운 창문에 괜스레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인도 왕실의 여인도 되었다가, 현대의 외국인 관광객도 되었다가 하면서 관리인 남자들만 서너 명 보이는 이른 시간의 궁전 안을 남편과 둘이서 마음껏 돌아다녔다. 숙연한 기분도 잠시, 예쁜 성과 예쁜 창문을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5층의 궁전 옥상까지 올라가는 계단 길이 전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침 해가 비치는 원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들은 특히 더 예뻤다. 창밖의 무채색 도심 풍경과 대비되어서 더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계단으로 정신없이 올라 간 옥상은 궁전 꼭대기 모습과 그 아래 도심이 모두 내려다 보였다. 지붕의 섬세함이나 아름다움이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와 많이 달랐다. 오묘한 핑크빛이 아름다움을 배가 시켰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였다. 한눈에 모두 내려다 보이는 핑크빛 화려한 궁전 지붕과 무채색 도심은 묘한 풍경이었다. 옛 궁전은 아름다웠지만 고요했고, 그 아래 바깥세상은 무질서했지만 시끄러운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그 모습에 취한 우리는 그곳에 오래 머물며 자이푸르의 랜드마크, 하와 마할과 함께 했다. 내려가면 이제 자이푸르는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이보다 더 대단한 곳이 있을까 싶었다. 그때는 그랬다. 이후에 우리가 본 '조드푸르'는 더 웅장했고 '자이살메르'는 더 신비로웠지만 다른 도시의 대단한 궁전을 본 이후에도 옥상에서 내려다본 하와 마할 지붕과 자이푸르 시내의 대비되는 분위기는 잊히지가 않았다. 그 시대 왕실의 여자들에게는 평생 동안 내려다봐야만 했던 풍경이었겠다고 생각하니까 또 다른 시선이 되었었다.
도심의 큰 대로변에 지어진 궁전은 축제 구경에 용이하게 지어졌다고 들었었다. 축제도 구경만 해야 했던 왕실의 여자들이었다. 인도에 오래 산 나는 그들의 축제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어서 그 여자들의 인생이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지만 그만 내려와야 했다. 조드푸르에 저녁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옛 궁전에 현대식 카페 간판이 빨갛게 보였는데 언밸런스한 그마저도 흥미로웠다. 'Cafe Coffee Day' 옆의 어둡고 긴 통로를 구불구불 한참 동안 걸어서 나와야 했는데, 입장할 때와는 다른 곳이었다. 이러다가 바깥세상을 영영 못 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즈음에 밝은 입구가 멀리 보였다. 가지고 있던 구멍 뚫린 티켓은 끝을 살짝 찢어서 확인을 받았다. 지극히 인도스러운 티켓 검사 방법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왔다.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아름다웠던 궁전은 더 이상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은 자유로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좋은 옷, 좋은 음식은 있지만 갇혀 살아야 하는 궁궐보다는 비록 거친 인생이어도 자유로운 서민의 삶을 택하리라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며 우리를 기다리는 택시를 찾아서 혼잡한 길을 걸었다.
한가하게 수다 삼매경인 남자들도, 힘겹게 리어카를 끄는 아저씨도, 염색용 나무도장 장수도, 길거리 면도사도 그들의 옛 선조의 화려한 궁전 아래에서 부지런히 현실의 삶을 살고 있었다. 죽은 과거보다 살아있는 현재가 더 아름답고 고귀해 보였다.
길 건너편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택시 근처로 갔다. 하와 마할이 한눈에 보였다. 과거의 하와 마할이 현재의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대의 궁전이 후대의 삶을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하와 마할을 뒤로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또 다른 과거의 인도 왕국, '조드푸르'를 기대하며 멀고 먼 길을 출발했다.
북인도의 우리의 첫 여행지 자이푸르는 그 순간부터 이미 추억 속에만 남을 도시가 되었다. 우리들의 '자이푸르'는 겨우 하루였지만 강력한 하루였다. 남인도와는 다른 북인도 첫 경험이 주는 강한 인상 때문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북인도 '처음'인 도시, '자이푸르'와 그렇게 이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