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떠나면서 하는 인도 여행 (4)
폰티체리, 깐얀꾸마리, 그리고 마두라이까지 남인도 3개 도시를 다녀온 뒤에 첸나이의 우리 집에 머물면서 귀국 전 마지막 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한 달 후에 한국에 도착 예정인 우리 살림들은 컨테이너에 실린 채 바다 위를 떠 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빈집에서 3일을 지내야 했다. 운전기사 '존슨'에게 주기로 한 침대와 냉장고가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호텔에서 묵어도 되었지만 여행 중에 호텔에서 너무 지낸 탓에 비록 가재도구가 모두 빠져나간 썰렁한 집이었지만 내 집이 편하고 좋았다.
남편은 지인들과의 송별의 술자리를 가졌고, 나는 한인교회 마지막 예배와 11년 동안 인연이 닿았던 저소득층 여학생들의 기숙사를 찾는 것으로 첸나이 마지막 일정을 보냈다. 우리 아줌마 '마하'와도 마지막 날이었다. 깊은 대화는 안 통했지만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것으로 그 마음을 온전히 나누었다. 마하의 힘들었던 세월을 10년 동안 지켜봤던 나는 이별의 슬픔보다 아줌마의 고단한 인생이 슬펐던 것 같다. 둘 다 눈물 글썽이며 그 와중에 사진도 남겼다. 그렇게 첸나이에서의 모든 것들이 정리가 되었다.
10박 11일, 북인도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11년 동안 인도에서 살면서 인도 여행을 그렇게 다녔지만 북인도는 처음이었다. 설렘과 기대가 여느 인도 여행 때보다 컸다.
첸나이 공항 국내선 청사는 10년 전에 처음 본 다소 충격적이었던 그 모습이 아닌, 이제는 어엿한 공항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국제선 청사보다 오히려 시설은 더 나은 편이었다. 푸드코트도 있어서 간단하게 도넛과 커피로 요기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을 했다. 비행하면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창밖 풍경이 북인도 여행의 기분 좋은 시작이 되어 주었다. 솜뭉치 같은 하얀 구름 위를 날았다. 그 예쁜 풍경을 보며 두 시간 반을 날아갔다. 비행기 좌석에 쓰여있는 '타밀어'가 아닌 '힌디어'를 보니까 우리가 북인도로 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승무원들도 첸나이 사람들과는 다른 외모였다. '인도'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런 미남, 미녀들이었다. 같은 인도였지만 마치 중동의 어느 나라로 가는 비행기라는 착각이 들게 했다. 국내선이었지만 간단한 음식도 제공되었다. 송별식에서 과음을 한 남편은 얼떨결에 칼칼한 컵라면으로 기내에서 해장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매운 라면 맛과 거의 흡사한 맛이었다. 인도에 그런 라면이 있는 줄 인도를 떠나는 마당에 알게 되었다.
자이푸르(Jaipur : 인도 서북부의 '라자스탄'주에 속한 도시) 도착 시간이 가까워지니까 뿌연 하늘이 창밖을 가득 채웠다. 낮게 나는 프로펠러 소형 비행기는 스모그에 가려진, 집들도 듬성듬성, 초록색도 많이 안 보이는, 한 눈에도 건조해 보이는 낯선 작은 도시 위로 착륙을 준비했다.
자이푸르 공항은 처음이었지만 인도 여러 관광 도시를 여행한 경험이 있던 나는 '프리 페이드 택시' 창구부터 찾았다. 공항 밖에 눈에 띄는 창구가 보였다. 목적지 호텔 이름을 말하고 택시비를 선지급했다. 택시 번호표가 적힌 영수증을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오래 기다리지 않고 같은 번호를 단 택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영수증을 받아 든 택시기사는 그곳에 적힌 호텔로 출발했고, 이전의 많은 인도 여행의 짬바로 혹시 '반나절 자이푸르 투어'와 '조드푸르까지 이동'이 가능한지 기사에게 물어봤다. 가능하다는 대답과 동시에 가격 흥정이 시작되었다. 비행기로 이동하기보다 택시가 오히려 시간 절약이 될 것 같은 생각에서 자이푸르에서 조드푸르로 가는 비행기는 예약을 안 한 상태였었다.
호텔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에게는 30분 뒤에 만나자고 하고 체크인을 하려는데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호텔 로비가 너무 럭셔리해서 자이푸르는 호텔값이 참 싸다는 착각을 했었다. 웰컴 주스와 물수건 서비스까지 다 받고 나서야 그 호텔이 아닌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텔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우리가 예약한 호텔로 이동을 했다. 이름이 거의 비슷한 그 호텔은 이전의 고급 호텔과는 비교가 안 되었지만 그곳도 나름 괜찮은 곳이었다. 뷔페식당이 너무 좋아서 만족스러운 호텔이었다.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자이푸르 구경에 나섰다. 오로지 택시 기사에게 우리의 자이푸르 반나절의 시간과 행선지 모두를 맡겼다. 자동차, 오토바이,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일명 '툭툭'의 인도식 호칭)와 자전거 릭샤와 소들까지, 너무나 혼잡한 먼지 도로 위를 달려서 높은 담장에 둘러 쌓인 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이에서 보면 적갈색인데 햇빛에 반사될 때는 멀리서는 연핑크로 보이는 상가 건물들이 많았다. 자이푸르를 '핑크시티'라고 부르는 이유인 것 같았다.
자이푸르 관광지에 꽤나 다녔을 것 같은 택시는 '시티 팔래스(City Palace)'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입구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치형 높은 문과 핑크색 벽에 양각으로 조각한 하얀색 문양은 화려하기보다는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티켓팅 후에 들어선 궁전의 첫 느낌은 '예쁘다', '생각보다 많이 크지는 않네'였다. 큰 궁전은 아니었지만 구석구석 꼼꼼히 구경을 하다 보니 거의 1시간은 걸렸다.
사진 촬영이 안 되는 궁전 실내는 둘러보는 내내 눈을 반짝이게 했고, 심장을 콩닥거리게 만드는 곳이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델리의 타지마할은 하얀색 대리석을 음각으로 파내어서 컬러 대리석으로 채워 넣었다면, 자이푸르 성은 양각으로 잔잔한 꽃무늬를 조각해서 컬러를 입힌 모습이었다. 벽과 천장 모두가 꽃으로 가득했다. 조각인 것을 알고 보면서도 그림이라고 착각을 하게 했다. 그만큼 섬세한 조각이었다. 눈으로만 담아오기에 너무 아쉬운 아름다운 꽃 궁전이었다.
지는 해의 그림자가 아름다운 성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해가 비치는 쪽과 그늘진 곳은 핑크의 채도가 확실히 다르게 보였고, 그래서 더 예뻤던 것 같다. 입장이 안 되는 성의 일부는 왕족의 후손들이 실제로 살고 있다고 해서 더 신비로운 생각이 들었다.
핑크 시티답게 핑크색 전통옷을 예쁘게 입은 문지기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며 친절하게 우리를 불렀다. 아름다운 성에 취해서 그 친절의 의미를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인도 관광지에서는 대가 없는 친절은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탓에 사진 촬영을 당해준 '루피'를 지불해야만 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친절의 속임수가 그들 조상들의 아름다운 성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었다. 궁전 박물관을 끝으로 '자이푸르 시티 팔래스' 구경을 마쳤다.
밖으로 나왔더니, 기다림이 지루했던 택시 기사가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맡기고 택시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성 앞에는 비둘기 떼들이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고, 구걸을 하는 걸인들도 보였다. 택시기사가 4시 30분까지는 입장이 된다며 '하와 마할'에 다녀오라고 길을 가르쳐줬다. 주차할 장소가 없으니 걷는 편이 나을 거라고 했다.
걸어가는 길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각종 탈것들과 소들까지 다니는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야 했다. 커다란 소를 피해서 겨우 빠져나온 길을 조금 걸어갔더니 '하와 마할 매표소'가 보였다. 입장은 4시까지라고 했다. 그때는 이미 4시 2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에 다시 와보기로 하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인도에서 10년 넘게 살았어도 혼잡한 그 나라의 길거리를 걷는 일은 여전히 불편했다.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것은 견디겠는데 시끄러운 경적소리는 당최 적응이 힘들었다. 커다란 검은 소와 함께 그 통로를 다시 지나왔다.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택시기사는 예상대로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인도인들을 잘 알고 있던 우리였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다음 목적지는 워터 팔래스(Water Palace)였다. 시간을 보면서 관광지 루트를 계산하는 택시 기사에게 자이푸르 일정을 모두 맡겼던 우리는 택시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었다.
큰 호수 위에 떠있는 세 채의 궁전 건물은 노을 진 핑크색 하늘과 그 하늘색이 비친 호수 사이에 비현실적으로 놓여있었다. 수초와 물고기와 물새만 그 궁전 가까이에 갈 수가 있었다. 멀리서 보는 전체적인 풍경은 신비롭고 아름다웠지만 호수 주변 관리가 잘 안 되어 있어서 지저분했다. 간식과 기념품 상인들이 많아서 그 노점 구경이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웨딩사진 촬영을 하는 커플이 예뻤고, 물고기 밥을 사서 호수에 던져주는 부자의 뒷모습이 흐뭇했다. 잠시 머물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택시 기사가 우리를 내려 준 곳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암베르 요새(Amber Fort) 근처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요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라는 택시기사의 배려였다. 스모그로 뿌연 으스름 해지는 하늘과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와 오래된 요새가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기사가 자꾸 서두르길래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야간 조명 공연이 있어서 6시 30분까지는 성에 가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귀국 준비로 너무 바빠서 여행지에 대한 아무 정보도 알아보지 못하고 떠난 우리는 기사가 말하는 조명 공연이 뭔지도 모르고 일단 택시에 올랐다.
밤이 되니까 늦여름이던 자이푸르는 갑자기 초겨울로 변해버렸다. 패딩조끼도, 두꺼운 울 셔츠도 소용이 없었다. 일교차가 심하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추울지 몰랐다. 한여름만 있는 첸나이에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스카프로 둘둘 감싸고 뜨거운 짜이와 감자칩으로 요기를 하고 야외 공연장 좌석에 앉았다. 암베르 요새가 바라다 보이는 물 위의 작은 건물 루프탑이었다.
웅장한 음악소리와 비장한 목소리의 성우 내레이션과 함께 요새에 조명이 켜지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인도의 역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고 왕이 등장했다. 영어 내레이션을 모두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차츰 지루해졌고, 점점 더 추워졌다. 성우의 목소리도, 가수의 노랫소리도, 말발굽 소리도 클라이맥스에 달했지만 너무 추워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스모그 때문에 하늘의 별구경 하는 재미마저 없었다. 준비 안된 여행의 결과였다. 1시간 동안 겨우 앉아있다가 건너온 다리를 지나서 택시에 올랐다.
우리의 실망한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이 호텔로 돌아가는 차창밖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기 힘든 '하와 마할(Hawa Mahal)'이 핑크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낮보다 밤에 더 아름다운 '하와 마할'이었다. 작은 창문 하나하나가 모두 보였고, 유려한 외벽의 라인들과 섬세한 조각들이 밝은 조명 덕분에 상세하게 보였다. 다음날 가 보기로 한 그곳 내부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게 만들어주었다.
호텔 근처의 꽤 괜찮은 전통 식당에서 첸나이의 북인도 식당에서 주로 먹던 메뉴 위주로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했다. 추위에 떤 우리는 인도 맥주, '킹피셔'와 따뜻한 '수프'도 필요했다. 현지에서 먹는 '난'과 '시즐러'는 확실히 더 맛있었다. 맛있는 음식으로 마무리한 하루는 아무래도 그 도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겨주었다.
택시는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미리 보냈기 때문에 길 건너 호텔까지 걸어서 가는 길이었다. 로컬 식당 앞의 길거리에서 뜨겁게 무언가를 끓이고 있어서 당연히 '짜이(인도식 밀크티)'라고 생각했는데 "라씨(수제 요거트)'였다. 남인도 첸나이에서는 차가운 라씨만 봤어서 신기한 구경이었다. 라씨는 당연히 차게만 먹는 음식인 줄 알았다. 그래서 도자기 컵에 담긴 차갑게 식힌 라씨를 하나씩 사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거의 모두 따뜻하게 먹고 있었다. 우리도 따뜻한 라씨를 먹어볼걸 후회가 되었다. 1회용 도자기 컵은 그대로 바닥에 깨어버리면 되었다. 그것도 첸나이에서는 안 해 본 경험이었다.
그날은 어떻게 잠이 들었나 모르게 꿈도 한번 안 꾸고 깊고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비행기도 탔고, 종일 돌아다닌 자이푸르였고, 추위에 떨고 난 후의 따뜻한 샤워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처음 가본 곳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이유가 컸던 것 같았다. 북인도는 남인도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이 거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대도시인 델리와 뭄바이 이야기였던 것 같았다. 자이푸르는 시골이어서 그렇지도 않았다. 인도에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북인도 배낭여행은 처음이어서 조금의 긴장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북인도 여행 첫날에 나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다음날 '하와 마할' 구경과 '조드푸르'까지의 긴 이동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충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