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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om Dec 17. 2020

같이 산다는 것의 의미

룸메이트로서 함께하기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같이 사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면 필연적으로 같이 살 수밖에 없게 되는데 같이 살게 되면 내 생활 패턴이 망가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십 대 초반까지 엄마와 동생과 살다가 중반에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고 자취 생활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은 좁은 원룸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방을 꾸며놓고 아무런 방해도 없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해 준 공간이었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올 때면 항상 조심스럽게 와도 되는지 물어보았고 그래서 이 곳이 나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더 들었다.


나는 느긋하게 일어나서 일찍 잠을 자는 편이었다.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만화를 1화부터 완결까지 다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꼼짝 않고 밥도 먹지 않고 누워있곤 했다.


결혼하게 되면 한 집에 다른 누군가가 있으니 그런 생활이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걱정했던 것은 집안일의 분배였다.

하다못해 캠프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할 때도 수건을 사용하고 아무 데나 널브러뜨려놓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거슬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입은 룸메이트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눈은 수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그런..

결국 내가 수건을 치우게 되면 괜스레 억울함이 늘어나곤 했다.


그런데 평생을 함께 한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면,

더욱이 원룸과 다른 큰 공간에 있어야 한다면 더더욱 집안일의 분배가 모호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 일이다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마냥 그 일들을 혼자 떠맡아야 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나는 결혼 전 남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집안일을 나 혼자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물론 남편이 바쁘고 피곤할 때 내가 대신해주는 것은 해줄 수 있지만 그게 평생 내 일이 된다면 힘들 거 같다고.


남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며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었다.




결혼한 지 4개월 차가 된 지금, 우리는 서로서로 도와가며 집안일을 하는 편이다.

서로서로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하다 보니 크게 억울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없다.


물론 집안일에 대한 디테일함은 내가 더 있지만 남편은 언제나 새로 배우고 자기가 해보면서 항상 발전해나간다.

때문에 화장실 청소나 디테일한 집안일은 내가 주로 하고 있음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이렇게 해주길 부탁하면 남편은 언제나 오케이하고 다음엔 자기가 더 발전시켜오기까지 한다.


내가 한 달 내내 밤 11시에 녹초가 되어 돌아올 때는 빨래고 청소고 설거지고 뭐하나 흠잡을 데 없이 일을 한 뒤 

내 야식까지 챙겨주었다. 그런 남편을 보며 처음에 억울함을 느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집안일은 일이다.

체력과 시간을 꽤나 잡아먹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집안일을 별로 안 좋아한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즐겁다. 일에 대한 성취가 있고 결과물이 있고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집안일은 성취도 없고 결과물도 그렇게 뚜렷하지 않고 평가도 받을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빨래를 돌리고 개어 옷장에 넣어도 일반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해도 보람이 찾아오지 않는 일을 왜 해야 하나.


그런데 요즘에는 집안일이 조금은 즐겁다.

내가 빨래를 돌리면 남편은 건조기에 넣는다. 빨래가 건조되고 나면 둘이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면 빨래를 갠다.

한 명이 메인 요리를 하면 한 명은 반찬을 요리한다. 

즐겁게 이야기하며 식사를 마치면 서로 설거지를 하겠노라 한바탕 고무장갑 쟁탈전이 이루어진다.

대부분 번갈아 가면서 많이 한다.

음실물 쓰레기를 버릴 일이 있으면 같이 손잡고 나가서 버리고 온다.


같이 한다는 느낌은 부담이 없어진다.

내가 한탄처럼 '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하면 남편은 그럼 같이 하자며 손을 걷어붙인다.

물론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집안일에 대한 전반적인 컨트롤은 내가 한다는 점에 있어서 완전한 반반은 아니지만

우리 둘 사이에서는 서로 만족할만한 좋은 분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이전에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은 싹 없어졌으니까.




같이 산다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다.

때로는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면 더더욱.


그러나 같이 산다는 것은 참 유익한 일이다.

혼자 했다면 힘들 일들이 거뜬히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느낀다.


매일 밤 '오늘도 고마웠다'라고 이야기해주는 남편을 볼 때면

내가 더 감사한 하루였노라고 진심을 다해 말한다.

같이 산다는 것은 서로 해주지 않으면 참 힘든 것이지만 

서로 해주려고 하면 참 감사한 하루를 살게 해주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감사한 하루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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