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2021년 6월호
맙소사,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성인군자라고! 나는 도덕 수행평가지를 받아들고 입이 떡 벌어졌다. 아이들이 스스로 부여한 자기 평가 점수대로라면, 우리 반은 공자님이 와도 울고 갈 반이 되어야 한다. 그윽한 난초 향이 풍기듯, 절도있게 행동하며 올바른 윤리적 판단과 건전한 품성을 두루 갖춘 완전체 교실. 그러나 우리 반의 실제 풍경은 종이가 날아다니고, 우당탕 쿠당탕 조용할 날이 없다.
자기 평가. 문제의 발단은 평가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양심과 행동력을 가늠할 수 있는 꽤 훌륭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마주한 결과는 본인에게 지나치게 후한 점수를 부여한 귀염둥이들. 흐음, 이 사태를 어찌하면 좋은가. 고민에 빠져있던 즈음, 4교시 영어 전담 수업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바로 점심시간이라 교과서와 필통만 내려놓고 화장실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곧 급식실로 가기 위한 긴 줄이 교실에 늘어설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화장실에서 나온 남학생들이 한 명씩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화장실 바닥에 사탕 껍질이 떨어져 있어요.”
“그랬구나.”
“영어 선생님이 주신 것 같아요. 저도 똑같은 걸 받았거든요.”
그러곤 주머니에서 받은 사탕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모두 똑같은 대사를 했고, 사탕 보여주기까지 거의 흡사했다. 그렇게 다섯 명을 상대하고서 점심 먹으러 가려 하는데 성빈이(가명)가 앞을 가로막으며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 화장실에 이런 게 떨어져 있어서 주웠어요.”
성빈이의 손바닥에는 파란색, 보라색 사탕 껍질이 있었다. 말로만 무성했던 사탕 껍질의 정체. 내 머릿속에서 성빈이 도덕 수행평가 점수가 올라가는 소리가 뿅뿅 울렸다. ‘이래야 진짜지!’ 나는 성빈이를 크게 칭찬했다. 그 이후 우리 반 쓰레기통에는 애들이 주워 온 온갖 사탕 껍질이 쌓였다. 생색내기 같지만 아무렴 어때. 사 학년 사탕 껍질반 도덕 수행 평가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