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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Jan 22. 2022

집을 향한 여행(하)

임용고사에 합격하고도 허망함과 불안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무의식 중에 대학만 졸업하면, 임용고사만 합격하면 뭔가 굉장히 다른 라이프 스타일이 펼쳐질 거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사적 영역에서의 생활양식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원룸은 원룸이었고, 부실한 식사도 동일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는데도 왜 칙칙한 기분이 드는 걸까.


스물셋의 나는 대학 졸업 후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상태였다. 강릉 자취집은 길어봤자 1년에서 1년 반만 살게 될 집이었다. 비싼 물건을 사 봤자 입대하면 버려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 나는 세간을 최소한으로만 갖췄다. 책상도 의자도 들이지 않고, 앉은뱅이 소반 하나만 마련했다. 옷은 대학 자취방에서 쓰던 2단 행거를 그대로 썼다. 나머지는 원룸 집주인이 빌트인이라고 소개한, 진실은 전에 살던 사람이 버려두고 간 집기를 물려받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퇴근 후 현관문을 열었을 때 풍기는 묘한 곰팡내와 눈에 띄는 조잡한 선반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바로 군대를 갈 걸. 원룸을 둘러싼 안팎의 모든 것이 '임시로 한때의 세월을 때우기 위한'이라는 수식어를 떠올리게 했다. 거기에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빌린 것이었고, 물건은 하나 같이 수준이 낮았다.


고무 패킹에 문제가 있는지 화장실에서 역겨운 하수구 냄새가 뱀처럼 기어올랐다. 문을 꼭 닫아야만 악취가 약해졌다. 공기 순환이 없는 새벽녘에는 방까지 희미한 구린내가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고장 난 화장실은 내 소유재산이 아니므로 사람을 불러 출장 수리를 받거나 셀프 수리를 하고픈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어차피 공구도 없었다. 조만간 다 정리하고 떠나야 하는 집이라는 체념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원룸은 머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외풍이 심했고, 중문도 없어서 복도에서 나는 소음이 그대로 다 들렸다. 특히 장미 패턴 아트 벽지는 최악이었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나는 교실 게시판을 학생 작품으로 꾸미듯, 커다란 포스터로 벽지를 가렸다. 1년만 버티자, 참아보자 다짐하며 소중한 시간을 불만족스럽게 흘려보냈다.


나에게 안정감은 이만하면 괜찮다, 흔들리지 않아서 좋다 같은 느낌에 가깝다. 나는 원룸이 불만족스러웠고, 당연히 안정감은 받지 못했으며, 어서 빨리 돈 벌어 탈출해야겠다는 결심만 들었다. 나는 법정 스님이나 공자의 제자 안회처럼 안빈낙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속물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적어도 중간 수준의 물건과 거주 여건이 갖춰져야만 안심하고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실제로 자가 소유의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까지 휴직할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비록 대출을 끼고 샀을지언정, 등기부등본에 우리 부부 이름이 올라간 다음에야 진심에서 우러나온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입주에 맞춰 나는 바로 휴직 신청을 냈다.


출근하지 않게 된 이후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절약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집은 생겼지만 대출금이 다달이 나가고, 일을 쉰 탓에 수입도 줄었다. 나의 배부른 자아실현을 위해 가정 경제를 갉아먹어서는 안 된다. 자발적 백수인 나는 집을 매일 쓸고 닦는다. 예전 집에서 가져온 신혼 가전인 유선 청소기로 꼼꼼히 초벌 청소를 하고 손걸레질을 한다. 청소기 필터를 구석구석 털고 물에 잘 씻어 햇볕에 말린다. 바닥을 훔친 걸레도 매번 벅벅 문질러 세탁한다. 가족들이 집에 와서 청결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나는 한없이 늘어지는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휴직한 것은 아니다.


싱크대 밖으로 기름때 묻은 그릇이 쌓이는 경우도 거의 없다. 건강 증진과 식비 절감을 위해 외식을 가급적 자제하기로 아내와 협의했다. 싱싱하고 건강한 재료로 아내가 정성껏 식사를 만들어준다. 나 또한 아내의 사랑과 수고로움에 감사함을 느끼며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는 식사나 간식을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 처리하는 편이 좋다. 귀찮다고 외면하면 다음번 식사에 지장이 가고, 식기류를 여러 번 옮기고 분류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머리를 텅 비우고 뽀득뽀득 소리 나게 수세미를 문지르다 보면 의외의 명상 효과가 있다. 피곤에 절어 짜증스럽게 물을 튀기던 1년 전에는 결코 알지 못한 감정이다.  


성실한 세탁도 중요하다. 축축한 옷감에서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세탁기를 돌린다. 양말과 발수건은 일반 의복과 분리해서 별도로 처리한다. 모직 니트나 캐시미어류는 중성 세제를 넣어 손으로 조물조물 때를 뺀다. 세탁이 단순해 보여도 체계를 세우고, 주의를 기울여야만 옷감이 상하지 않는다. 세탁이 끝나면 기계에 세탁물이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인지한 즉시 건조대로 옮긴다. 수건은 탁탁 털어 모양을 잡고, 셔츠류는 옷걸이에 걸어 말린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에게는 세탁조차 소일거리가 된다. 햇볕에 잘 마른 티셔츠에서 포근한 냄새가 나면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내가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집을 마련하고 휴직을 하게 되었으므로 휴직 생활의 시작도 집이어야 한다. 어렵사리 마련한 집을 가꾸고 지키는 일이 우선이다. 적어도 일 년 간은 직장인이 아니라 가정 주부가 주 역할인 생활인으로서 집을 관리해야 한다. 가계 예산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용돈을 아껴 쓰고, 최대한 절제하여 공용 생활비를 지킬 것이다. 수입이 쪼그라들었다고 절망스럽거나 답답하지는 않다. 도리어 차분히 집안일을 차근차근하다 보면 드디어 내가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실감이 든다. 화장실에 물얼룩이 남지 않도록 바닥문지르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주인의식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가끔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업무에 전념하라고 할 때는 굉장히 그 말이 거슬렸는데 진짜 내 집의 주인이 되고 나자 없던 마음도 생겼다. 역시 사람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게 하려면 진짜로 그 사람을 무언가의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집은 나의 주요 생활공간이자, 일터이다. 그러나 아직 부채가 남아있다. 나는 휴직 생활을 알차게 꾸려나가는 틈틈이 부채를 상환할 예정이다. 가욋돈이 생기면 중도상환 수수료를 지불하고서라도 대출 금액을 줄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과도한 부채를 싫어해서 애초 아파트를 마련할 때부터 '영끌의 규모'는 아니었다. 무리해서 집을 사기보다는 임대 아파트에서 8년 동안 살면서 현금을 차곡차곡 모았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생활비에서 남는 마지막 한 푼까지 대출 상환에 밀어 넣는다. 그 편이 속 편하고 잠이 잘 온다.


대출 상환이 종료되기 전까지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그림 등의 투자를 할 계획은 없다. 금융의 고수라면 우리 가족의 선택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왜 저금리로 돈을 빌려 주택 담보 대출 비중을 늘리고, 다른 고수익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월급을 포기하고 일 년을 쉬어감으로써 생활의 균형과 안정감을 추구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투자도 우리 가족의 마음이 가장 편한 방식이 좋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 실패를 걱정하느니 차라리 외식 두 번을 줄이고 저축액을 늘린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지향점과 가치 우선순위의 문제다.


삼십 대 중반까지 집을 향한 여행에 매달렸다. 이제 여행 목적지인 집에 왔으니 짐을 풀고 둘러볼 차례다. 휴직인의 삶은 집을 중심으로 어떻게 잘 살아가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절약과 검소함, 인내심이 있다면 휴직 집돌이, 집순이의 일상도 재밌다. 돈이 적어도 불안하지 않다. 맞벌이하던 시절 버릇대로 플렉스 하면서, 시간마저 펑펑 쓸 수 있는 휴직은 없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시간을 펑펑 쓰는 것보다 맞벌이하면서 플렉스 하는 선택을 한다. 만약 당신이 휴직을 택한다면 시간 하나만큼은 원 없이 조절해서 쓸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휴직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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