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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Mar 02. 2022

남교사와 휴직멋짐론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잠식했던 2020년과 2021년은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는 해이기도 했다. 나는 담임을 하면서 학부모님이 직장을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들었다. 자영업자 영업 제한 등으로 일자리가 부족해진 탓도 있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가정 내 자녀를 돌보기 위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특히 어머님이 일을 그만두는 비중이 아버님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개인적 경험에 국한된 사례이니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왜 어머님이 일을 더 쉽게 그만두어야 하는가는 내게 짙은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휴직을 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남자인 내가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하니 사람들은 “멋있다”고 칭찬해주었다. 듣기 좋은 말이기는 하나,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멋있다”와 “대단하다” 소리를 들었다. 초반에는 "아이고, 아닙니다" 정도로 넘어갔으나 점점 칭찬의 빈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왜 갑자기 멋있어진 건가. 평소에 멋지다는 평을 들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돌연 멋진 남자로 거듭난 나는 시간을 갖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관계부터 정리해 보자. 나는 큰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외견상 변화는 없다. 키도, 체중도 비슷하다. 차이점이라고는 출근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휴직이라는 선택이 나를 멋있게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만일 이 가정이 옳다면 누구라도 휴직을 했을 때 멋있어져야 한다. 그러나 '휴직멋짐론'은 실패한 가설이다. 왜냐하면 매우 가까이에 반례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 딸을 열 달간 품고 낳은 아내는 멋짐의 찬사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 부부는 직업이 같은데도 말이다.      


아내는 큰 아이를 낳고 한 번, 작은 아이를 낳고 다시 한번. 총 3년 9개월 간 휴직 상태였다. 두 살 터울인 딸들을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시기에 돌봤다.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너무나도 피곤한 육아생활. 아내는 제때 충분히 잘 수 없었고, 아기의 모든 행위에 신경을 기울였다. 나는 아내가 휴직을 하는 동안 월급이 조금 더 많다는 근거로 학교에 나갔다. 지치는 건 매 한가지였만 적어도 교실에서는 내 과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기분을 전환하고, 체력을 비축한 채로 귀가했다.  

    

디지털 도어록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아내는 항상 마중을 나왔다. 조건반사처럼 나를 기다린 것이다. 아내는 반쯤 넋이 나간 몰골이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생생한 기쁨의 빛을 내뿜었다. 아내의 환대에 나는 감정이 복잡했다. 눈 그늘이 광대까지 내려온 그녀는 직장인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노곤해 보였다. 천사 같은 아기가 사는 집을 유지하려면 천국을 관리하는 부모가 온몸을 바쳐야 했다. 하루하루 아내의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늘어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딸의 첫 배밀이, 뒤집기, 발걸음 떼기 같은 본능적 환희의 이벤트가 없었다면 버티기 버거운 시기였다.   

   

나는 지금 아내의 헌신에 그저 찬사를 보내고 감사를 표하고자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물론 아내의 희생에 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중요한 지점은 따로 있다. 사람들은 남편인 내가 돈을 벌고, 아내가 휴직하는 선택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엄마의 처지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반면 나는 직장에서도 따뜻한 말을 들었다. 동료는 내게 "요즘 잠 못 자지?", "네가 애 보느라 고생이 많다."며 격려해주었다. 나는 배려에 감사한 마음보다 아내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가로채는 듯한 꺼림칙함을 느꼈다. 똑같이 육아를 해도 따뜻한 인사말을 듣는 건 내가 남자라서 누리는 특권이 분명했다.  

    

올해는 아내가 출근하고 내가 주부로 산다. 아내는 한결 씩씩하고 당당해 보인다. 발걸음에 확신이 깃들어 있다. 나는 아내가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일의 주체자가 되었다. 휴직을 했으니 학교에 쏟던 에너지를 돌려 다른 방식의 밥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수첩에 일목요연하게 적어두고 하나씩 지워나가며 수행한다. 출근만 하지 않을 뿐이지 전문적인 가사 및 자녀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아이의 미술학원을 알아보려 강릉맘 카페 게시판을 섭렵하고, 전화를 넣어 상담 예약을 잡았다. 한 블록에 미술학원이 거의 나란히 세 군데가 있다. 한 곳은 벌써 가득 찼고, 다른 한 곳은 회화 위주의 입시 학원이다. 우리는 창의와 공작 활동을 병행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사전 상담에서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해 망설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예비소집에도 아이와 둘이 다녀왔다.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은 등본과 학교에서 요구한 필수서류를 제출하고 안내장을 받았다. 작은 아이 유치원, 큰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는 과정도 빼먹을 수 없다. 실내화를 사고, 물티슈, 여벌 옷, 예비 마스크 따위를 지퍼백에 밀봉한다. 다이소에 가서 네임 스티커를 두 장씩 뽑는다. 유치원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모든 물품에 이름이 붙어있길 요청하셨다. 저녁에는 까막눈인 둘째에게 EBS 프로그램 '한글이 야호'를 보면서 큰 소리로 읽게 시킨다.   

   

하나하나 적기에는 칸이 모자라서 이쯤에서 생략한다. 주부의 일은 굉장히 가짓수가 많고, 품이 든다. 이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쿨하게 처리해내는 사람은 멋진 사람이다. 육아 휴직을 신청한 내게 멋지다고 응원을 보내준 사람은 주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 알기 때문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일까. 물론 멋지다는 칭찬을 듣으면 아주 기분이 근사해진다. 그런데 남교사만 칭찬을 받으면 불공정하지 않을까. 이제부터라도 휴직하는 혹은 자녀 돌봄으로 퇴직하는 엄마에게 듬뿍 칭찬을 보내주면 좋겠다. 더불어 동료 남교사들이 육아휴직을 단 1년 만이라도 해보셨으면 한다. 그럼 자녀 돌봄과 가사가 얼마나 힘들고 멋진 일인지 몸소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아이고, 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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