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수 Mar 09. 2022

휴직자의 파이프라인

일곱 시에 기상하여 여덟 시 반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이들을 씻기고, 밥 먹이고, 옷 입힌 후, 준비물 챙겨서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 아내도 출근 준비를 한다. 하루 중 가장 긴박한 시간대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늘어지고, 지각을 면하고픈 부모는 답답함에 미친다. 그러나 아내와 딸들이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극적인 반전이 펼쳐진다. 집안은 한없이 적막하다. 집이라는 시공간이 완전히 나에게 귀속된다. 갑자기 주어진 대량의 시간과 선택지 앞에서 나는 잠시 멍해진다. 이럴 때는 루틴을 돌리는 것이 좋다.


시간을 세이브하기 위한 나의 루틴은 기계적인 집안일이다.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거나 개키고, 이부자리 정리를 한다. 청소기로 바닥을 밀고, 화분에 물을 준다. 루틴은 두 가지 면에서 확실한 효용이 있다. 첫째, 미루면 나중에 피곤한 상태에서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오는 집안일을 미리 처리함으로써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가사란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둘째, 정신 에너지를 동원하여 집중해야 할 과업을 찾지 못한 상태일 때 머릿속을 새롭게 정비하는 계기가 된다. 루틴은 반쯤 자동화 로봇처럼 처리하는 것이므로 정신 자원을 많이 잡아먹지 않는다. 나는 세탁기 세제를 따르면서 그날 처리해야 할 일들을 추리거나,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주제를 생각한다. 루틴을 잘 활용하면 별도의 시간을 내어 초집중하지 않아도 중간 난이도의 정신 작업을 할 수 있다. 청소기의 용도는 비단 먼지를 흡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두뇌 활성화에도 미친다.


오늘의 주제는 돈이었다. 초등교사로 살면 월급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매월 17일 따박따박 정해진 만큼 계좌에 금액이 찍힌다. 국가가 주는 것이므로 떼 먹힐 염려가 없다. 그런데 휴직자가 되자 슬금슬금 가계 수입이 염려된다. 주기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환경이 나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었는지 실감 나기 시작한다. 밀폐된 공간에 갇혀 산소 농도가 떨어져 봐야 공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점점 숨쉬기가 불편해진다.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불필요한 소비를 최소화하고, 소득은 가능한 늘려야 한다. 소액이라도 돈 될 만한 건수가 있으면 열심히 찾고 있다. 최근에 내가 찾은 돈벌이는 삼쩜삼 세금 환급 서비스와 2022년 자동차 탄소포인트제 등록이다.


삼쩜삼 세금 환급 서비스는 인스타 광고에서 알게 되었다. 신청만 해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한 잔을 준다고 해서 재미 삼아 회원가입을 했다. 개인정보를 입력하자 홈택스 서비스와 연결이 되었다. 2020년도에 내가 낸 세금을 분석해서 내야 할 돈보다 더 많이 낸 세금을 찾아내서 환급 신청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일반인은 세무 지식이 없고, 세금을 더 많이 냈다는 사실을 알아도 돌려받을 방법을 알지 못한다. 삼쩜삼은 세금 환급을 대행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인 듯했다. 나는 예상 환급액이 16,170원으로 나왔다. 이 돈을 받으려면 1000원의 결제 이용료를 내라고 했다. 천 원을 바로 결제했다. 만 오천 원에 달하는 공돈이 생겼고, 커피 쿠폰도 받았다. 소소한 횡재에 기뻐서 아내 카톡으로 링크를 보냈다. 아내도 바로 조회를 해보았다. 대박이 터졌다. 아내는 261,591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수수료는 오만 원. 환급 급액에 따라 수수료가 변동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인스타 땡큐! 삼쩜삼 땡큐! 하면서 안목 해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자동차 탄소포인트제는 부지런한 사람이 나랏돈을 타는 복지 혜택의 일종이다. 매년 지자체에서 신청을 받는데 선착순이다. 자동차 운전자가 주행거리를 감축하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제도다. 나는 자동차 번호판과 누적거리가 표시된 계기판 사진을 찍어 신청을 했다. 신청 비용이 없으므로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강원도 고성군은 이미 신청이 마감되었으나, 다행히 강릉은 아직 빈자리가 남아 있었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차를 안 타기만 해도 돈을 주다니, 탄소배출을 줄였으므로 상을 수여합니다 짝짝짝 이런 느낌인 건가. 나는 인센티브 최고 금액인 10만 원이 거의 확실하다. 왜냐하면 올해는 자동차 탈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고, 아내는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는 학교로 출근한다. 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작은 아이가 다니는 병설유치원 모두 아내와 같은 학교다. 모든 출퇴근이 도보로 가능하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육교를 건너면 바로 짜잔 학교가 나온다. 십만 원 입금 알림 문자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이렇게 멋진 제도가 선착순에다, 아는 사람만 재미를 보는 구조라니 아이러니하다. 아마 내가 몰라서 그렇지 찾아보면 구석구석 돈 되는 제도가 굉장히 많을 것이다.


이 밖에 나의 수입은 휴직자 수당(1년만 나옴)과 원고료, 주식 배당금 정도다. 인세는 년 150만 원이고, 기타 원고료는 한 달 기준 대략 15만 원 내외다. 외부 특강에 강사로 나가거나 공모전에서 입상하면 추가 수입이 있으나 빈도가 높지는 않다. 미국 월배당 ETF 수익은 세금 제외 90달러가량이다. 환전하면 10만 원 상당이다. 이건 용돈으로 투자해서 받는 수입이므로 책을 사보거나 클래스101 강의를 듣는 등 취미생활에 쓴다. 쪼들리는 살림살이는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돈을 더 벌고 싶다. 휴직을 해보니 시간 부자가 얼마나 좋은지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휴직을 마냥 할 수는 없다. 다음에 또 쉬고 싶어도, 자금 여유가 없다면 휴직을 쉽사리 하기 힘들다. 으으 돈이 풍족했으면 좋겠다.


요사이 우리 집 책 구매 리스트는 전폭적으로 교체되었다. 보통 아내와 나는 한 달에 십만 원가량 책을 사 본다. 내 돈 들여 책을 사야지 몰입 독서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성실히 읽지만 도서 장르의 폭이 좁다. 에세이, 시사, 문학, 환경, 생활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기타 분야는 구입하지 않거나 어쩌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정도다. 특히 자기 계발 도서는 평생에 걸쳐 열 손가락에 꼽았다. 그런데, 진짜 이상하게도 요즘 내가 읽는 책의 절반 이상이 재테크와 마케팅, 자기 계발, 비즈니스 도서다.  맙소사! 이건 내 독서 역사에서 있을 수 없는 대사건이다. 읽는 책이 바뀐다는 건 나의 지향성과 철학, 자아 구조가 변화한다는 의미다. 나는 자발적으로 신사임당, 자청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54만 원짜리 유료 강의를 듣고 있다. 29만 원을 내고 무자본 창업 pdf 전자책을 결제했다.


기왕 시작했으니 공부를 하고 실행을 해서 금전적 결실을 보려 한다. 휴직을 해 보니, 휴직이 너무 마음에 든다. 이래서 사람들이 조기 은퇴를 하나 싶다. 일을 좀 쉬어 보려고 휴직을 했더니 나는 더욱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불이 붙었다. 가만히 누워서는 못 쉬는 기질인가 보다. 부자가 되어서 더욱 맹렬히 쉴 수 있도록 돈 버는 일을 해야겠다. 도대체 나는 쉬고 싶은 것인가, 일을 하고 싶은 것인가 헷갈리지만 이런 고민은 일단 돈을 번 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그전에 어림짐작해서 미리 겁먹거나 갈등할 필요는 없다.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나는 세속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슬프지는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교사와 휴직멋짐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