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수 Feb 11. 2024

등가교환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2022년에 이어 2024년에도 전업 주부로 살아가게 되었다. 돈이 썩어나서 휴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아이들 어릴 때 5년 가까이를 젖먹이며 키웠으니 1학년 입학 전담 케어는 내가 하기로 했다. 등 떠밀려서 한 선택은 결코 아니다. 교사의 육아휴직은 아이당 일 년까지만 수당이 나오고, 경력도 일 년까지만 인정된다. 그러니 둘째 아이의 입학에 맞춰서 소액이나마 나라에서 돈이 지원되는 내가 휴직에 들어가는 편이 합리적이다.


세상에는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이른바 등가교환. 제로썸이라 표현해도 무관하다. 나는 제로썸 법칙이야 말로 세상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원칙이라고 믿는다. 이번 육아휴직에서 내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가계 수입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대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언젠가 어느 장소에서 불현듯 '아 그랬구나!'하는 방식으로 깨닫게 되는 이득과 손실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의 나는 육아휴직이 삶의 총제적 균형 면에서 낫다고 판단해서 1년을 쉬기로 했다. 


내가 아이들 초등학교 1학년 때 주부로 지낸다고 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빠가 교사라고 해서, 그런 아빠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해서 보통의 아이가 서울대 갈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교사 생활을 15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면 한국은 정말이지 강박적으로 자녀와 본인을 동일시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자녀의 좋은 대학 진학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위하여 투입한다. 대학 이후에도 삶이 있고 대학 이전에도 삶이 있는데 사실 정체도 불분명한 대학 서열에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해서 과도하게 부모의 자원을 갈아 넣는다. 


아마 나도 그런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경계하려고 한다. 나는 그냥 아이가 자기 직업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이루길 바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만족스러울 것이다. 대학이 디딤돌은 될 수 있겠지만, 언제나 초점은 진짜 직업 세계에서 얼마나 잘 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다. 


일단 이번 휴직 기간에는 운동을 하고, 새를 자주 보고, 책을 많이 읽을 것이다. 용돈 시스템의 변화도 있다. 우리 집 가장이 된 아내의 용돈이 40만 원이 된다.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시기에 아이를 돌보았으니 보상을 주는 것이 맞다. 대신 나는 틈틈이 대관령 옛길을 오르고, 초당동에 있는 맛집들을 오전 타임에 쏙 다녀올 것이다. 


등가교환, 어떤 선택을 하든 즐거움과 고통은 함께 온다. 두 번째 휴직은 어떤 방식으로 지나가게 될까. 잘은 모르지만 잠을 푹 자고, 자주 명상을 하고, 매일 걷거나 뛰지 않을까.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서 본 글귀가 나는 마음에 든다. 휴식은 불교 명상의 중심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휴직자의 파이프라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