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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Feb 07. 2022

강릉에서 세금 환수 : 산책편1

언젠가 공가를 낸 적이 있다. 격년으로 받아야 하는 공무원 건강검진이 있어서 휴가를 신청한 것이다. 병원 예약 시간은 오전 아홉 시. 30대에 지병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대기 시간을 포함해 검진까지 사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꼼꼼히 양치했다. 칫솔이 잇몸에 들어가는지 어금니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폭풍 양치 말고 섬세한 양치는 오랜만이었다. 거울을 유심히 바라보며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새삼 발견도 하고 지난 치과 검진 후 홧김에 샀다가 두 번하고 방치해둔 치실도 시도해본다. 그래도 겨우 열한 시다. 학교였으면 2교시 마치고 정신없이 다음 수업을 준비할 무렵이다. 오늘의 나는 수업이 없다. 또 양식만 요란한 공문 처리에 허덕이지 않는다. 일터에서 벗어나자 시간의 밀도가 변한다. 내 주위를 둘러싼 공기층이 한결 엷어져 신체의 움직임도, 마음도 가볍다. 나는 문득 걷고 싶어졌다. 평일 낮 시간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내가 애들하고 교실에서 씨름하는 동안 세상이 돌아가고 있기는 한 걸까. 갑자기 너무 궁금해져서 운동화 끈을 새로 묶었다.


거리에는 어르신이 많이 계셨다. 마주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어르신이었다. 어르신들은 느리지만 꾸준히 어딘가를 향해 가듯 걷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카페와 식당도 무척 붐볐다. 모두들 한가한 차림으로 나긋나긋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무색하다. 다들 편안하구나. 보기가 좋으면서도 배가 아팠다. 부러워 죽겠다.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해하며 일하고, 퇴근해서는 육아를 한다. 피곤에 절어 밤이면 기절하듯 잠에 든다. 꿈조차 꾸지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다들 이렇게나 행복한 얼굴인 건데. 납득할 수 없고, 납득하고 싶지도 않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던가. 나는 억울해서 휴직을 했다. 휴직은 내게 광대한 시간의 덩어리를 선물로 준다. 인생의 한때인 일 년은 지나가버리므로 나중에 돈으로 구입할 수 없는 유한한 자원이다. 그러므로 휴직은 옳다. 나는 휴직의 그럴싸한 이유를 발굴하는 버릇이 있으므로, 앞으로도 종종 휴직을 응원하는 문구를 남길 것이다.


과연 일을 하지 않으니 평일 오전, 오후 시간이 남아돈다. 특별한 스케줄 없는 주말의 남아도는 시간과는 느낌이 퍽 다르다. 주중의 시간 넘침에는 의욕이 가미되어 있다.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연스러운 시간적 풍요로움이 함께 한다. 나는 뒤늦은 전입 신고를 하러 경포동 주민센터에 갔다. 열 두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전등이 절반 꺼져있었다. 창구에 직원도 두 명 밖에 없다. 내게 동사무소는 좀 밝고 시끌시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적막한 실내 분위기가 무척 당혹스러웠다. 무슨 훈련 상황도 아닌 것 같다. 반면 직원들은 무덤덤한 태도다. 알고 보니 요즘은 공무원들의 점심 식사를 보장하기 위하여 당번처럼 최소 인원만 점심시간에 동원한다고 한다. 어째서 나라의 공복인 공무원들이 시민에게 불편을 주나...라고 생각하다가, 나도 공무원이라는 걸 얼른 깨닫고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본다. 공무원은 점심시간에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는가. 기본적인 서류는 무인발급기에서 처리 가능하고, 대면이 필수적인 업무를 공백으로 놔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노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밥 먹는 시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주민센터에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중차대한 민원을 품고 간 적이 없다. 과거에 없었으니 미래에도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평소 같았으면 나는 급식실에 있을 시간이다. 우리 반 아이들과 같은 식판에, 같은 메뉴로,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잔반 지도를 한다. 김치를 남겼네, 시금치를 한 젓가락만 더 먹자, 뼈는 따로 배출해야 한다 등등 잔소리를 해야 해서 밥을 먹는지 강의를 하는지 헷갈리지만 어쨌든 정해진 시각에 정확히 밥을 먹을 수 있다. 교사는 점심시간에도 학생 지도 의무가 있고, 문제 발생 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점을 감안하여 퇴근시간이 타 직종보다 한 시간 빠르다. 점심시간 한 시간을 근무로 쳐주는 것이다. 그래서 시청 공무원은 저녁 여섯 시에 퇴근하지만 교사는 다섯 시다. 그나저나 급식은 참 좋은 밥이었다. 휴직에서 아쉬운 점 두 개를 꼽으라면 하나는 줄어든 수입이고, 나머지는 급식의 부재다. 급식 조리원 분들은 내가 덩치도 크고 선생님이라고 반찬을 듬뿍 담아 주신다. 급식 재료는 유기농이거나, 최상급이다. 이윤을 남기지 않으므로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급식은 아이들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영양소 배분도 잘 되고 요리 품질도 뛰어나다. 심지어 급식비도 저렴하다. 한 달 기준 7만 원 내외를 내면 훌륭한 수준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초등학생 입맛에 최적화된 나에게 각종 고기반찬, 아이들 미각을 고려한 새롭고 건강한 채식 메뉴는 인생의 큰 선물이었다. 나는 휴직을 택함으로써 급식 포기라는 기회비용을 치렀다. 인생은 공정한 것이다.


동해시에서 팔 년 살다가 강릉시로 다시 전입하였다고 주무관이 선물을 주었다. 선물은 쓰레기 종량제 봉투 스무 장이다. 아내 분량까지 왕창 줬다. 실컷 먹고 쓰고 버리면서 여기에 뼈를 묻으시오, 이런 의미인 듯하다. 주민센터 커피 자판기에서 100원짜리 골드맛(맥심모카골드 맛이 난다)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길을 나선다. 경포동 동사무소를 나와서 신호등 하나를 지나치면 경포호수다. 사실 주민센터 뒤편이 이미 호수공원의 일부인데다 건물도 한옥풍으로 되어 있어서 보통의 행정건물이 풍기는 딱딱한 위압감은 전혀 없다. 경포호는 사계절이 모두 수려하고 근사하다. 특히나 관광객이 몰려들지 않은 주중의 호수는 말간 얼굴을 하고 있다. 수면 위를 스치듯 부는 바람도 왠지 더 순수하다. 나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기약도 없이 걷는다. 발바닥에서부터 만족감이 찰랑찰랑 차오른다. 딱히 해야 할 일도 없고, 마감 기한이 정해진 업무도 전혀 없다. 나는 더 이상 담임교사가 아니고, 주먹다짐에 오른쪽 눈두덩이 푸르게 변한 녀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월급은 줄었지만 나는 자유롭다. 배부르되 구속된 개에서 배가 고프되 목줄 없는 임시직 들개가 되었다. 임시직 들개는 돈이 없기 때문에 돈이 별로 들지 않는 취미생활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본디 연비가 좋은 인간이다. 취미라고 해봤자 음악 감상, 독서, 산책이 전부다. 굳이 추가하자면 미술관이나 공연장 나들이 정도다.


강릉은 나 같은 부류에게 최적화된 도시다. 얼마나 환상적이냐면 휴직 생활이 꼭 '세금 환수' 과정처럼 느껴진다. 세금 환수라는 개념은 내가 매기는 일종의 만족감 척도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나 장소, 프로그램 따위에서 만족감을 느끼면 세금이 아깝지 않다. 반대로 죽도록 일만 하느라 세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내는 세금이 아깝다. 월급쟁이가 다 그렇겠지만 유리지갑은 세금을 꼬박꼬박 한 푼도 미납할 수 없다. 이렇게 성실하게 낸 세금이라면 그 혜택을 최대한 누리는 편이 합리적이다. 나는 강릉에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세금을 축내고 있다는 부채감을 가져보았다. 예컨대 경포호수만 해도 그렇다. 경포호수는 호수만 덩그러니 있는 황량한 장소가 아니다. 가시연꽃습지와 산책코스, 경포대를 포함하여 거대한 종합 정원에 가까운 규모다. 마을 몇 개가 통째로 들어가도 될 부지에 꽃과 나무와 새가 산다.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서있고, 수십 년 묵은 소나무 숲이 그늘을 드리운다. 고개를 들어 서쪽을 바라보면 대관령 꼭대기에 풍력 발전기가 유유히 바람개비처럼 돌아간다. 심심하면 조개껍질을 주으러 경포해변에 가도 좋다. 파도는 끊임없이 거품을 내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바다는 수억 년째 연주 중이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게 무료다.


나는 걸으며 자꾸 "말도 안 돼. 최고야."를 되뇐다. 여기를 걷고 있는 한 나는 세금을 까먹는 인간이 된다. 너무 좋기 때문이다. 강릉은 믿기지 않는 하이브리드 동네다. 쾌적한 도시의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면서, 너른 호수와 바다와 산이 다 있다. 언제 어디서나 몸을 빙글 돌려보면 자연의 일부와 닿는다.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나는 겸손해진다. 비굴하게 쭈그러든다기 보다 작은 자연 형태로 동기화 되는 기분이다. 안목 해변의 모래 한 알이 되어 슬그머니 모래더미의 한 곳을 차지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면 안심하고 나를 자연에 맡길 수 있고, 내가 우주의 일부임을 자각하면서 머릿속이 맑아진다. 작아진다는 건 때때로 포근한 안락함을 준다. 나는 강릉이 진짜 좋다. 산책하는 인간에게 이보다 더 멋진 풍경과 바람결을 제공하는 도시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주민센터에서는 전입자에게 친절하게 쓰레기 봉투도 스무 장이나 준다. 흠, 나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하여 최상의 평가를 내리는 편이므로 과장스런 수사를 감안하여 들어주시길 바란다. 하지만 강릉은 최고다.   


경포의 산책로는 강릉시에서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스폿이라  매우 청결하다. 즉시 보수가 이루어지는지, 망가진 시설을 보지 못하였고 그 흔한 비닐봉지 하나 없다. 딱 한 번 허균 허난설헌 생가터로 이어지는 솔밭에서 고래밥 껍질을 보았는데 내가 냉큼 주웠다. 감히 이 예쁜 솔밭에 못생긴 쓰레기가 에잇! 하는 심정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 말고도 강릉을 사랑하는 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주워가지 않을까 싶다. 세금을 환수하는 자라면 응당 받은 만큼 의무를 다해야 한다. 나에게 있어 그 의무 중 하나는 쓰레기 줍기다. 우리 가족은 동해시에서 살 무렵부터 쓰담산책을 했다. 쓰담산책은 쓰레기를 주우면서 산책하는 것이다. 가족 수 대로 어른 집게 두 개, 어린이 집게 두 개가 있다. 경포에서는 주울 게 별로 없었다.


호숫가를 따라 걷는 메인 산책로는 약 한 시간 코스다. 이것저것 기웃거리지 않고 가끔 오리나 호수를 쳐다보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갈 때의 소요시간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뒤를 따라다니느라 사분의 일 코스를 도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어른 혼자서 자기만 책임지면서 내 속도로 걷는 산책은 호젓하다. 나 혼자만 꿀을 빤다는 생각에 가족들에게 미안해지지만, 호수 한 바퀴쯤은 나 혼자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 자문하며 걷는다. 경포는 거울처럼 맑아서 내 마음이 잘 보인다. 경포 산책은 나와 이야기하면서 걷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혼자 걷던 날 이렇게 대화했다.


 '경포는 항상 베스트야. 세금을 무진장 뜯어내는 기분이야. 역시 휴직하기 잘했어. 다음은 어디에서 세금을 환수하지?'


나는 점점 세금 도적이 되어 간다. 수탈지역은 널리고 널렸다. 강릉 시민은 선교장과 오죽헌이 프리 패스다. 일단 가까운 두 곳부터 털러가야겠다. 인적이 드문 시간에 불쑥 방문해서 구석구석 두 발로 누빌 것이다. 세금을 환수하고 싶은 자여, 강릉 주민이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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