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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Dec 16. 2021

프롤로그

이 책은 퇴직까지는 용기가 차마 나지 않지만, 휴직 정도는 고려해볼 수 있는 타협자의 관점에서 쓴 '일시정지'의 기록이다. 달려, 화이팅, 해보는 거야, 불굴의 정신력... 을 내려놓기 위해 나는 의도적으로 1년 간 멈추기로 했다. 나는 성공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고, 돈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필요할 때는 내가 가진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여 집중적으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기본 태도에서는 느긋하게 행복을 음미해야 좋은 인생이라 믿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나 자신에게 충분한 휴식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오랜 '질주' 생활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한 시즌 정도는 빈둥거려도 될 것 같아서.


사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보통 인생 궤도에서(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다. 양친 모두 건강하시고, 내 밑으로 동생이 한 명 있다. 중산층 축에는 못 끼어도 밥 굶을 걱정은 조금만 하는 소규모 자영업자 가정에서 자랐다. 거대한 입시의 압박을 그런대로 견딜 수 있는 부류에 속했다. 기존 체제에 대한 반항보다는 순응이 편한 기질로 파괴적 트러블 없이 청소년기를 마쳤다. 다만 오 학년 무렵에 부모님이 하던 레포츠 가게가 망했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내 인생의 고비마다 영향을 미친다. 


10대 초반에 IMF를 겪은 나는 평온하고 단단한 삶이 좋았다. 작고 소박해도 내 것이 확실히 있고,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삶을 지향했다. 그림자처럼 불안을 달고 다녔던 나에게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주문은 부담스러웠다. 과감한 모험은 안중에 없었기에 외환위기에도 잘리지 않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교대에 입학했다. 아마 수입이 들쑥날쑥한 영세 자영업자의 맏이로 자란 성장배경이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적어도 월급이 마이너스 나지는 않아야 한다. 4대 보험과 노후까지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가게가 언제 문 닫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를 피부양자 입장에서 경험하다 보면 자연스레 방어적인 포지션을 취하게 된다.


교대에 입학한 이후 나의 인생 계획은 단순했다. 교사가 된다. 건강 관리를 하며 교사 생활을 한다. 승진이나 열혈 참교사 같은 꿈을 좇지 않고 평범한 교사로 산다(이 목표만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굉장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직장 생활로 이어졌다. 쉽고 평범한 교실은 없다). 퇴직한다. 편안하게 살다가 죽는다. 인생 계획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나는 한 번도 학교를 쉬지 않고 다녔다.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시도할 법한 교환 학생이나 워킹 홀리데이, 뒤늦게 자아를 찾기 위한 성찰의 휴은 이십 대 리스트에 없었다. 그런 행위들은 안정감을 저해하는 영역에 속했다. 공무원은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급여체계가 호봉제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봉급은 짜지만 근무년수를 차곡차곡 쌓다 보면 점차 숨통이 트인다.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교육과정을 차례로 마치고 4학년 말미에 임용 고사를 봤다. 강원도 지역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흔들리지 않는 일상과 평온한 인생곡선을 꿈꾸었던 나는 21세기에 별로 없는 평생직장(제 발로 걷어차지만 않는 다면) 안착에 성공했다. 소박하긴 하여도 꿈을 이루었다. 입대하여 무사히 육군 병장 만기 제대를 하고(전역 다음 날 바로 담임으로 투입되었다), 스물여덟에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았다. 탄탄한 직업에, 4인 가구 완성. 나의 인생 계획은 너무나도 간단히 실행되었고, 이루어졌다. 한 번의 딜레이도 없이, 쭉 이어진 트랙을 내달리는 것처럼 살았다.


와, 짝짝짝! 박수라도 쳐야 할 것 같지만 나는 지쳤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체력은 언제든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삐그덕 거리면 곤란하다. 자꾸 멈춰 서게 되고, 의심하게 된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놓치는 건 없는지 멍 때리는 날들이 늘었다. 혹시 내가 믿어 온 안정감 있는 삶이란, 꾸준히 일만 하다 죽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을까. 새벽에 불쑥 눈이 떠져 잠을 설쳤다. 수업 준비도 예전만큼 신나지 않았다. 그토록 염원하던 일이었는데, 천직이라고까지 믿었는데. 큰일 났다.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되는데, 이러면 안정된 삶이 아닌데 몸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처음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파트 담보 대출도 갚지 못한 주제에, 애들 밑으로 한창 돈 들어갈 시즌인데 일을 놓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하게 일었다. 그래서 모든 걸 내팽개치고, 교직도 과감히 내버리고 유럽 일주를 떠났... 다는 건 내 기본 성정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이라 그냥 1년 휴직을 냈다. 나는 겁쟁이 직장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쉬어야겠다. 억울하지 않은가, 그토록 치열하게 공부해서, 그 보다 더한 경쟁을 거쳐 직장을 얻었는데, 또다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노동해야 하는 인생이라니. 새벽에 심장마비로 죽어 일어나지 못한 내가 영혼이 되어 떠오르는 상상이 반복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거 혹시 어떤 메시지가 아닐까? 아니면 더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으니 회피하라는 징조일 수도 있고. 나는 종교도 없으면서 그 감을 따르기로 했다. 막상 휴직계를 제출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 단지 노동력을 발휘해 급여를 타는 패턴의 무한반복이라면 시시하다. 몸이 떨리도록 허무하다.


나의 휴직 생활 계획은 심플하다. 자녀 돌봄과 가정 주부를 제1직업으로 삼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야말로 지덕체를 골고루 함양하는(수업 시간에 그토록 강조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못 사는) 전인적 인생을 사는 것이다. 뼛속까지 교육 공무원이 쓴 지독한 문장 같지만, 나는 꽤나 진지하다. 태어나 최초로 공식 인증 상태로 쉴 수 있는 꿀 같은 기회다. 일반인에게 직장 복귀의 걱정 없이(더불어 어떠한 직업 상의 직간접적 페널티도 없이) 보낼 수 있는 1년은 로또 2등보다 귀중하다. 나는 돈벌이를 잠시 내려놓고 그저 특별한 목표 없이 살고자 한다. 일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쉬는 시간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남아도는 시간과 에너지는 어떤 개념일까. 항상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달려온 사람이 단지 자아실현에 가까운 목적을 위해 빈둥빈둥 살면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가계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에서 가진 돈의 규모와 상관없이 안정감 있는 만족감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불안할까. 온갖 역할 수행을 요구하고 남과의 비교를 부추기는 세상에서 나만의 성역을 확보하고 행복을 지키려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이 나의 한가롭고도 심각한 연구 주제다.


고작 휴직 하나 하는데 왜 이리 떨리는지. 나는 편하게 있는 그대로 삶을 충실히 누리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이것은 본래부터 내 안에 있는 유전상의 병인지, 사회로부터 주입되고 강요된 병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포괄적인 의미의 안정감으로서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평화로운 사람이다. 안정을 쫓는 모험. 안정감의 신봉자는 진짜 모험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뚜벅뚜벅 걸어가 보자,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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