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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도 못 사는 마음

잡지 <좋은생각> 7월호 에세이

by 이준수

휴직 중이라 수입이 팍 줄었다. 이제부터 긴축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더니 딸 아이도 긴장하는 눈치였다. 이제부터는 원한다고 해서 쉽게 물건을 살 수 없게 되었다. 학습지를 미루지 않고 잘 풀거나,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어야만 오백 원씩 주기로 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딸의 여가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문방구 뽑기는 싼 기계를 찾아야 천 원이고, 편의점에서도 천 원 이하의 과자를 찾기 어려웠다.


용돈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한 딸은 비장하게 다짐했다.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팔아 돈을 벌겠다고. 같은 반 친구에게 중고 거래 어플리케이션으로 스티커를 팔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아빠와 딸은 머리를 맞대고 엎드렸다. 중고 어플리케이션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포켓몬스터 빵과 스티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빵의 정가가 천 오백 원인데 뜯지 않은 새 빵이 오천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부록처럼 끼워 주는 쁘띠씰 스티커 가격은 더욱 놀라웠다. 애니메이션 내에서 전설 포켓몬으로 분류되는 '뮤츠' 스티커가 무려 오만 원에 등록되어 있었다. 그 밖에 인기 있는 캐릭터 스티커들도 한 장당 삼천 원이 넘는 가격대였다.


그간 딸이 스무 장 넘게 모은 스티커를 판매하면 사 먹은 빵값을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 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딸에게 요즘 포켓몬 스티커는 이 정도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기뻐할 줄 알았던 여덟 살 딸의 얼굴이 어두웠다. 나는 딸이 어떤 스티커를 먼저 팔아야 하나 고민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뒤 딸이 말했다.


“한 장에 천 원에 팔 거야. 너무 비싸면 갖고 싶은 사람이 못 사잖아.”

“그러면 지나치게 저렴하게 팔아서 손해야.”

“싫어. 나는 서비스도 줄 거야.”


말리는 아빠를 아랑곳하지 않고 딸은 기어코 ‘갸라도스’와 ‘피죤투’를 서비스로 주겠다고 우겼다. 그때 아내가 나를 살며시 제지했다.


“여덟 살이 아니면 못 하는 생각이야. 돈 주고도 못 사는 마음이라고.”


스티커 구매자는 나와 함께 나온 딸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어린 판매자는 처음 본다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딸은 봉투에서 스티커를 꺼내 보여주고 뒷장에 서비스도 넣었다고 알려주었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아주 행복해 보였다. 나는 중고거래의 참맛을 잠시 잊고 있었다. 쓸 만한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싸게 주는 기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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