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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멀미와 치유의 숲

공작산 생태숲 문예축전 일반부 동상

by 이준수

몇 년 만의 서울행이었다. 서울 근교는 숲보다 인간이 만든 건물이 더 많았다. 도로 위에서 쉴 새 없이 경적이 울렸다. 차들이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탓에 나는 발목이 뻐근하도록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긴장이 몰려온 탓인지 별안간 머리가 핑 돌았다. 핸들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나는 눈을 최대한 크게 부릅떴다. 온 힘을 다하여 운전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뒤차가 곧바로 상향등을 켰다. 룸미러가 따갑게 빛을 반사했다. 눈이 시리도록 깜빡깜빡, 수도권 운전자는 단 삼 초도 참지 않았다. 아마 내가 삼 초를 지체하면 뒤에 늘어선 수백 대의 차량이 모두 삼 초씩 피해를 볼 것이다. 그들도 도시의 규칙에 맞춰 살아가려면 상향등을 켜야만 하는 처지인 셈이다.


나는 앞으로 평생 큰 도시에는 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명에 가까운 대도시 부적응. 거대한 빌딩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웠다. 일종의 멀미 증상이었다. 촌놈이 상경해서 정신 못 차린다고 이상할 건 없지만, 이래 봬도 나는 열여덟 살까지 회색빛 공업 도시 울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그런 내가 강원도민으로 근 이십 년을 살았다고 서울 멀미를 했다. 서울 멀미라니, 그런 병명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는 ‘서울 멀미’가 실제로 존재하는 병처럼 느껴졌다. 내가 겪는 구역질과 현기증은 혼탁한 도시의 이미지를 품고 있었다.


네비게이션을 보고 길을 달렸건만, 차선 하나를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서울 시내에서 이십 분을 허비했다. 내 머릿속은 온통 강원도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일을 서둘러 마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식사도 건너뛰었다. 허기보다 탈출이 우선이었다. 서울은 사람이 살 만한 동네가 못 됐다. 인공물보다 자연이 적은 동네에서는 살 수 없다. 내가 인식하는 ‘사람이 살 만한 장소’의 기준은 그렇다.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원주 문막에 이르자 두통이 씻은 듯이 나았다. 서울 멀미 증상은 녹지면적에 반비례하여 사라졌다. 자연이 약이다. 내게는 이 말이 진리였다.


횡성 휴게소에 다다르자 차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평일 저녁에 영동 고속도로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새하얀 휴게소 전등빛이 고요하게 빛났다. 멀리서 나지막이 새 소리도 들려왔다. 차분한 적막과 사람들 사이 어깨가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감. 나는 강원도에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자동으로 에어컨 바람이 나왔다. 종일 켜 놓았던 탓에 안 끄고 내린 모양이었다. 나는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렸다. 가속페달을 밟자 바람이 굉음을 내며 쏟아져 들어왔다. 바람으로 세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었다.


한껏 들여다 마셔도 목에 티끌 하나 걸리지 않는 깨끗한 바람, 같은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울의 공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손바닥만한 국토라고 대륙 국가와 비교하여 자조섞인 말을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취소하고 싶었다. 한국에는 여러 종류의 바람이 불고, 각 바람은 색깔과 냄새 그리고 질감이 다르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바람을 쐬었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서울의 스트레스를 구석구석 씻어냈다. 서울에서는 자동차 창을 열 수 없었다. 환기를 하려 해도 주저하게 되었다. 창문을 열면 사방으로 꽉 들어찬 자동차, 뿌연 하늘, 날카롭게 울리는 도시의 소음과 직접 마주해야 한다.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은 땀을 멎게 할 수는 있으나 무거운 심정까지는 위로해주지 못한다. 서울에 정착해 사는 분들이 대단해 보였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숲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에서 간접적으로 숲을 느껴도 이렇게 멋진데,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강원도에 걷기 좋은 숲이 많지만, 주말의 숲은 월정사 전나무숲으로 정했다. 국립공원으로 묶인 숲은 정갈하고, 깨끗하다. 숲을 상상하니 배에서 꼬르르 소리가 나도 불쾌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 손을 잡고 오대산 전나무 숲을 걸었다. 수백 년 묵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나무 아래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흙길에서는 느리게 걸어도 괜찮았다. 계곡에서는 차가운 물이 흘러내렸고, 어디에서 우는지 알 수 없는 풀벌레 소리가 어디에서나 들렸다. 나는 나무가 피와 살로 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른 존재를 해할 줄 모르는 무해한 나무 사람. 과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선 나무들이 든든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숲을 걷기 전 월정사에 들러 구입한 비건 빵을 쉼터에서 먹었다. 동물성 재료인 우유, 버터, 계란이 들어가 있지 않아 담백했다. 오물오물 느긋하게 빵을 먹고 있노라니, 야생 다람쥐 두 마리가 쪼르르 다가왔다. 까만 눈을 가만히 뜨고 우리 곁을 맴돌았다. 아이들이 손바닥에 빵을 부수어 올려놓았다. 다람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가만히 다가와 빵을 입에 넣었다. 아이가 손으로 등을 쓸어도 얌전히 빵을 먹었다.


전나무 숲에 사는 다람쥐는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사람도 못된 마음을 품을 수 없었다. 나는 1.9 킬로미터에 달하는 둘레길을 걸으며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숲이 내민 치유의 손길이라고 생각되었다. 숲이 있는 한 서울 멀미 같은 병은 언제든지 고칠 수 있다. 고마워서 전나무 줄기를 세 번 가만히 도닥여주었다. 먼 곳에서 바람이 불었다. 이 바람이 도시에도 와 닿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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