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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Oct 14. 2022

계층 이동의 현기증

제11회 협성독서왕 독후감 공모전 일반부 입선, 도서 <힐빌리의 노래>

내가 글씨를 읽게 될 무렵이었다. 우리 집 바로 앞 담벼락에 낙서가 적혀 있었다. 옆에 있던 부모님께 물었다. “엄마, 섹스가 뭐야?” 엄마와 아빠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몰라도 되는 나쁜 말이라고 얼버무렸다. 금단의 단어 옆에는 락카로 조잡하게 뿌린 남녀 성기 두 개가 시뻘겋게 칠해져 있었다. 나는 골목 담벼락이 저급한 낙서장인 줄 알고 자랐다. 몇 년에 한 번씩 새 페인트로 벽을 덮었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처럼 낙서는 부활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가면서 부모님은 중구청 근처에 있는 작은 상가에 월세를 내고 꽃집을 열었다. 원래 살던 동네와 달리 꽃집 근처에는 새로 단장된 아파트들이 성채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나는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놀라서 얼어붙었다. 베란다가 딸린 거실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담벼락이 가관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담. 거기에는 ‘빠구리’나 ‘SEX’ 혹은 ‘재성반점 ’88-0000’ 같은 낙서가 하나도 없었다. 어린 내 눈에 아무것도 없는 벽이 비상식적인 풍경으로 비쳤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마음도 순수할 것만 같았다. 


별로 가진 게 없었던 시절의 기억은 강렬하다. 최신식 아파트에 사는 내 친구와 낡은 동네에서 탈출할 수 없는 나. 그때의 결핍감은 지금도 내 정체성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꼭 집어 지적할 수는 없지만, 내 인생의 어딘가가 불완전하다는 감각은 책을 고를 때도 반영된다.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의 가난한 산골 마을 사람의 정체성을 지닌 주인공이 성공한 후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쓴 책이다.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면 저자 J.D.밴스는 러스트 벨트 지역 출신이다. 러스트 벨트(rust belt)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일대는 쇠가 녹슬어 가는 지역이다. 과거의 영광이었던 공장은 문을 닫고, 공장을 돌리던 백인 노동 계층은 저학력 저소득 마약 중독자로 주저앉은 동네다. 음울한 배경의 미국 영화나 비관적인 가사를 담은 힙합 가사에도 종종 등장한다.


나는 지은이의 출신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가난이라는 방아쇠가 당겨진 것이다. 나방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뜨거운 불꽃 속에 몸을 던지듯 나에게도 특정 행동을 촉발하게 만드는 방아쇠가 있다. 나와 비슷한 면모가 보이면 된다. 망해가는 마을, 구제 불능처럼 보이는 이웃들, 폭력과 가난의 풍경이 나의 방아쇠다. 


나는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기어 나와 자립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숱한 시련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마지막에 웃는 희망의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이 왜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일까. 힐빌리는 특정 백인 계층을 가리킨다. 백인이라고 하면 미국 내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부유하고, 힘 있는 사회 주류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백인도 백인 나름이다. 


힐빌리는 노동하여 생계를 꾸려 나간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야외에서 육체노동을 하느라 목덜미가 시뻘겋게 탔다고 해서 레드넥(redneck) 아니면 경멸적으로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라고 불리기도 한다. 


나는 힐빌리의 존재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백인이라고 해서 모두 부유하고, 교양 있으며, 사회 주류층일 리는 없다. 그러나 은연중에 나는 미국의 계층을 나눌 때 피부색을 기준으로 나누고 있었다. 내 머릿속 편견은 계층의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다. 상부층에는 백인이 존재한다. 가운데 고학력 고소득 유색인종, 하부에 저학력 저소득 유색인종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편견과 달랐다. 미국의 계층 분포는 상당히 복잡했다. 


주인공이 속했던 힐빌리에게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힐빌리 가정은 여러 세대의 친지, 가족들이 서로 활발히 교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리와 명예를 목숨만큼 중시한다. 


J.D.밴스의 친지들은 켄터키주 잭슨이란 산골에 근거지를 두고 생활한다. 잭슨 사람들은 지나가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이고, 눈 더미에 빠진 낯선 이의 자동차를 빼내기 위해 기꺼이 자기 시간을 내어준다. 운구차 행렬이 있을 때면 예외 없이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부동자세를 취한다. 19세기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행동이다.


얼핏 들으면 상당히 화목하고, 안정된 마을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감춰진 현실은 비참하다. 의리와 명예를 중시하는 관습은 곧잘 폭력 사태로 비화한다. 어머니나 누이를 누군가가 모욕하면 피를 흘리며 싸운다. 사람 간 싸움에 전기톱을 가동하고, 권총을 냅다 갈긴다. 


인구 6,000명 정도의 오래된 탄광촌에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드물다. 그나마 적극적이며, 행동력이 있는 주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공장이 있는 오하이오 미들타운 등지로 떠났다. 남은 이들은 무력감에 젖어 술로 이성을 날려버리거나, 마약으로 일시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무료 식권 개념인 푸드 스탬프로 연명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 푸드 스탬프마저 현금 깡을 하여 마약 구매비용으로 써버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열광적 지지를 보내고 음모론을 좋아한다. 켄터키주 잭슨은 구석구석 들여다볼수록 한숨이 나온다. 좌절감이 켜켜이 쌓여서 상황을 비관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개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J.D.밴스는 힐빌리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마약에 빠져 치료 센터를 전전했다. 그 사이 끊임없이 남편을 갈아치웠다. 자식들의 성(姓)은 계속 바뀌었고, 주소는 일정치 않았다. 


마약 중독이 심해질수록 어머니의 정서는 불안정해갔다. 자녀를 차에 태우고 같이 죽자며 미친 듯이 속도를 높이는가 하면, 남편과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접시를 던진다. 거실에는 주사기와 맥주병이 나뒹굴고 옷에서는 악취가 난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집구석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살아남았고 심지어 성공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에 자원하여 해병대에서 4년간 복무하였으며, 제대 후 오하이오주립대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여 촉망받는 사업가가 된다. 그리고는 이해심 많고, 헌신적이며, 역시나 예일대학교 로스쿨 동문인 우샤와 결혼한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에 가까운 인생 역전 스토리다. 전혀 근거 없는 스토리는 아니다. 중요한 시기에 저자를 지켜주고, 지지해 준 사람이 있다. J.D.밴스에게 할모(할머니)와 할보(할아버지)라는 무조건적인 애정을 주는 보호자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저자는 지긋지긋한 혼란만을 가져다주는 엄마와의 삶에서 빠져나와 할모와 함께 지낸다.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엄마는 아들을 붙잡는다. 그러나 상처 입은 일상에 지친 J.D.밴스는 짐을 싸 할머니 집으로 간다. 법적 아버지가 바뀌든 말든 할모네 집에서 주기적으로 식사를 하고, 학교에 출석하면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할모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J.D.밴스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할모가 부드러운 천사는 아니다. 오히려 할모는 성정이 몹시 사납고 고지식한 사람이다. 자기 기준에 차지 않으면 벼락같이 호통을 치고, 욕을 입에 달고 산다. 사랑하는 손주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행동이 굼뜨다며 엉덩이를 차 주고, 귀청이 떨어지라고 잔소리를 퍼붓는다.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 하면, 해병대 징집관이 집을 방문했을 때 고압적인 자세로 버티고 서서 한 발자국만 더 들어오면 총알을 박아줄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반면 성자와 같은 면모도 있다. 할모는 고통받는 이웃을 측은히 여기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신실함을 담아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정치인의 입에 발린 말보다는 평범한 개개인의 노력을 중시하고 아메리칸드림을 믿는다. 땀 흘려 일하지 않는 자들을 경멸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가족을 더욱더 끔찍이 아낀다. 손주가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녹여 바친다. 할모는 초등 수준의 교육만 겨우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회가 교육을 받은 엘리트 위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할모는 보통 사람이 땀방울로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옳다고 믿는다.


나는 저자의 할모와 할보를 보면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1987년에 태어난 나는 또래 중 드물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쭉 살았다. 아빠는 8남매 중 막내아들이었지만, 부모님을 모셨다. 다른 형제들이 모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물세 살에 아빠와 결혼한 나의 엄마는 삼십 년이 넘게 시집살이했다. 


나의 조부모님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평생 농사만 지으셨다. 할머니는 글자를 읽을 줄은 몰랐으나, 40년 간 시장에서 채소를 내다 파느라 현금 계산은 하셨다.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한글과 기초 한자를 익혔다. 두 분은 억척스럽게 일하셨다. 가방끈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엄청난 성실을 몸소 보여주셨고 사람은 배워야 출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두고두고 알려주셨다. 물론 어떻게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자기는 ‘지게 대학’ 출신이라고 자학 농담을 하곤 했다. 


나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때로는 조부모님을 따라 농사일을 도왔다. 고추를 따고, 고구마를 캤다. 농사는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무척 고되었다. 할머니는 내가 농사 돕는 걸 싫어하셨다. 못 시킬 일을 시킨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잠깐의 짬만 나도 나더러 먼저 집에 돌아가라고 하셨다. 내가 안 가고 호미를 쥐고 땅을 파면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학교 선생님 말씀이나 잘 들으라고 하셨다. 


농사는 공부 못해서 ‘입신 못 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는 뉘앙스를 나는 온몸으로 흡수하며 자랐다. 그러나 그런 것과 별개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사지은 배추와 무, 고구마를 먹고 컸다. 나는 <힐빌리의 노래>에서 할모가 말하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시큰거렸다. 할아버지는 내가 대학생 때 돌아가셨지만, 백 세를 목전에 둔 할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22년 8월에 돌아가셨음) 


우리 할머니는 옛날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돌아가시길 바라셨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노인을 집에서 자연사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지금도 젊은 날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이 있고, 대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옛날의 풍경을 그리워하신다. 우리 마을은 가난했으나, 자연은 좋았다. 


J.D.밴스에게도 자연은 소중하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풍요로움은 지역과 인종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밴스는 열두 살이 될 때까지 매해 여름방학과 휴일의 거의 대부분을 잭슨에서 보냈다. 잭슨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빈곤한 동네다. 그러나 그 반대로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가 머물렀던 친척 할머니 집의 현관 앞에는 그네가 딸린 포치가 있었다. 포치 앞으로는 너른 마당이 펼쳐져 장관을 자아냈다. 


마당의 한 면은 산 쪽으로, 다른 한 면은 골짜기 꼭대기 쪽으로 뻗어 있었다. 어린 J.D.밴스는 바위와 나무로 가득한 잭슨의 자연을 누렸다. 저자는 어른이 되어 성공한 이후에도 아름다운 잭슨을 그리워한다. 한편으로는 추락하는 잭슨 주민을 안타까워하고, 어린 시절의 악몽이 떠올라 고통에 몸부림친다. 저자에게 잭슨은 복잡한 공간이다. 손에 잡힐 듯 생생히 원하다가도 안 좋은 기억이 끼어들면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나는 저자가 켄터키 산골 마을에 대해 느끼는 이중적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고향 효문동은 잭슨과 닮은 점이 많았다. 효문은 원래 한적한 농촌이었다. 그러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5년 울산미포국가산업 단지 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공장 이외의 주민시설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주민의 땅은 공장 대지로 헐값에 넘겨졌다. 


평범했던 농촌 마을 주변으로 공장이 마구잡이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흙길이었던 마을 골목은 폭을 넓히거나 하는 시도도 없이 시멘트로 덮이더니, 나중에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구식 하수도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겼다. 장기 거주 인구는 자꾸 줄었다. 반면 인근 공장에서 저렴한 임금을 받고 일하는 불법 체류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내가 태어나서 삼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효문에는 2층이 넘는 주택 혹은 작은 빌라도 거의 들어서지 않았다. 사람들은 낡디낡아서 빗물이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옛집을 땜질하듯 손봐서 살았다. 그 이유는 2004년 무렵에 울산시와 한국토지공사가 공단 사업 시행 협약을 맺으면서 효문공단 주민들을 이주시켜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다 허물어버릴 집인데 누가 새로 건물을 세우겠는가. 결국 이주는 약속보다 15년이나 지체된 2019년에서야 이루어졌다. 


효문의 좋은 점도 있었다. 울타리처럼 둘러친 공장 가운데 원주민이 살던 주택 밀집 지역과 얕은 동산, 텃밭이 방치 상태로 남은 것이다. 개발 제한이 걸린 탓에 강제로 주어진 자연이었다. 공장 단지 사이에 조그마한 섬처럼 녹지가 보존되었다. 


할머니는 제값 받고 팔지도 못하는 땅이라고 푸념하며 잡풀을 뽑았지만, 어린 나에게는 충분한 크기의 녹지였다. 동생과 나 그리고 동네 아이들은 수시로 흙을 만지고, 대나무를 뽑아 텐트 비슷한 구조물을 만들며 놀았다. 공업도시인 울산에서 뒷산과 텃밭이 있는 동네는 흔치 않았다. 공단으로 40년 넘게 묶여 퇴락해 가는 효문이었지만, 나에게는 어린 시절 자연의 이미지가 회색빛 공장의 굴뚝과 마찬가지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참 아이러니한 기억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의식을 떠나지 않는 질문들이 있었다. 모두 ‘왜’가 포함된 질문이다. 도대체 효문과 잭슨의 사람들은 왜 점점 힘들게 살 수밖에 없을까, 왜 동네 형들은 대학에 가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부탄가스를 마실까. 왜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최악의 선택지만 골라서 살까. 왜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스스로 파멸시킬까.


절대적 빈곤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저자도 책에서 언급하다시피 힐빌리들의 경제적 수입은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나 빈민가 흑인보다 많다. 그럼에도 삶의 행복도는 낮고, 대학 진학률도 떨어진다. 미국에는 푸드 스탬프 제도가 있고, 한국에도 기초생활수급제를 비롯한 각종 저소득층 지원 복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적어도 아프리카의 소말리아나 수단처럼 음식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근사하지는 않지만,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사시사철 걸칠 수 있는 옷이 있으며, 배곯지 않는다. 인간의 최소 생존 조건인 의식주는 모두 갖춰져 있는 것이다. 


나는 <힐빌리의 노래>에서 J.D.밴스가 힐빌리 가정이 크리스마스 시즌 때 훨씬 더 많은 돈을 쓴다고 했을 때 고개를 크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효문의 아이들도 장난감은 넘쳐났다. 분명 내가 학교에 다녔던 중구청 주변 아이들이 훨씬 좋은 집에 살았지만, 온갖 인형, 게임기, 미니카 세트는 효문에 더 흔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4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끼리도 친구여서 나랑 유독 가까웠던 J라는 친구가 있다. J는 어느 설날 당일 세뱃돈을 두둑이 받았다며 꽃집이 있는 동네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사촌들과 놀고 싶었지만, 레고를 사주겠다는 말에 꼴딱 넘어갔다. 우리는 5-1번 버스를 타고 중구청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친구는 두둑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지갑을 보여주었다. 스무 장이 넘는 만 원짜리가 이방인처럼 어린이용 지갑에 끼어 있었다. 지폐가 얼마나 많았는지 지갑을 반으로 접을 수조차 없었다. 


설마 그 돈을 다 쓸 수는 없을 거라고 거듭 생각했다. 일주일에 용돈 2천 원을 받던 시절이니 이십만 원은 말도 안 되는 액수의 돈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J는 돈을 하루 만에 다 털어 없앴다. 프라모델 가게에 전시되어 있던 9만 원짜리 최고사양 미니카를 덥석 집어 든 것을 시작으로, 미니카 공구함, 대형 레고 해적선까지 쓸어 버렸다. 나에게는 끝까지 레고를 사주지 않다가 내가 항의하자, 피규어 하나와 1인용 배가 들어있는 소형 레고를 안겨주었다. 나는 J가족이 부자일 거라고 오랫동안 착각하며 살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길거리에서 J가 200㏄짜리 혼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을 보기도 했다. 


훗날 아버지에게 듣기로 J네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J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으나 방치하여 후천성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부인과는 바로 이혼 절차를 밟았다는 소식까지만 들었다. 벌써 8년이 지난 얘기다. 효문동 친구 중 아직 연락이 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힐빌리의 노래>에서 J.D.밴스는 대학에 진학하며 과거에 자기가 교류했던 이들과 다른 사람과 만나고 새 삶에 눈을 뜬다. 나 또한 중구청 근처에서 초중고를 다니면서 효문동에서 접했던 세계와는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J.D. 밴스처럼 결혼도 대학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했다. 


내가 대학에 와서 느낀 점은 좋은 삶에 크게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령 돈이 없더라도 태도만 좋으면 윤택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우수한 시설의 도서관이 있으므로 책 대여와 열람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운동도 굳이 비용이 발생하는 헬스장이나 개인 필라테스 삽에 등록할 필요가 없다. 어느 도시에나 공원, 강가 산책로, 짧은 산행코스 등이 마련되어 있다. 본인 의지만 있다면 몸을 움직여 무료로 자연을 느끼며 운동할 수 있다. 


그런데 효문의 친구들과 <힐빌리의 노래> 속 잭슨 힐빌리는 왜 그렇게 무력했을까. 팔팔한 신체를 지니고도 게으름을 피우고, 핑계를 대고, 계속 안 된다는 말만 할까. 학교에는 의욕적인 선생님이 계시고,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말이다.


내가 느끼고 경험하기로는 학습된 무기력과 보고 배울만한 예의 부재가 가장 컸다. 돈보다 사람 그리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문화의 부재가 아이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다. 꿈을 꾸려면 ‘나도 나중에 저런 사람처럼 되어야지, 이런 일을 해야지’ 같은 동기가 필요하다. 


만일 부모님께서 가게를 시내에 차리지 않았다면, 내가 다른 동네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면,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을까.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는 할모를 비롯한 고마운 친지들의 지지와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J.D.밴스는 없었을 거라 확언한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게 <힐빌리의 노래>는 단순 독서가 아니었다. 지난 세월을 비추는 거울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이 책은 지구 반대편에서 나와 일면식도 없는 가난했던 백인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J.D.밴스에게서 나를 찾으려 했다. 

벽돌처럼 두꺼운 책을 내가 중간에 덮지 않은 다른 이유도 있다. 결과적으로 나도 안정을 찾았기 때문이다.


J.D.밴스만큼 성공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세금 안 밀리고, 가족들 안 굶기며 살게 되었다. 직장도 안정적이고 귀여운 아이들도 어느새 커서 학교에 다닌다. 주택융자금이 꽤 끼어 있지만, 신축 아파트도 샀다. 나는 어릴 적 내가 그토록 바랐던 무난한 중간 계층의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 내 주변에는 나보다 훨씬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다. 외제 차를 끄는 또래도 여럿이다. 그러나 나는 골프를 치지 않고, 비싼 술을 마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의 안정감이 믿기지 않을 때가 종종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내 삶이 도로 주저앉을까 봐 불안하다. 그 불안은 울렁거림의 형태로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나는 사치하느라 비틀거리는 삶을 경계한다. 고급 가구를 들여놓지 않고, 시계나 오디오 따위에 힘주지 않는다. 슬슬 낡은 티가 나는 첫 차를 오래도록 타면서 비싼 과시용 차를 경계할 것이다. 헬륨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면 어느 순간 기압 차이로 뻥 터지게 되듯 삶이 지나치게 들뜨면 곧 터져버릴 것 같다. 정신과에 가서 내 심리를 상담받아 본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불안 증상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J.D.밴스도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어서 안심했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어느 순간 궤도에 오르면 멀미 증상 같은 것이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일종의 계층 이동에 따른 시차 적응 같은 것 말이다. 


그렇지만 계층 이동 멀미쯤이야 백 번이라도 감수할 테니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좀 잘 살고 싶은데 방법도 모르겠고, 옆에 보고 따라 할 만한 롤 모델도 없고, 나이만 먹어가는 막막함에 질식할 것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는 훨씬 많을 테다. 과거의 J.D.밴스와 나처럼. 


<힐빌리의 노래>는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좌절한 여러 인종, 여러 문화, 여러 계층의 루저들에게 귀중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가 J.D.밴스처럼 대박을 터트릴 수는 없겠지만,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최악의 상태에서는 벗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저자가 따라간 길을 힌트 삼아 내 형편에 맞게끔 변형해서 적용하다 보면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두툼한 책의 두께가 부담스럽다면,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먼저 보고 책을 잡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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