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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Mar 29. 2023

직업으로서의 교사 천직으로서의 교사

민들레 2023년 3-4월호

다섯 명의 담임이 되다  


공업도시 울산 출신인 내가 강원도에 있는 교대에 진학할 때만 해도 어렴풋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어촌 마을 작은 학교에서 열댓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긋한 세월을 보내는 선생님. 오후에는 개울에서 아이들과 물고기를 잡고, 학교 조회대에서 수박을 깨 먹는 장면이 밑도 끝도 없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환상이 현실에서 펼쳐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2009년 첫 발령을 받은 이래 내가 근무한 학교는 최소 한 학년에 두 반 이상이었다. 담당하는 학생도 20명이 넘었다. 강원도 삼척의 탄광촌 벽지 학교에 있을 때조차 아이들의 출석 번호가 22번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8년의 삼척 근무를 마치고 올해 양양으로 옮기면서 그 시절의 환상이 떠올랐다. 우리 반 학생 수는 5명(그렇다고 일이 줄진 않았다). 전교생 여섯 학년을 합해도 30명이 안 된다. 이웃 학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해안 해변을 따라 자리 잡은 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많아도 40명 남짓, 적으면 10명대를 찍었다. 강원도 양양 군내 초등학교를 모두 검색해보니 시내 중심가에 있는 전교생 500명 규모의 학교를 제외하곤 폐교를 염려해야 하는 곳이 여럿이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22년도 잠정 합계 출생률은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출생률 감소로 인한 학령기 인구감소는 학교의 교사 수 감소와 직결된다. 정부는 교원 규모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교대 졸업 후 넉넉잡아 2~3년이면 대부분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임용시험 N수에 도전하는 교대 졸업생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나 선호도가 높은 서울이나 경기, 광역시는 경쟁이 극심하다.


특수목적 대학인 교대의 성격을 알면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어떻게 실업자가 그렇게 쉽게 발생할 수 있지?’ 하고 말이다. 가령 경찰대학이나 사관학교 출신 실업자는 상상하기 어렵다. 애초에 필요한 수만큼 모집하고,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면 국가가 채용한다. 해군 사관학교 생도 한 기수가 통째로 임관을 못 하고 사설 용병업체에서 전투 임무를 수행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똑같이 특수목적 교육기관인 교대는 왜 취업률이 낮아지고 임용 적체가 일어나는 걸까. 사실 교대도 안정적인 교사 수급을 위해 정부가 개입한다. 실제로 전국의 교대 재학생 수는 지난 10년간 20%가량 줄었다. 하지만 출산율 감소 폭이 예상을 훌쩍 넘어섰고, 그사이 교대 정원 감축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규모 학교 학습권 보장이나 과밀 학급 해소를 위한 교사가 증원되지 않은 교육 현실을 보면 무조건 교사 정원을 줄이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구조적으로 교대의 임용 합격률 저하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올해 전국 각지의 교대에서 입학생 미달 사태가 발생하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실은 몇 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교사 수 감소, 교사라는 위상의 추락


교사 수 감소와 함께 교사라는 직업의 위상 또한 추락하고 있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20년가량 ‘불변의 선호 직업 1위’, ‘월급은 적지만 취업 보장’ 신화를 쌓아가던 교직이지만,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매년 진행하는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에서 고등학생이 희망 직업으로 교직을 선택한 비율은 2007년 13.4%에서 2022년 8%로 감소했다. 교대 통폐합 이야기가 수시로 언급되고 있는 가운데, 교직은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추천 직업’에서도 밀려나고 있음을 주변의 분위기로 느낄 수 있다.


취업난을 예상해 교대에 진학하지 않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일 수 있으나 공교육의 질 측면에서는 다소 심각한 문제다. 그간 한국의 교대는 수준 높은 초등교사 자원을 확보해왔다. 공교육의 수준을 높게 유지하는 것은 매우 막중한 임무이다. 2020-2021년에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거나 띄엄띄엄 운영되었을 때, 학력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평소에는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어떤 돌발 변수가 발생하여 학교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금세 부정적인 결과가 튀어나온다.


교사의 위상을 예전 같지 않게 만드는 것은 교권 침해 논란이다. 올해로 교직 14년째인 나는 해가 갈수록 학급 운영이 버겁게 느껴진다. 정서나 행동 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늘고, 교사의 지도에 비협조적이고 공격적인 학부모도 종종 만난다. 지나치게 광범위한 아동 학대의 기준도 생활지도를 어렵게 만든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아이가 온 교실을 헤집으며 난장판을 만들어도 교사가 아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 모둠 활동을 심하게 방해하는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잠깐 교실 뒤로 보내는 것도 자칫하면 아동 학대 신고감이 된다. 산만한 아이에게 주의를 주다가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민원을 감수해야 한다. 피해를 보는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고 싶지만, 매번 극단적인 소수에 의해 균형과 질서가 맥없이 무너진다.


동료 교사가 휴직을 할 정도로 심한 일을 당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놀이터 미끄럼틀 구멍을 막고 서서 저학년 동생이 못 내려오도록 얼굴에 발길질하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더니 다음 날 학교로 경찰이 찾아왔다. 발길질을 한 학생의 학부모가 ‘아이가 선생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등교를 거부한다’라며 교사를 아동 학대 혐의로 신고한 것이다. 이 정도는 극단적 사례가 아니라 지금 교사들이 겪고 있는 일의 보통 정도에 해당한다. 오죽했으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교사에게 “정말 고생 많으시다”라는 말을 거듭 남겼을까. 경찰관 한 분이라도 자신의 노고를 알아준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 만큼, 교사는 감정노동에 지쳐 있다.


교사라는 직업


나와 주변 동료들의 경우를 볼 때 사람이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경제적 요건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질이나 가치관에 따라 직업을 고르고, 그 일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내가 교대에 들어갈 무렵(2005년)만 해도 교직은 경제적 면에서 메리트가 있었다. 고소득 전문직은 아니었지만, '어지간해서는 잘리지 않는다'라는 조건이 교직의 매력을 부각했다. IMF로 가정이 무너진 사례가 어제의 악몽처럼 떠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일까, 특히나 학비가 저렴하고, 졸업 후 빨리 취업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넉넉지 않은 집안의 수재' 부류의 학생들이 교대에 제법 많았다. 나 또한 아이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지방 소규모 자영업자의 첫째 아들이었기에 경제적 이유와 근로 안정성에 끌려 교대로 진학했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적 이유는 월급이 세다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 고생하면' 풍족한 연금이 나온다는 기대였다. 그러나 지속된 개정으로 전설처럼 회자되는 '정년퇴직 교장 선생님의 화려한 연금 라이프'는 꿈같은 얘기가 되어버렸다. 만약 초등교사를 지망한다면 최소 임용 초기 십 년은 절약하고 아끼면서 살 각오를 다져야 한다. 나 또한 초임 교사 시절 월급을 받고 다소 당혹스러웠으나, 선배들로부터 워낙 주의를 들어왔기에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부부 교사인 우리는 요일별 현금 봉투를 만들고 가계부를 작성하며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따박따박 나오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있었던 초임 교사의 월급은, 2023년 현재 생활비를 대고 나면 겨우 소액만 저축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인플레이션과 사기업의 임금 상승 폭을 고려하면 '전공이나 대학 선택이 비교적 수월한 우수 인재'들이 굳이 경제적 이유로 교직을 선택할 까닭은 많지 않아 보인다.   


지나치게 암울한 모습을 소개해서 미안하지만, 내가 교직의 악조건부터 언급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교사라는 직업의 아쉬운 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위 ‘천직’이나 ‘소명’ 같은 것을 품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혹은 단순하게 ‘나는 선생님 이외에는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아’ 같은 생각이 처음부터 내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아무리 연금제도가 개편되어 수령액이 반 토막 나고, 임용문이 좁아져도 몇 번이고 도전해서 기어코 교사가 될 것이다. 혹은 나처럼 처음에는 직업의 안전성을 보고 들어왔지만, 학교 밥을 먹다 보니 차츰 ‘선생님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예도 있을 수 있다. 사람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봉급이 적더라도 수업이 즐겁고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간을 아끼게 되면 학교에 정을 붙이게 된다.


교사라는 직업의 중추에는 성장과 배움,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교과서적인 대답이라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성장이나 배움 같은 단어가 경험적이고도 실질적인 감각으로 저장되어 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는 모습이 손에 닿을 듯 생생하게 다가오는 찰나에 나는 진한 행복을 느낀다.


가령 오늘은 실과 전담 수업에 다녀온 M(5학년, 남)이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유쾌한 실과 선생님 수업 스타일을 고려하면 가라앉은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기에, 넌지시 운을 띄워보았다.


“무슨 고민 있어?”

“실과 쌤 말로는 우리가 곧 사춘기를 겪는대요…. 그런데 제가 엄마한테 화를 내게 될까 봐 걱정돼요.”


정말로 심각한 눈동자를 한 M. 수업 시간에 사춘기가 되면 호르몬의 변화로 부모님과 다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엄마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M은 엄마와 관계가 틀어진다는 상상만으로 괴로웠던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M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려주었다. 우리는 성장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혹여나 부모님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것조차 자람의 일부라고 천천히 대화를 나누었다. 가슴 속에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덩어리 같은 것이 있는 채로 말을 주고받아서 그런지 M의 울적한 기분도 약간 풀린 듯했다. 옆에서 은근슬쩍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J가 와서는 말을 보탰다.


“저는 아직 온 식구 네 명이 한방에서 자요. 그런데 동생이랑 제가 엄마 양옆에서 자느라 엄마가 비좁고 불편하실 것 같아요. 점점 키가 더 크게 될 건데 어떡하죠.”


그렇게 하나둘 퍼져나간 이야기는 어느덧 모두의 ‘효심 고백 타임’이 되었고, 다들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다음 수업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나는 퇴근을 하고 나서도 아이들이 들려준 사연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잠을 자려 불끈 방에서 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다가 새삼 내가 초등교사라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일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어디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보드랍고 다정한 위로’를 일상적으로 받을 수 있겠는가. 미세혈관 속속들이 밝고 따스한 빛의 알갱이들이 들어차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세세한 규정에 맞춰 급히 공문을 처리하는 스트레스나, 과거에 때때로 나를 지치게 했던 ‘습관성 민원 왕’의 존재를 잊을 수 있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사람을 상대하기에, 결국 사람 때문에 웃고 사람 때문에 운다. 기운 빠지는 날도 많고,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아동학대법’이 부당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생님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인 것 같다.


학생들과 둥그렇게 책상을 붙이고 앉아 책 이야기를 1년 정도 나눈 뒤 생각이 부쩍 자란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월급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멋진 시가 있으면 휴대폰 메모장에 옮겨두었다가 국어 시간에 들려주기도 하고 신기한 교구가 있으면 사비로 사서 교실에 갖다 놓기도 한다. 우리 반 Y가 “와! 우리 반 쌤 최고!” 하면서 따봉을 날려주면 날개가 돋은 듯 기분이 좋아져서 하루를 룰루랄라 보낸다.


그렇지만 나는 큰 소리로 선생님의 기쁨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서 현재까지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던 탓이기 때문이다. 교직 생활은 거대한 러시안룰렛 게임과도 같아서 언제 어디에서 탕! 하고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 제아무리 교직이 적성에 맞아도, 열과 성을 다해 교육에 임해도 단 한 번 악연을 만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학생 혹은 학부모 기분에 따라’ 어떤 교사라도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아동학대법에 걸리면 페스탈로치가 살아 돌아와도 징계를 피할 수 없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교육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군인이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닌다는 이유로 전장에서 이탈할 수 없듯, 교사는 학교라는 필드에 발을 디딘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선생님들이 노이로제에 시달리며 출근해야 하는 걸까. ‘밥벌이가 다 힘들지. 안 힘든 데가 어디 있어.’ 하고 넘기기에는 지금의 학교가 너무 위태롭다.


즐겁게 가르치며 오래 일하고 싶다. 그러나 요즘은 내 바람이 교사 한 사람의 마음가짐과 실천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언제쯤 교단을 떠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부디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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