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교사 컨설팅

by 이준수

“장학사님, 진짜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진행해도 돼요?”

“사석에서는 형이라고 불러. 어차피 강사 땜빵 가는 거니까 신경 쓸 사람도 없어. 너 편한 대로 해.”

“형님, 그럼 진짜로 솔직하게 다 합니다.”

“그래라니까. 너도 경력 15년 차니까 연수나 컨설팅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거 알잖아? 적당히 내용 넣어서 10분 일찍 끝나는 스케줄로 짜 봐.”


도경준이 업무용 메신저로 진동표의 쪽지를 받은 건 슬슬 퇴근 준비를 하던 금요일 오후 4시 40분이었다.


【경준아 다음 주 수요일에 신규 교사 컨설팅 대타 뛸 수 있냐? 강사가 교통사고 나서 못 오게 되었어. 강의비는 빵빵하게 챙겨줄게.】


이 형은 뭐가 이렇게 허술해? 장학사가 됐어도 똑같네, 경준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진동표 장학사는 예전에 벽지 학교에 근무할 무렵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이 사람은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일부러 어려운 승진 코스를 밟는 사람이랄까. 벽지와 농어촌 가산점이 높아서 삼 년만 교무 부장으로 근평 챙기면, 무난히 교감 지명을 받을 수 있는 상태를 포기한 것이다. 승진의 목전에서 전문직 시험을 봤다. 그것도 재수까지 해 가면서.


처음 동표의 장학사 발령 소식을 들었을 때, 경준은 축하의 마음보다 의아함이 앞섰다.


‘이럴 거면 육상부 감독 8년은 뭣하러 했고, 출퇴근 1시간씩 하면서 산골짜기 벽지는 왜 찾아다녔대. 사서 고생을 하시는구만.’


경준은 사람 좋게 웃는 동표가 떠올라서 나쁜 평가를 지워버렸다. 동표는 아들이 어릴 때 보던 동화 전집을 경준이네 첫째가 태어나자 통째로 건네주었다. 유아 도서 시장에서는 꽤 유명한 시리즈였다. 술도, 밥도 후배에게는 무조건 돈을 내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네가 나이 먹으면 후배들에게 똑같이 해 주면 된다면서.


‘그나저나 신규교사 컨설팅이라…….’


경준은 짜증스러웠던 신규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의 학교는 초임 교사를 믿지 못하는 곳이었다. 말로 사람을 난도질하는 집단 구타나 다름없는 수업 장학은 물론, 강제로 받아야 하는 외부 연수나 컨설팅이 한 학기에만 해도 몇 차례씩 있었다.


공문에는 분명 교원의 ‘희망’에 따라 신청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으나, 교감을 비롯해 학년 부장이 신규에게 은근히 강요를 일삼았다. 동료 교사들을 보고도 모른 척했고.


차도 없는 상태에서, 택시비도 안 나오는 관내 출장 여비를 받아 교육청에 도착하면 대부분 화가 났다. 일단 연수 내용이 형편없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들이 들려주는 교실 이야기는 그나마 나았다. 그런데 웃음 치료, 퇴직 교장의 인간관계 특강 따위의 주제는 정말이지 진지한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웃으면 복이 온답니다. 소리 내어 큰 소리로 웃어 볼까요. 우하하하하!”


정신이 어질어질한 멘트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웃음 치료장에서 경준은 심각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런 강의에 세금을 쓰는 교육청은 진정으로 반성해야 한다. 국민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석고대죄라도 해라.’


경준은 어색하게 입술을 끌어올리며 악담을 퍼부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경준과 유사한 감정을 공유하는 신규교사들의 파릇파릇한 얼굴이 경련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신규교사 컨설팅을 수락하자 다음 단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진동표는 강사 출장 협조를 구하는 전화를 교감에게 바로 넣었다. 꽤 살가운 목소리로.


강원도 지방 도시에서 장학사, 교감끼리 모르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중에는 배드민턴을 치고, 주말에는 골프를 치는 친밀한 사이도 흔하다. 교감과 진동표는 컨설팅 협조 이야기는 5초 만에 끝내고, 주말 라운딩 일정을 잡느라 5분 넘게 통화를 끌었다.


*


월요일이 되자, K-에듀파인 문서함에 정식으로 컨설팅 공문이 접수되어 있었다. 경준은 컨설팅을 이틀 앞두고서야 컨설팅의 주제를 확인했다.


【승진의 세계와 향후 진로 계획】


본래는 도교육청 장학관으로 퇴임한 마당발 강사가 인생 썰을 풀 예정인 모양이었다. 딱 봐도 교육계 정치질 하면서 형님, 아우, 전문가님 따위를 남발하며 위로 올라간 케이스였다.


‘야단났네, 이거.’


경준은 이제 벽지 근무를 하지도 않고, 연구 대회도 나가지 않으며, 승진 생각은 뇌에 1그램도 남아있지 않았다.


진동표는 단지 경준이 과거에 연구 대회 수상 경력이 세 차례 있다는 것, 벽지 가산점을 쌓으려 노력했던 적이 있다는 이유로 만만한 후배 한 명을 컨설턴트로 앉힌 것이다.


경준은 겨드랑이가 축축해졌다. 군대 유격 훈련 전날 흘린 식은땀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아, 신규교사라고 컨설팅에 끌려온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승진에 별 뜻이 없다. 예전에는 남교사 중에 승진 안 하고 평교사로 눌러사는 사람이 있으면 ‘교포족’이라고 불렀다. 교장 포기족. 모든 남선생이 승진 희망자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개인의 취향과 다양성을 고려한 예외는 없었다.


교포족 당사자가 “나는 교장을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 교장이 안 되고 싶은 사람이오.”하고 백 번을 외쳐봐야 소용없었다. 목에 핏대를 백날 세워봐야 루저의 어설픈 변명 취급이나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월급도 똑같은데 뭐 하러 고생해서 교감, 교장에 목매나. 방학에도 출근해야 하고, 교무실로 바로 쳐들어오는 학부모 진상도 관리자들이 중재해야 한다. 흡사 폭탄처리반이지 않은가. 교장이라는 허울 뿐인 타이틀을 위해 수명을 바칠 텐가. 제 발로 무덤에 걸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소위 MZ의 무의식적인 중론이었다.


경준이 승진을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따로 있었다. 경준은 벽지 학교 만기를 채우던 해에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직위해제 당했다. 점심시간에 반 아이가 자기 발에 걸려 계단에서 넘어져 정강이뼈에 금이 간 사건이 있었다. 평소 말을 예쁘게 하던 녀석이라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대뜸 학부모가 교사의 역할을 태만히 했다고 교육청 민원을 넣었다.


그때 경준은 말을 아꼈어야만 했다.


“어머님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교사가 점심시간에 모든 아이를 관찰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앞으로 잘 챙기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학부모는 완전히 돌아버렸다. 대화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새까맣게 날려버리고 ‘모든 아이를 관찰할 수는 없습니다’에만 꽂혀 버린 것이다. 평소 교양 있는 말투로 정중함을 유지하던 학부모의 모습은 딱 아이에게 손해가 나기 직전까지만 유지되었다.


단 1퍼센트의 흠집도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야 하는데 그 목표가 깨졌다는 좌절감. 학부모의 분노 원인은 그녀의 내부 의식에 있었다. 모든 물이 바다로 흐르듯 학교에서 촉발된 모든 종류의 학부모 분노는 담임인 경준에게로 쏟아졌다.


학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윽박질렀는지, 아이는 조사원에게 담임 선생님이 오랫동안 무서웠다고 진술했다. 아침에 눈 뜨면 등교하기 싫을 만큼.


경준은 어느새 아이에게 정서적 아동학대를 저지른 교사가 되어 있었다. 아동 전문가로 위촉된 지역 아동센터 관계자에게 자그만 희망을 걸고 호소해 보았지만, “우리는 피해자 중심입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경준은 내가 피해자가 아니면 누가 피해자인가 싶어 길을 잃은 허무함에 시달렸다.


다행히 사건은 무혐의 처분으로 끝났다. 그렇지만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경험을 하면서 경준은 학교에 오만 정이 떨어져 나갔다. 조사를 받기 직전 담임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반강제로 휴직을 신청해야 했다.


직위해제를 당하면서 경준의 가정 수입은 반토막 났다. 맞벌이 소득 기준으로 설정한 아파트 담보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해 태어나 처음으로 카드 리볼빙 서비스를 썼다.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늘리려는 시도는 은행에서 퇴짜 맞았다. 장인어른이 퇴직금으로 은행에 꽂아둔 예금을 해지하지 않았더라면 경준은 아파트를 팔고 빌라로 옮겼어야만 했다.


인생은 학교에서 한 발짝만 떨어져 나와도 새까만 낭떠러지를 보여주었다.


경준은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집에서 열심히 설거지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빨래를 탁탁 소리 나게 털어 널고, 마른 옷가지를 개키는 반년 동안 경준의 내부에서는 커다란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이듬해, 복직 결정이 내려졌을 때 경준은 승진 가산점이 없는 시내 학교로 관내 전보 신청을 냈다. 더 이상 시골 학교에서 지옥 같은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학교 내에서 약간이라도 책임이 더 부과되는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아이를 키우려면 직장은 다녀야 했다.


담임 복귀 전날 경준의 일기장에는 단 한 줄만이 적혀있었다.


【나는 교육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직장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


“경준아 오늘 잘 부탁한다.”

“컨설팅 취소되게 하려고 강의 자료 엉망으로 써서 보냈는데, 용케 결재 났네요.”

“내가 처음 서너 장 손 봐서 결재 올렸지. 교육청 과장들 바빠서 일일이 끝까지 다 못 봐.”


여기 싸인해, 진동표 장학사는 경준에게 연수 등록부를 내밀었다. 연수생은 관내의 경력 3년 미만의 신규 교사들이었다. 가여운 조직의 희생양.


연수장 환경은 나무랄 데 없었다. 편안한 강의실 책상 배치며 간식 바구니까지 꼼꼼하게 갖춰져 있었다. 현수막에 강사 이름이 테이프로 지워져 있는 것만 빼고.


“예상보다 본격적인 컨설팅이네요.”

“요새 교육부에서 신규 교사 직장 이탈 막겠다고 엄청 신경 쓰잖냐. 죽는 사람도 심심찮게 나오고 하니…….”

“선생님 월급이나 올려주면 될 일을.”

“그럼 고경력들도 덩달아 오르는데 국가 예산이 감당되겠어? 우리는 좋지만.”


진동표가 노트북과 빔프로젝터 연결을 확인하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경준은 동표의 얼굴이 학교에 있을 때보다 밝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방학이 없어도 학교보다는 교육청 근무가 더 낫구나.


“아 참, 원래 내빈으로 참석하기로 했던 교육장님과 다른 부서 장학사님들은 사정이 있어서 불참하게 되었어.”


“옙, 당연히 그러시겠죠. 컨설턴트가 바뀌었잖아요.”


진동표는 씨익 웃기만 했다. 오히려 경준에게는 어른들이 없는 쪽이 편하다.


끼익.


강의실 문이 열리며 아주 젊은 여자의 얼굴이 쏙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여자가 너무 어리게 보여서 순간적으로 중등 과학영재 학생인가 아닌가 하고 경준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곧이어 시야에 들어온 작은 샤넬 숄더백을 보고서야 연수생임을 알게 되었다.


샤넬에 뒤이어 들어온 남자는 군대를 갓 전역했는지 머리가 굉장히 짧았다. 짧은 머리에도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군필자 경준의 눈에는 전역 직전, 후임 이발병이 제대 기념으로 밀어준 모양새로 보였다. 헤어스타일로 ‘나는 예비군이 되었습니다’를 자랑하는 것 같았다.


예비군은 첫 질문부터 남달랐다.


“여기 앉아도 되겠습니까?”

“편하신 대로 하세요.”

“넵, 감사합니다.”


아직 군대 물이 덜 빠진 사람은 저렇지, 문득 옛 추억을 떠올리던 경준은 강의실 벽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날렵한 군시절의 몸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대신 신규교사보다 월등히 나이 들어 보이는 중견 남교사가 흐릿한 눈빛을 하고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비군은 존경심을 담아 컨설턴트인 선배 교사 경준을 바라보았다. 젊은이의 눈동자에는 마치 사열대 위의 연대장을 바라보는 듯한 경외감이 어려 있다.


예정된 컨설팅 시간을 막 오 분 넘긴 시점에 마지막 연수생이 도착했다.


“저기 장학사님, 장학사님께서는 인사만 하시고 강의는 저희끼리 해도 될까요?”


경준이 진동표에게 찡긋 눈짓을 보냈다. 동표는 냉큼 뜻을 알아채고는 서둘러 컨설팅 시작 멘트를 날렸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교육청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컨설팅 주제인 ‘승진의 세계와 향후 진로 계획’과 관련해서 도경준 선생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 주실 겁니다. 아주 유능한 분이시니 모쪼록 유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짝짝, 연수생의 영혼 없는 박수 소리를 뒤로 하고 진동표는 사라졌다. 머리가 띵해지는 히터 바람이 흐르는 연수실에 경준과 연수생만 남았다.


경준이 자세히 보니 과는 다르지만, 교대 시절 같은 학번이었던 남자도 연수생 사이에 섞여 있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임용고시를 보지 않고 보험회사에 취직했다고 들었는데, 다시 교육계로 돌아온 듯했다. 그 사람은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꺼내야 할까.


어색한 침묵 속에 열다섯 쌍의 눈동자가 호를 그리듯 경준에게 쏟아졌다. 대단한 무엇을 기대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차출된 징집병처럼 어서 빨리 무의미한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분위기였다. 어차피 전쟁은 책상머리에 앉은 늙은이들이 벌이는 것이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재 개그라도 준비해 올 걸.’


강사도 쉽지 않구나, 경준은 새삼 첫 강의 자리라는 것이 실감 났다. 혀가 바짝 말라 거칠거칠했다.


한편, 아까부터 책상 아래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여자가 있다. 옆머리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경준은 분명 아이팟이 왼쪽 귀에 꽂혀있는 것을 봤다. 명백한 무시의 신호.


쪽팔림인지, 반발심인지 모를 것이 경준의 심장을 두드렸다.


“시작에 앞서 양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경준은 연수실 뒤편에 걸린 현수막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기도 도대체 무슨 용기로 몸이 움직이는지 알 수 없는 힘찬 동작이었다.


찌이익 찍. 경준은 힘주어 테이프를 뜯어냈다. 뜯긴 테이프 아래로 ‘강사: 전 강원도 교육청 장학관 송무룡’이라는 글자가 구겨진 채 드러났다.


“저는 송무룡 씨의 땜빵 강사로 투입된 도경준이라고 합니다. 송무룡 씨가 누군인지 사실 저도 모릅니다. 교육감 선거에서 참모 역할을 충실히 하여 도교육청으로 차출된 분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순간 예비군이 움찔했다. 경준은 준비해 온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띄웠다.


“혹시 반면교사라는 사자성어를 아시나요?”


샤넬백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 이외는 묵묵부답. 좌중을 스윽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경준은 실내 공기가 차갑게 식는 감각을 느꼈다. 갓 발령 받은 신규 직업 교사도 학습자 신분이 되면 연수장에서 말을 아낀다. 샤넬백은 컨설팅 수업의 고마운 반장 캐릭터였다. 경준은 컨설팅 장의 에이스를 놓칠 수 없었다. 샤넬백을 향해 몸을 틀었다.


“네,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산지석은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과 실패를 보고 나의 배움으로 삼는다는 뜻이죠.”


잠시 뜸을 들이던 경준이 이어 말했다.


“오늘 컨설팅도 그렇습니다. 저는 승진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아니, 승진은 죽어도 하기 싫은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반대로만 하시면 승진에 가까워지시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수생 사이에서 동요가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고 했던가, 경준에게는 죽어있는 연수장보다 귀찮아도 시끄러운 연수장이 편했다. 초등교사는 교실 수업이 적막하면 기분이 이상해지는 법이다. 어린이 소음에 익숙한 경준은 드디어 몸이 안정을 찾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더 동요하길 바랐다.


자신의 연수 방식에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경준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저는 노동자로서의 교사라는 직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승진하지 않기 위해 지키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른바 3 무無, 승진라인 인맥 관리 없음, 부진아 제로 무결점 학습지도 지향 없음, 과도하게 적극적인 생활지도 없음.


“저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월급 받기 위해 학교 다니는 것 맞고요, 대신 수업 준비는 매일 합니다. 밥값은 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스무 명 넘는 아이가 백 퍼센트 학습 부진 없는 반, 이런 목표는 세우지 않아요.”


아이팟이 슬그머니 옆머리 사이로 하얀 물체를 귀에서 빼냈다.


“리얼하게 말해서, 부진아 비율은 학군이 결정합니다. 어차피 교과 부진 학생은 전년도 반 편성할 때 담임 쌤들이 다 쪼개서 배치하거든요. 한 사람에게만 몰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거죠. 결국 힘든 아이를 피할 수 없는 거라고요. 그런데 6학년 담임하는 동안, 지난 5년 치 부진을 모두 만회한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과 별개로 안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봐요. 그래도 부진아 지도를 하기는 해야죠. 그게 의무고 내 할 일이니까.”


경준은 퇴근하면 집에서 쉰다고 말했다. 연구회라 이름붙이고 반쯤은 친목에 가까운 모임도 일절 나가지 않고, 선생님들 간 여행 계모임도 없다. 교육청 누구누구 연구사, 장학사 라인 탄다고 호들갑 떨지 않으며 매일 푹 잔다고 말했다. 자기 전에 넷플릭스 좀 보다가.


“저는 딱 여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이에요. 오버해서 병나기 싫어요. 연수도 현장 연수 이런 거 말고, 온라인으로 미술사 같은 주제로 가볍게 들어요. 방학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쉴 수 있게 세팅해요. 방학 중 영어 캠프, 스포츠 캠프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면 강사비 줄 때만 나가고요.”


어쩌다 보니 신규교사 컨설팅은 도경준의 브이로그 비슷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연수생들도 강의 형태를 별로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기분으로 다들 느슨하게 들었다.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예비군이 불쑥 손을 들었다.


“남교사가 나이 들어서 평교사 하면 학부모가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승진 안 하면 빨리 명퇴해야 합니까?”

경준은 진지함으로 불타오르는 예비군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몰라요. 체력 딸려서 그만두는 사람이 있겠죠. 파이어족이라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승진 준비한다고 과로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금쪽이 학부모한테 고소당해서 자살하는 사람도 존재하고요.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부분 아닐까요. 평교사 할만하면 하고, 그만둬야겠다 싶으면 슬슬 대비하겠죠.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인생은 알 수 없다, 승진을 원하는 사람이 마침내 승진에 성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가. 진짜로 행복에 겨울 수도, 스트레스에 절어 비틀거릴 수도 있다. 반면 평생 평교사로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나이 오십 넘어서 기력이 달려서 별안간 아이들이 미워질 수도 있다. 교사 인생의 주사위는 랜덤이 기본 모드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하고 말하려다 경준은 입을 다물었다. 일반론은 말하나 마나니까.


샤넬백은 습관처럼 고개를 까딱였고, 아이팟은 폰에 뭔가를 입력하는 것처럼 보였고, 예비군은 갈림길에서 주저앉은 사냥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는 선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을 때까지 출퇴근을 감수할 만한 거리의 학교에서 조용히 살 거예요. 가산점 따위는 까맣게 잊고요. 이렇게 살면 적어도 승진에서는 완전히 멀어질 수 있습니다. 아주 멋진 인생이죠.”


*


컨설팅 종료 후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경준의 통장에 강의비 30만 원이 꽂혔다. 그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났지만, 별도의 컴플레인은 없었다. 진동표 장학사도 조용했다.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그냥 교육청 행사 하나가 무관심 속에 끝난 것이다.


경준은 강의비 30만 원으로 춘천 레고랜드 내 호텔을 예약했다. 돈은 가족에게 쓰는 것이 최고다, 이것이 요사이 경준의 소비 기준이었다.


영어 전담 시간이 되어 짬이 난 경준은 인디스쿨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충청도에서 또 어떤 선생님이 세상을 저버렸다. 저경력 교사도 아니고 이십 년이나 애들을 가르친 사람이었다. 올해는 마가 끼었는지 서울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팔도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가 핫 게시글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승진해서 관리자가 된 양반들은 어느 한 놈 책임지는 케이스가 없었다. 가정통신문으로 변명하기 바쁘고, 담임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혈안이었다. 비겁한 새끼들.


승진은 자살방조자가 되는 길이라고, 컨설팅 자리에서 말해줬어야 했나. 아니다, 과격한 개인 의견은 피력하지 않는 편이 신상에 이로웠다.


‘아, 몰라. 몇 년 이 바닥에서 구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말로는 안 돼.’


그래도 승진을 포기하려면 교실 생존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그 말은 꼭 해줬어야 했는데…… 경준은 잠깐 후회했다.


삐비빅!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시계를 슬쩍 본 경준은 칼퇴근을 하기 위해 오 분 먼저 교실 창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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