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화는 소이의 전학 계획을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송정자 교장이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말이다.
“소이 어머님, 제발 내년 3월까지만 학교에 남아 주시면 안 될까요. 소이 3남매가 빠지면 해전 초등학교는 끝입니다. 제가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흑흑흑, 올해 예순이 된 교장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치마에 닿았다. 친정엄마 뻘 되는 교장이 갑자기 무릎을 꿇는 바람에 몸둘 바를 모르게 된 국화는 황급히 테이블의 티슈를 뽑아 교장에게 건넸다.
“우리 소이가 후배들을 잘 챙겨서 하급생들도 정말 따랐고요, 산우 산이 두 동생도 우리 학교의 분위기 메이커잖아요. 아시죠?”
끄윽, 말을 채 잇지 못한 교장이 눈가를 닦았다. 이국화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교장의 검은 마스카라가 번져 에버랜드의 명물 판다 푸바오가 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진지한 순간에 판다 변장은 정말 곤란하다.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눈이 마주쳤다가는 푸흡! 하고 침을 사방으로 튀길 것 같았다. 이국화는 딸꾹질을 참듯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행히 긴 앞머리가 얼굴을 가려주어 교장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때 콧물로 범벅이 되어 투명하게 빛나는 송 교장의 오른손이 국화의 왼손 위에 포개졌다. 끈적끈적한 감촉이 신경을 타고 흘렀다. 국화는 찌그러진 눈썹 모양을 감추기 위해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국화가 고개를 숙이는 각도에 비례해 교장의 얼굴은 밝아졌다.
“어머님께서 학교의 고통을 이해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년 3월까지 해전 초등학교를 분교 추락의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
송 교장이 국화의 어깨를 양 팔로 끌어당겼다. 푸바오의 위기에서 웃지 않기 위해 겨우 자신을 진정시키고 있던 국화는 눈을 꼭 감고 교장을 안았다. 그것 말고는 대폭소라는 참사를 피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애들 전학을 즉흥적으로 미루면 어떻게?”
“말도 마. 교장이 무릎 꿇고, 읍소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왜 우리 애들이 남아서 손해를 봐야 하는 거냐고. 해전초가 분교가 되든 말든 그건 그쪽 사정이지. 언제 평북초로 넘어갈 줄 알고.”
“아이고, 그럼 당신이 가서 해결하든지.”
쾅, 국화는 문이 부서져라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길승은 아내의 적반하장식 몰아붙이기에 질려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정길승은 평북초에 3남매 전학 대기를 걸어 놓았다. 어제 부부끼리 역할 분담을 했지 않았는가.
국화는 해전초에 가서 “그간 감사했습니다” 마무리 인사를 드리고, 길승은 새 학교에 가서 전입 수속을 밟는 것이다. 그러나 두 쪽 모두 어긋나고 말았다. 국화는 굿바이 선언에 실패했고, 길승은 전입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평북초에 빈자리가 없을 줄이야. 상상도 못한 전개였다. 산양군 시내의 산양초도 오백 명 넘는 아이들이 잘만 다닌다. 그런데 평북초는 육십 명을 정원으로 두고 있었다. 그 이상 학생을 받으면 평북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대기 인원이 네 명이나 있다는 말에 길승은 군말 없이 대기 리스트에 세 자녀 이름을 올려놓고 왔다. 평북초 교무부장이 말하길, 경기도에서 전학 온 두 가족이 직장 문제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듯하니 두어 달만 기다려 보라는 것이다. 자유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열이 뻗쳤지만, 길승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평북초는 그렇다 치고, 해전초도 너무했다. 학부모를 구워삶아 3월까지 시간을 끌다니, 이건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범이나 하는 짓 아닌가.
‘만약 중간에 평북초 입학 허가가 나면 무조건 해전초를 떠날 것이다. 이건 불평등 계약이니까.’
소이 엄마가 여려서 푸바오의 계략에 넘어가고 말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침몰하는 타이타닉에 오래 머물러 봐야 차오르는 것은 물이요, 잃는 것은 탈출할 기회뿐이다.
그렇게 혼잣말을 해보아도 길승의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 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미우나 고우나 해전초는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었으니까.
소이가 입학할 무렵만 해도 해전초에는 한 반에 여섯 명이 있었다. 여자 셋, 남자 셋. 나쁘지 않았다. 병설 유치원에서부터 같이 올라온 사이였고, 부모들과도 교류하며 지냈다. 시골 사람들 텃세가 심하다고들 하지만, 해전리 사람들은 무난했다. 이렇다 할 갈등 없이 운동회 날 부모가 못 오는 애가 있으면 도시락도 하나 더 싸주며 살았다.
정길승은 자녀들도 자신과 같은 학교를 졸업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한 반에 스무 명씩 되던 시절과는 다르지만 해전초는 꽤 괜찮은 환경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봉사 차원에서 관리하는 천연잔디 운동장, 학교를 병풍처럼 둘러싼 아름드리 소나무숲 그리고 뒷문을 나서면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
미세먼지 마시며 과밀 학급에 시달리는 수도권 신도시 학교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지금도 기본적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한 교실에 여섯 명뿐이라 해도 교우 관계만 괜찮으면 오순도순 즐겁게 지낼 수 있다. 학교 캠프에서 잠도 자고, 수학여행 다니다 보면 형제보다 끈끈한 사이가 될 것이다.
길승의 꿈은 소이가 3학년 여름방학 무렵까지만 유효했다.
*
“정운이네 송별식 해야지? 학교 옆에 다다치킨에서 치맥 어때?”
“어, 그래……. 그거 좋지.”
도효운이 뜸을 들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러나 길승은 양념과 후라이드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만 고민했을 뿐, 도효운이 아들을 냉큼 성북초로 전입시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회자정리라고 하지요. 모인 사람은 헤어지기 마련이니…….”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건배사가 도효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운이네가 떠나는 것이 그렇게나 슬픈가, 사람들이 의외라고 생각하던 사이 도효운이 대뜸 말했다.
“참 미안합니다.”
그간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건가, 어리둥절함과 감동이 술김에 뒤섞에 어지럽게 술잔이 오갔다.
미안함의 진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정운이가 전학 가던 날, 소이네 교실에는 네 명만 남아있었다.
원래는 다섯 명이었어야 했으나 효운의 아들은 평북초 3학년 1반 교실에 앉아 있었다. 전학생 신분으로.
“걔가 정운이랑만 놀았거든. 아빠도 알잖아. 인수는 혼자 노는 거.”
소이는 벌써 알고 있었다고 했다. 정운이가 전학 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도효운의 아들이 눈물 바람이었다나.
반에 남학생이 셋 있어도 극내성적 성향을 보이는 인수는 어차피 혼자 놀았고, 나머지 둘이 짝꿍으로 지냈다.
정운이가 전학을 가면 도효운의 아들은 해전초에 남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이는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소이는 네 명이어도 괜찮아?”
“응, 인수는 남자인데 여자애 같아서 상관 없어.”
“애들하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잘 지내.”
속으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매년 출산율 저하, 지방 소멸이라는 뉴스가 포털의 메인을 장식한다. 대한민국의 멸망은 기정사실이다. 해전초도 그 증거 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지만 불완전한 홀수보다는 짝수가 낫다는 기묘한 합리화가 길승을 진정시켜 주었다. 소이를 비롯해 남은 네 명이 정답게 지내면 된다.
3학년이 끝날 무렵, 인수가 홀연히 동네에서 자취를 감췄다. 인수 엄마가 원체 과묵한 사람이라 평소에도 존재감이 없었지만, 떠날 때도 바람 같았다. 나중에 담임에게 들으니 전출지가 울릉도로 되어 있었다고 했다. 국화와 길승은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존재감 없는 남자애 하나다.
‘여학생끼리 지내면 자매 같고 좋지 뭐. 아직 동생들도 함께 학교 다니니까 괜찮아.’
그러다 4학년 여름방학에 여학생 삼인방 중 한 아이가 할머니 댁이 있는 영덕 강구로 가버렸다. 아버지가 원래 배를 타던 사람이라 강구에 가서도 배를 탄다고 했다. 아이는 이삿짐 트럭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보조 의자에 집게를 오므린 대게처럼 앉아 손을 흔들었다.
효임이와 소이, 교실에는 단 둘이 남았다. 두 명이서는 한 학급을 만들 수 없었기에, 5학년은 3학년과 합쳐져 복식 학급이 되었다. 소이는 동생 산우와 같은 반을 썼다.
복식이라도 좋으니 소이는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국화는 송정자 교장에게 전학 계획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소이의 마지막 남은 친구 효임이가 지난 주말 산양군 시내에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고 했다. 소이는 효임이가 준 선물과 편지를 받고서 울고 말았다. 국화도 소이를 안고 같이 엉엉 울었다.
*
송정자 교장은 시커먼 마스카라 자국을 닦으며 손이 덜덜 떨렸다. 이국화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보다 소이네가 같은 학구 내에 있는 평북초를 선택했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효임이 경우처럼 차라리 산양군 시내로 가버리면 이사 핑계라도 댈 수 있다.
지난 삼 년간 해전초에서 평북초로 넘어간 인원만 아홉 명이다. 전교생 서른 명이 될까 말까 한 학교에서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학생이 전학을 선택한 것이다. 심지어 등교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
“교무부장, 지금 수업 비죠? 잠시 교장실로 와 주세요.”
“학운위 자료 준비 중인데 급한 일인가요?”
“네, 학교운영위원회보다 백 배는 중요한 일이니까 바로 와요.”
“그럼 하던 것만 마저…….”
교무부장 하정성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딸깍하고 연결이 끊겼기 때문이다. 심하게 갈라진 교장의 목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지금 당장 튀어 와!
만일 그 히스테리를 거부하고 뻗대다가는 어떤 저주가 떨어질지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습관대로 하정성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머리 밖으로 잡생각과 불쾌함을 털어내려는 무의식의 발로였다.
똑똑똑, 반응이 없자 하정성은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올 블랙으로 몸을 뒤덮은 교장이 화장기 하나 없는 쌩얼로 사나운 눈길을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흡사 억울한 죽음을 당해 원한을 품은 자의 아내가 장례식장에서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 같았다.
“하 선생. 은밀히 내릴 업무 명령이 있어요.”
꿀꺽, 하정성은 침을 삼켰다. 교장의 목소리는 예리하다 못해 살기를 띠고 있었다.
“평북초 교무가 자기하고 동기지?”
“네……. 맞아요. 아란이.”
“박아란 선생하고 따로 만나서 평북초의 모든 음모를 밝혀내요. 학생을 어떤 식으로 유인해서 꼬드기는지, 학교에서 어떤 특별 정신 활동 같은 걸로 세뇌 교육을 하는지 같은 걸 말이예요.”
“음모요? 뒤에서 나쁜 조작 하는 그 음모 맞으시죠?”
“내 말 못 들었나요? 음모요. 음모! 어제 정소이 학생 어머니가 와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소이, 산우, 산이
삼 남매 셋 다 평북초로 전학시키겠답니다. 5학년이 통째로 사라지게 생겼다고요. 으이씨.”
송정자의 목소리는 울먹이는듯 울부짓는듯 기괴하게 기괴하게 일그러져있었다.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소이네 삼 남매가 전학 가는 것은 큰 문제였다.
한 학년이 사라지면 교사 티오가 줄어 해전초 교사 중 몇 사람은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에 육 학년 아홉 명이 졸업하면 해전초에는 고작 18명이 남는다. 유치원에서 1학년으로 입학하는 아이 두 명을 합해도 그렇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평북초에서 무슨 작전을 벌여서 해전초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당연하지. 평북면 시골에 학교가 두 개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거라구요. 그래서 우리 해전초를 공격해서 이참에 학생수를 다 팍 줄여 분교화 시킨 다음 문 닫게 하려는 수작이라고! 교무부장 눈에는 그게 안 보여?”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성적인 답변을 했다가는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었기에 하정성은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때 갑자기 생각난 듯이 송정자 교장이 하정성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하 부장, 반드시 사석에서 물어봐야 합니다. 교장의 지시라든가, 학교 통폐합 같은 단어는 결코 나와서는 안 됩니다. 이건 전쟁이라고. 전학 전쟁.”
꿀꺽, 교무부장은 교장실에 와서 두 번째 침을 크게 삼켰다.
*
“참나, 무슨 학교에 교육 정원이 있어. 코딱지만 한 시골에서.”
“평북초가 수도권에서도 농촌 유학으로 유명하다잖아. 우리 애들도 처음부터 평북초 넣을걸. 어차피 에듀버스 다니는데.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얼씨구, 걸어 다닐 수 있어서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건 자기가 모교에 아이들 보내야 한다고 하도 성화니까 맞춰준 거지.”
이국화가 길승의 등짝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그때는 해전초가 이렇게 빨리 망할지 몰랐지. 다른 학부모들도 별말 없었고.”
억울한 표정이 길승의 얼굴을 가득 채웠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평북초 입학하면 70만 원씩 다 주네요. 우리 애들도 전학 가면 돈 받을걸?”
“분명히 말하지만 돈 때문에 전학시키는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라고. 기왕 미뤄진 거, 당신도 학교에 가서 당당히 요구해. 소이가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특단의 학교 부활 대책을 세워달라고.”
“어쨌든 난 못 가. 교장쌤 푸바오 닮았단 말이야. 웃겨서 말 못 해. 계속 생각날 것 같아. 애들 아빠 자격으로 자기가 가. 그래! 술 먹고 가면 되겠네. 술 먹으면 개 돼서 진상 짓 잘하잖아.”
“어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학교에 항의하고 싶으면 우리 애 아빠가 많이 화났어요, 이런 식으로 하면 잘 통한대. 엄마가 나서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걸? 자기가 가서 남자답게 해 봐.”
솔깃, 길승의 양 귀 끝이 살짝 움직였다. 이성에 앞서는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직장 생활하면서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항상 쭈글쭈글 맞춰주며 비굴하게 살아왔다. 이제야 남자의 기상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소이가 전학을 가게 된 것도 학교 측의 책임이 크다.
학교가 운영을 잘했으면 학생 수가 줄어드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학교를 옮겨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사고가 미치자 갑자기 학교를 박살 내고 싶다는 열망이 심장 아래에서부터 타올랐다. 주식회사는 망하면 주주들이 책임을 지지만 학교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멀쩡히 동문회가 있고, 매년 하계 동계 동문의 밤이 열려도 학교는 냉정히 문을 닫을 수 있다. 선생과 행정실 직원은 떠돌이 직장인들이라 폐교가 된다고 해서 심리적 타격이나 금전적 손해를 입지 않는다. 결국 피해는 동네 주민과 동문이 입는 것이다.
길승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평북초 입학 허가가 언제 날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모교의 위기를 초래한 현재의 운영진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질적인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
하정성이 박아란과 사석에서 만난 것은 3년 만이었다. 중국 요릿집 테이블에 앉은 아란은 약간 들떠 보였다.
“오늘은 웬일로 시간이 났네?”
“애들 아빠한테 저녁 맡겨 놓고 나왔지. 맨날 남편만 밖으로 나돌아서 은근히 짜증 났는데, 나도 좀 콧바람 쐐야지.”
아란은 웨이터를 불러 크림 새우 작은 것과 간짜장 하나, 짬뽕밥 하나를 시켰다.
“메신저로는 곤란하다는 긴급하고, 중요하다는 얘기가 뭔데?”
단무지를 우적우적 씹으며 아란이 운을 띄웠다. 정성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를 내었다.
“너희 학교 어떠냐? 자리 비어?”
“내년에 넘어오려고? 오지 마. 절대 오지 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란은 손을 내저었다.
“해전초 좋잖아. 애들도 별로 없고, 학부모도 안 드세고. 그냥 만기까지 죽치고 있어.”
“평북 좋다고 소문난 데 아니야? 뉴스에도 막 나오고. 기사 검색도 엄청 많이 되던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어, 공무원은 말이야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호봉 쌓는 게 최고야. 월급 똑같은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해. 우리 학교 쌤들 교장이 벌이는 사업 뒤치다꺼리하느라 죽겠다.”
“평북초가 지금 계시는 오동국 교장 모교라고 했지?”
아휴 말도 마,로 시작한 교장 디스 타임은 김을 폴폴 날리며 등장한 크림새우가 차갑게 굳어가는 시점까지 계속 되었다.
“정년 2년 남은 양반이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회의 때마다 선생님들의 열정과 헌신 타령이야. 정말 미치겠다니까.”
원래는 고향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수요자 중심의 평북 교육’이 평북초의 모토였다고 한다. 소인수 학급의 특징을 살려 매일의 교육 활동 사진을 학교 카페에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오 교장이 평북초에 부임했을 무렵에는 전교생이 스무 명밖에 되지 않았다. 2,4학년 복식 학급에 다른 반도 학생이 서넛뿐이었다.
담임 선생님들이 어린이집에서 하듯 줄넘기 이단 뛰기하고, 쉬는 시간에 화분 물주는 장면을 아이 한 명 한 명 찍어 학교 카페에 공유했다. 당연히 의무는 아니었지만, 그 해 학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서 다들 교장 뜻에 협조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한다.
평북의 유치원식 밀착 케어가 소문이 났는지 산양군 시내에서 부적응 학생들이 하나둘 전학 오기 시작했다. 대안학교는 아니지만, 대안학교 같은 공립학교랄까.
“근데 전학생들 상태가 영 아니었어. 부모들도 좀 이상하고. 뭔가 쌔했지.”
아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도시 큰 학교에서 힘든 애들이 올 테니까…….”
“맞아. 사실 공부는 못 해도 상관없었어. 하지만 부모들 마인드가 별로였어. 우리 학교를 마치 강남의 사설 홈스쿨링 기관으로 여기더라니까.”
가정에서의 양육 부재를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린다든가, 예전 학교에 있을 때 주변 애들이 우리 애만 왕따시켰다는 식으로 말한다든가, 대한민국 공교육의 수준이 낮아 훌륭한 자질을 가진 본인의 자녀를 꽃 피워주지 못한다는 식이었다.
열등감과 방어심리의 대환장 콜라보레이션. 그럴 땐 말 없이 웃어주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편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아란은 몹시 피곤했다고 고백했다.
“교장은 아주 신났지. 고향 사람들 앞에서 자랑도 하고. 내가 와서 모교를 살렸다! 뭐 이런 거?”
정성은 포털 뉴스에 끝없이 등장하는 평북초 소식을 떠올렸다. 모교를 살렸다는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닐 것이다.
“하긴, 너희 학교 애들 나무에 집도 짓고, 바닷가까지 자전거도 타고 하긴 많이 하더라. 교육청 모범 사례로 뽑히지 않았어?”
“교장이 집 짓니? 각 반 애들 자전거 인솔은 누가 하는데? 교육과정에도 없는 걸 자꾸 만드니까 담임들이 죽어난다고. 빌어먹을 카페 사진도 매일 찍어 올려야 하고.”
휴우, 한껏 응축된 한숨이 간짜장 소스보다 눅진하게 테이블 위를 덮었다.
“진짜 대박은 재작년에 교장이 동문 체육대회 다녀와서 시작됐잖아.”
체육대회? 정성은 평북초 교장의 업적 쌓기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글쎄, 소싯적에 교장이랑 같이 소 풀 먹이고 쥐불놀이 깡통 돌리던 동네 형이 있었나 봐. 머리는 별론데, 통이 커서 사업체 몇 개를 돌렸대. 그러다 비료 사업이 막 엄청나게 성공한 거야.”
평북 비료, 정성도 농사짓는 아버지께 건너 들은 적 있는 중견 기업이었다. 그 평북이 진짜로 그 평북이었을 줄이야.
“교장이랑 왕년의 소치기 둘이서 죽이 잘 맞았는지 매년 학교 발전 기금으로 3000만 원씩 들어오잖아. 연말에 꼬박꼬박.”
정성은 반년 치 세후 월급에 해당하는 발전기금 액수를 들으며 저절로 눈이 커졌다.
“그 돈으로 매년 전교생 대상으로 10만 원씩 장학금 돌려. 입학하거나 전학 오면 70만 원, 졸업할 때도 100만 원 주고. 그러고도 돈이 남는다니까. 돈이 짱이야.”
숨겨진 진실. 정성은 왜 최근 평북초가 학생 몰이를 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까 놓고 말해서, 해안가 시골 학교들 교육 프로그램이야 대동소이하지 않은가. 방과후 무료에 우유 공짜, 빠방한 코스의 수학여행, 서핑 수업. 이미 강원도 시골학교의 특성화 프로그램은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고 봐도 좋다.
수도권과 달리 인구 감소가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지방은 이십 년 전부터 작은학교 살리기에 골몰했다. 그럼에도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과 교육여건 미비로 인해 주민이 빠져나갔다. 시골학교가 문을 닫는 것은 학교의 문제라기 보다 시골의 문제에 가까웠다.
하정성은 강원도의 30명 이하 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중환자실의 연명치료나 다름없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평북초는 주민들에게 뇌물을 뿌린 것이다. 입학하면서 70만 원, 2학년부터 5학년까지 매년 10만 원씩 해서 40만 원, 대망의 6학년 졸업은 100만 원. 도합 210만원의 현찰이 아이 한 명당 지급된다. 소이네처럼 아이가 세 명인 집은 630만 원의 꽁돈이 생기는 것이다. 똑같은 공교육 받으면서 말이다.
해전초 앞에서 평북초 스쿨 버스를 타는 아이들이 제법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평북의 영광은 주변의 얼마 남지 않은 인원을 파이 뺏어 먹듯 가져간 것에 불과하다. 평북면의 전체 인구는 전혀 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재미있는 학교처럼 보여서 가볼까 했는데, 모르고 갔으면 된통 당했겠네.”
“나도 우리 애들만 같이 평북에 안 다녔으면 진즉 옮겼을 거야.”
언제 시켰는지 연태 고량주를 연거푸 들이키는 아란을 보며 정성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학교 욕을 그렇게 하면서 자기 애들은 평북 비료 돈 받으며 잘도 키우는구나.
*
【점심 먹은 후에 평북초 교무랑 면담한 내용 보고 하세요.】
오전 아홉 시 정각에 도착한 교장의 메신저 쪽지에 하정성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심지어 어제 작성한 예약 메시지였다. 안 그래도 어제 끝까지 달리다 죽자는 아란에게 맞춰주느라 정성은 한 시 넘어 잠들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하정성은 빨리 대충 보고하고 해치워 버릴 요량으로 교장실을 찾았으나 전등이 꺼져 있었다. 나이스에서 일일근무상황을 확인하고서야 교장이 1시까지 해전초 동문회 관련 출장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1, 2, 3, 4교시 연달아 실과 전담 수업을 하고 나니 정성의 몸에서는 모든 기력이 달아나버렸다. 바람 빠진 주유소 호객 인형처럼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급식은 건너뛰었다. 도저히 수저를 들 만한 컨디션이 아니었다. 연구실 캐비닛에서 두유와 견과류를 꺼냈다. 신라면 작은 컵이 보여서 먹을까 했지만, 기름에 튀긴 면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을 감고 호두와 아몬드를 두유와 함께 천천히 씹었다. 고소한 기름기가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두 번째 견과류 뭉치를 입에 넣으려는데, 굵고 폭력적인 엔진음이 들렸다.
부르릉 쿠릉.
해전초에 대형 디젤 엔진 차량을 모는 교직원은 없다.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쩐지 정숙한 차량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항시 소음과 민원에 시달리는 탓일지도 모른다.
불안한 배기음은 곧 사라졌다. 그러나 배기음은 사악한 망령처럼 곧 정성을 덮쳐올 것만 같았다. 하정성은 술이 덜 깨서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일 거라며 자신을 달랬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잠시 뒤, 연구실 문이 벌컥 열렸다. 놀란 사슴 눈을 한 교무행정사였다.
“교무부장님, 교무실로 급히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산우 아버님이 오셨는데.”
“산우 아버님? 소이 아빠?”
행운은 기대만큼 찾아오는 법이 없고, 불안은 예측의 범위를 빗나가는 법이 없다. 붉은 악마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소이 아빠가 교장실 문손잡이를 거칠게 돌려대고 있었다. 디지털 키라 힘으로 열리지도 않는데.
“산우 아버님 안녕하세요? 교무부장 하정성입니다.”
“교장 어디 갔어? 응? 당신 말고 교장 말이야.”
끔찍한 입냄새에 정성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고 말았다. 학부모를 상대할 때는 좀처럼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 베테랑 교사지만 한 단어 한 단어가 알코올에 절어 있는 정길승 앞에서는 역겨움을 숨길 수 없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1시까지 출장이 잡혀 있으십니다. 용건 남겨 주시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냐아냐. 1시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그 사람 보고 갈 거야. 모교를 망쳤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책임을.”
딸꾹! 길승의 술주정에는 비릿한 생선 냄새가 담겨있었다. 점심에 생선을 안주로 해서 거나하게 마신 것 같았다.
“교무실에 오셔서 차라도 하시죠.”
구시렁구시렁 알아듣기 힘든 말로 위협 같은 대답을 하던 길승은 별안간 교장실 문에 머리를 쾅쾅 박았다.
“차는 무슨 놈의 차.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 테니까 교장 오면 나 부르쇼.”
길승은 침을 퉤 뱉고 실외화 차림으로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해전초가 좋기는 뭐가 좋아 여긴 미쳤어, 정성은 어제 아란이 하던 말이 생각나 짜증이 폭발했다.
귀여운 소이 삼 남매와 달리 소이 아빠는 썩은 송이버섯이나 다름없었다. 순도 100% 블랙리스트 대상자다. 당장이라도 교권 보호 전문 민사 변호사를 물색해 보고 싶어졌다.
그때, 복도 창문 너머로 교장의 차가 보였다. 교장 전용 주차 칸에 멈춰 선 쥐색 G80.성난 발걸음으로 복도에 등장한 교장은 딱 보기에도 상태가 안 좋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가가 시뻘겋고 마스카라가 온통 번져 있었다. 지옥에서 귀환한 판다가 있다면 저런 느낌일까.
교장이 다짜고짜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짠돌이, 소갈딱지 밴댕이 새끼들. 동문 체육대회 때 얼굴 안 비췄다고 애들 장학금도 한 푼 못 내놓겠답니다. 분명히 관외 출장 있다고 알려줬는데도 그 지랄이야!”
“저, 교장 선생님, 지금 소이 학부모님이 오셨어요.”
“뭐? 소이 엄마? 지금 어디 있어요?”
“어머님이 아니라 아버님이세요.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데, 술을 많이 마셨는지 매우 흥분한 상태인 것 같았어요.”
“아니, 소이 엄마랑 얘기 다 끝났는데 왜 찾아와. 흥분할 게 뭐가 있다고.”
“아까는 욕도 하고, 침도 뱉고 좀 이상한 사람 같았어요. 폐교 이야기도 꺼내고.”
“참 나.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어. 전학 갈 거면 가라고 해. 우린 평북처럼 줄 돈도 없고, 동문도 죄다 거지뿐이니까. 썩 꺼지라고 해. ”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신데 그래도 만나보셔야…….”
“행패 부리는 학부모는 학부모 대접도 해주지 말아야 해. 오냐오냐 하니까 버릇이 아주 잘못 들었다니까. 교장실 오면 경찰 부를 거야.”
교장은 발전기금 모금에 실패한 것 같았다. 동문회가 해전초의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마저도 물 건너갔다.
교장은 디지털 키를 열고서는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안에 들어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눈앞에서 문이 닫힌 하정성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디지털 키의 단조로운 효과음 만이 복도에 남았다. 띠리리, 그 소리가 정성의 텅 빈 위장을 찔렀다.
우웩, 먹은 것도 없는데 헛구역질이 나왔다. 입 안에 신맛이 고였다. 당분간 위염을 달고 살 것 같은 조짐이 든다. 교사에게 성대결절, 우울증, 위염은 직장 생활의 필요조건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우울과 위염이 동시에 올 것 같았다. 정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낮술 마신 돌아이 학부모를 무슨 수로 곱게 돌려보낸단 말인가. 교장들은 절대로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제 성질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내뱉고, 수습은 아랫사람이 한다. 교장 본인에게 사안이 닥치면 병가를 내고 병원에 누워버린다. 어떻게든 자신의 명예와 연금을 챙기는 것이다. 그 정도 뻔뻔함과 요령이 없으면 교장까지 오르지 못하는 걸까.
그나저나 소이 아빠는 어떻게 달래야 할까. 왜 하필 나는 이 시점에 해전초의 교무부장인 걸까. 정성은 뒤뜰로 향하는 유리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쭈그려 앉은 정길승이 전화기에 대고 욕지거리를 하며 가래침을 찍 뱉었다. 그의 발치에 누렇게 변색 된 꽁초 세 개가 나뒹굴었다.
‘아무래도 못 하겠어. 집으로 가라고 했다고 뺨이라도 맞으면 어떡해.’
‘아니야, 차라리 얻어 맞고 병가 쓸까?’
‘그래도 맞는 건 싫어. 트라우마 남을 거 같아. 교장샘한테 빌어서 대신 말해달라고 사정해 보자. 그래도 학교의 제일 큰 어른이잖아. 나는 일개 교사라고.’
교장실로 발걸음을 돌린 정성은 심호흡을 하며 걸었다. 문 앞에서 오른손으로 노크 자세를 만들어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으어어엉! 으아아아앙!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 듯한 울부짖음이 교장실 문 아래 틈을 타고 흘러나왔다. 조울과 히스테리가 섞여 교장의 정신을 파괴하는 중이었다.
지옥에서 귀환한 것 같았던 판다는 악귀 씐 판다로 진화해 있었다. 소이 아빠한테 가면 뺨을 맞겠지만 교장실에 들어가면 머리칼을 다 뽑힐지도 모른다. 정성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차마 노크할 수 없었다.
다시 뒤뜰로 발끝을 향하던 정성의 시야에 양팔 소매를 걷어붙이는 정길승의 거대한 덩치가 들어왔다. 저 팔에 뺨을 맞으면 분명 고막이 터지겠지.
해전초 교무부장 하정성은 교장실과 뒤뜰 사이를 무한 반복하며 언제쯤 교직을 그만두는 것이 옳은가, 가늠하며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