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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Oct 19. 2023

숲에게 돌려주는 인사

제23회 산림문화작품 공모전 일반부 장려

대학에 가기 전, 나는 작지만 정겨운 정원이 딸린 주택에서 나고 자랐다. 그 오래된 집은 우리 아버지가 태어난 집이기도 했다. 결코 쾌적한 주거환경을 자랑하는 동네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담장 안에서 정원의 로즈마리가 풍기는 달콤한 냄새를 맡고 있으면 삶이 꽤 안전하게 느껴졌다. 


집 뒤편으로는 아담한 대나무밭이 펼쳐지고,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는 동산이 있었다. 놀이터가 없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아이들이 놀 만한 장소였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오면 솔향이 집에 내려앉았다. 거실에 누워 낮잠을 자다가도 문득 소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 냄새는 내가 지금 나무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 


굵고 거대한 줄기,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가지, 향수 같은 내음을 풍기는 푸른 잎. 나는 이상하게도 나무가 사람 같다는 감각을 어릴 적부터 지니고 있었다. 과학 수업 시간에 배워서 아는 식물이라는 범주와 별개로 나무는 어른처럼 여겨졌다. 말이 없되, 듬직하고 강인한 어른들. 나무 어른들은 동네 술집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행패를 부리는 아저씨보다 훨씬 멋있었다. 


훌륭한 사람은 드물지만, 훌륭하지 않은 나무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아버지가 유년기를 보낸 소나무 동산에서 자주 놀았다. 당시에는 풀 내음이 나는 동산이 얼마나 귀중한 곳인지 잘 몰랐다. 


소중한 것은 곁에 있을 때 잘 모른다. 그러다 그것이 부재한 상황이 닥치면 비로소 소중한 존재의 무게감을 절감하게 된다. 나의 대학교 1학년 주거지는 반지하였다. 벽지에는 곰팡이가 슬고, 눅눅한 습기가 언제나 방을 잠식하고 있었다. 반쯤 지상을 향해 난 창으로는 칙칙한 시멘트 바닥이 보였다. 백목련, 자목련 나무가 쌍둥이처럼 자라는 집에서 살다가 마른 시멘트 먼지가 넘어오는 반지하에 물건처럼 앉아있으니 현실 같지 않았다. 


우울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이 검게 물들어 가는 불쾌한 감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자다가도 진득한 땀을 흘리며 일어나고는 했다.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는 반지하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차가 없던 나는 자주 걸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호숫가 공원이 나왔다. 깨끗한 바람이 불고, 하늘로 쭉 뻗은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선 곳. 나는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고 있으면 비로소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비록 비참한 반지하에 살지만, 숨 돌릴 숲이 있으면 본연의 편안함 속에 머물 수 있었다. 


숲은 삶의 힌트였다. 숲만 있다면, 나무만 곁에 있다면 나는 어디에서든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깨달음은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산과 나무가 좋았다. 요즘이야 20대도 SNS에 등산 사진을 올리며 자랑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무렵에는 등산을 즐긴다고 하면 할아버지나 아저씨 취급을 당했다. 투박한 등산화에 못생긴 등산복 입고 시간 죽이는 취미라나. 나는 결코 인생을 허송세월하려 산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산에서 힘주어 걸으며 건강한 땀을 흘리러 갔다. 나의 진심을 설명해 주어도 친구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애늙은이, 꼰대 취향이라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그래도 나는 산에 갔다. 내가 좋은 것은 좋은 것이었다. 타고난 천성은 바꿀 수 없기에.


고막이 욱신거리도록 베이스를 울려대는 클럽이나, 눈 시린 네온 불빛 거리는 나와 맞지 않았다. 사람이 만든 아름답지 않은 풍경은 반지하 방에서 마주하는 회색 시멘트 바닥으로도 충분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누릴만한 여가는 단연 산이 으뜸이었다. 산에는 진실된 녹음이 있고, 구름에서 쏟아진 비가 모여 흐르는 계곡이 있었다. 노래방 TV 화면에 배경으로 깔린 가짜 절경과 근원부터 달랐다. 설악산의 개울에 발을 담그면 진짜 낙엽이 발목 주위를 돌아나가고, 서늘한 한기가 신경을 타고 올랐다. 산은 내가 바라던 생생한 세계였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지쳐있었다. 대학 학점은 낮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으며,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생활했다. 성인이 되면 근사한 인생을 살게 될 줄 알았으나, 나는 여전히 의존적이었다. 중요한 삶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더구나 내가 속한 대한민국은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빨랐다. 다이나믹 코리아, 아파트값은 로켓처럼 치솟았고, 전세라는 제도도 월 25만원 짜리 원룸에 살고 있던 나에게 너무나 큰돈처럼 느껴졌다. 아아, 어른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토록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나이를 먹고 제 자리를 지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나는 숲에서 고요히 수십 년을 버틴 나무를 만나면 손으로 만져보았다. 철갑 같은 껍질을 두르고 있어도 속은 부드러운 나무, 그리고 그 나무는 조그만 싹에서 시작하였다. 엄지손톱보다 가녀린 싹에서 하늘을 가리는 우듬지를 뻗기까지 나무는 치열하게 살았다. 


숲은 얌전하지 않다. 느닷없이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아 작은 스침에도 불꽃이 일기도 한다. 늦여름에는 태풍이 몰아친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구멍이 난 듯 물벼락이 쏟아진다. 땅 아래에서도 경쟁은 계속된다. 아카시아와 칡덩굴, 참나무가 뿌리를 확장하려 침묵의 투쟁을 벌인다. 숲의 아름드리 나무는 그저 자라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햇빛을 흡수하고, 소나기를 빨아 먹으며 살아남았다. 나무는 불평하는 법도 없이 땅을 움켜쥐고 새순을 틔운다. 나는 나무의 강인함이 좋았다.


숲은 나에게 삶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나무처럼 수백 년을 살아가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이름 모를 풀처럼 한 해를 살더라도 셀 수 없는 씨앗을 뿌려 살아남는 종도 있다. 단풍나무는 헬리콥터 날개처럼 생긴 씨앗을 바람에 날려 번식한다. 반면 앵두나무는 달콤한 열매로 새들을 유혹한다. 숲에는 정답이 없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모두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다.


숲과 달리 내가 사는 인간 세상에는 정답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고등학교 입시철에는 대학별, 학과별 순위표가 게시판에 걸려있었다. 선생님들은 상위권 대학에 갈수록 더 나은 인생이 보장된다고 가르쳤다. 학생들은 입시성공을 종교처럼 믿으며 달렸다. 대학에 와서는 소득을 기준으로 직업의 순위 같은 것이 나뉘어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도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성공이 아니라고 했다. 또 그다음에는 결혼정보회사에서 우수한 배우자로 분류될 수 있는 조건들이 부모님 재산, 아파트 소유, 차량 등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정답 같은 인생을 살면서 성공하기란 매우 어렵고 까다로웠다.


반면 숲에서는 어떠한 인간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층층나무 옆에 생강나무가 있다고 해서 비교당하지 않는다. 숲에서 모든 존재는 동등하다. 숲에서 찍힌 내 사진은 다른 배경에 있을 때보다 한결 편안해 보인다. 느슨한 미소에 이완된 포즈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숲에서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무장해제 되어 버린다. 


한국은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 역동적이고 바쁜 나라이지만,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아름다운 숲을 보유한 나라다. 나는 때때로 사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지면 숲을 찾는다.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를 잠시 끄고, 새소리를 듣고, 바람을 맞는다. 그러면 다시 살아갈 힘이 난다. 


나는 크고 작은 상처에 아파하는 사람을 만나면 조심스레 숲을 권한다. 굉장한 효과가 있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다만 다녀오면 분명히 좋을 거라고, 전보다 기분이 한결 나아져 있을 거라고 말씀드린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그리고 그중 일부가 숲을 찾는다. 다녀온 분들은 한결같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나는 손사래를 친다. 말만 했을 뿐 실제로 한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숲이 받아야 할 인사를 내가 받은 셈이다. 그 인사를 숲에게 돌려주려 한다. 나는 다시 숲으로 간다. 나도 모르게 웃을 수 있는 초록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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