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시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절제와 통제된 결핍 아닐까
어린이는 새 소식과 유행에 민감하다. 오늘은 유명 연예인이 마약을 했다며 마약 중독자 특유의 금단 증상 동작을 교실에서 따라 했다. 어디서 그런 걸 알게 되었냐고 묻자 유튜브와 짧은 동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SNS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가르치는 요즘 아이들은 종이 신문이나 주간지 같은 전통적인 언론 매체에서 정보를 얻지 않았다. 초임 발령을 받은 2009년만 해도 학급에 지상파 3사의 야간 뉴스를 보는 집이 꽤 있었다. 이미 세상에 유튜브라는 사이트가 존재했지만, 초등학생이 개인 단위로 동영상 촬영 및 재생을 고화질로 구현할 고급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것이 흔치 않았다. 대용량 데이터 요금제도 비쌌다.
불과 십 수년 차이이지만 현재 교육 여건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지금은 스마트폰 성능이 상향 평준화 되어 어지간한 보급형 스마트폰 성능이 과거 플래그십 모델을 능가한다. 또한 알뜰폰도 보편화되고, 학교 내부에 와이파이 망이 구축되어 있어 데이터 사용에 부담감이 적다. 누구나 정보통신 서비스를 손쉽게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어쩐지 나는 요즈음의 교육 환경이 때때로 과유불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족한데 나는 왜 불편한 걸까.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이다. 나는 최근의 과한 편리가 학생들의 자발성이나 도전 욕구를 감소하게 만드는 요인은 아닐까 하고 고민 중이다.
'풍족함'이 불러온 문제점
요즘 학교는 황금빛으로 익은 논만큼이나 여유롭고 넉넉하다. 적어도 공교육이 이루어지는 초등학교에서 물자의 결핍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급식에서는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이 양껏 제공되고,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학습 준비물 예산도 마련되어 있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수업이 있다고 해도 학교에 비치된 장비가 있으니 개인 기기가 없어도 무방하다.
이렇게나 훌륭한 풍족함의 어떤 요소가 교육을 힘들게 하는 걸까. 내가 관찰한 바로는 풍족함에 길들여진 인간은 자기 자신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아이들이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 케이크는 잘 먹어도, 국산콩 발효장 명인 된장으로 끓은 두부찌개는 죄다 남긴다. 아무리 영양 이론 수업을 하고 양질의 음식을 권해도 선택지가 열려 있으면 아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자극적이고 해로운 음식에 먼저 젓가락을 댄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선진국의 비만 인구 증가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인류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보통의 인간은 식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일생의 목표였다. 인간은 허기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고열량 식품을 선호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이들은 먹고도 남을 식량이 있음에도 자극적인 음식을 계속해서 살이 겹겹이 쌓이도록 섭취한다. 전쟁 중에 사망하는 사람보다 과식으로 인한 각종 합병증으로 죽는 사람이 통계적으로 훨씬 많다.
교육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은 결국 민주시민성과 문제해결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삶의 목표를 세우고 정보를 습득하고 해석하며 실천하고 반성하는 일련의 것들이 모두 교육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삶을 편리하게 살아가라고 만든 스마트폰이 학습자의 성장을 가로막는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알고리듬을 따라 숏폼 영상을 넘겨 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고, 도박의 원리를 차용해 어린이의 도파민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비디오 게임은 정교하기 그지없다.
최근 학교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의 상당 부분은 '과잉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SNS와 스마트폰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음식을 너무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아서 아이들은 아프고 힘들다. 한국 전쟁을 겪은 어른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이야 말로 절제와 통제된 결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쉽게 말해서 백 투 베이직,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우리 반은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 15분 간 아침 독서를 한다. 나도 컴퓨터를 하거나 공문을 처리하지 않고 같이 책을 몰입해서 읽는다. 사소한 차이지만, 선생님이 독서에 동참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교 도서관에 같이 가서 책을 고르고 얘기하는 것도 요령이다.
나는 수업 시간에 스마트 패드에 필기를 하는 것보다 종이 교과서와 노트에 내용을 적도록 유도하는 편이다. 편리함을 기준으로 삼으면 스마트 패드가 월등하다. 여러 필기구 없이도 스마트 펜과 패드만 있으면 여러 효과를 내는 필기가 가능하고 정보 가공과 공유도 쉽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걸리고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연필을 깎아 글씨를 쓰고, 중요한 내용을 볼펜이나 형관펜으로 표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다양한 소재의 필기구를 직접 오감으로 다루어 보는 편이 감각 교육에 좋고, 연필 글씨가 필기 지도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프라인 필기가 눈에도 부담을 덜 준다.
어차피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SNS로 지식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학교 밖에서도 아이들이 이미 하고 있다. 학교 국어 수업에서라도 클래식하게 보고서와 잡지, 신문, 단행본 도서를 이용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검색은 정답에 가까운 내용이 즉각적으로 도출되지만, 오프라인 자료 수집과 해석은 두뇌를 훨씬 더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년 게임과 SNS 중독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적절한 제약이나 통제 없이 방치된 스마트폰이 얼마나 쉽게 아이들의 뇌를 잠식하는지 피부로 느낀다. 학부모님께도 학교에서의 아이 스마트 워치 사용을 지양해 주십사 부탁드린다. 즉각적인 반응이나 보상이 주어지는 기기는 필연적으로 아이의 주의력을 빼앗는다.
디지털 기기 자제는 아이의 의지대로 잘 안 된다. 아이와 연락 수단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통화와 문자만 되는 소위 '공부폰'이 낫다. 꼭 휴대전화가 고급 모델이 아니어도 된다. 결핍이라고 모두 안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학부모님께서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감당할 수 없는 과잉보다 감내할 만한 결핍이 훨씬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울 것이다.
간단한 운동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아이들이 받고 싶은 선물 1순위가 '비디오 게임기'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시면 몇 시간이고 TV 앞에 앉아 게임 조종기를 누르기도 한다. 플스와 엑스박스, 닌텐도 스위치로 대표되는 게임기는 제품 라인에 따라 가격이 차이 난다. 저렴하게는 삼십만 원 대부터 고가 모델은 칠십만 원 대에 이른다.
어떤 부모님들은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될까 봐, 혹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으로 여겨질까 봐 게임기를 사주신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시대에서 아이들은 선생님과 부모님의 눈 밖에서 어떻게든 게임을 접한다. 물자가 흔한 시대에 게임기가 없다고 해서 가난한 집 취급 받는 일은 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굳이 아이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 전문 게임기와 초고화질 TV를 구매할 필요가 없다.
아이의 자신감과 건강, 즐거움을 위한다면 차라리 공짜인 맨손 운동이 훨씬 낫다. 스키나 테니스, 골프 하물며 자전거만 해도 돈이 들지만 맨손 운동은 무료다. 걷기, 뛰기, 철봉, 팔 굽혀 펴기, 요가, 스트레칭은 초등학생도 손쉽게 할 수 있는 맨몸 운동이다.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몸에 부담도 크지 않다.
시골에서 근무하는 나는 천연잔디가 깔린 학교 운동장을 자주 걷는다. 학교 골프연습장 옆에 있는 감나무에서 대봉 감도 따 먹고 철봉과 구름사다리에서도 즐겨 논다. 얼마 전에는 우리 반 아이에게 철봉에 두 다리를 걸고 매달린 상태에서 거꾸로 역회전하여 바닥에 착지하는 기술을 배웠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이들도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하면 굉장한 희열을 느끼는 듯 얼굴이 핑크빛으로 물든다.
철봉과 산책로는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50-60년대에도 있었을 것이며, 일제강점기에도 존재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 학교 아이들은 서핑과 골프, 배드민턴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제일 많이 하고 만만한 운동은 달리기와 철봉이다. 나는 골프 대신 달리기와 철봉 운동을 한다고 해서 결코 결핍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강력하고 효율적인 운동이라고 믿으며 그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자극
엉뚱한 상상이기는 하지만 나는 전쟁통에도 천막 학교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었는지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 최악의 조건이기는 하지만 글자를 새길 수 있는 간이 칠판과 조잡한 품질의 책과 연필만 있어도 최소한의 교육은 가능했을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상호작용이며 교사와 학생이 끈끈한 관계로 맺어져 있다면 맨몸 운동과 토론, 셈하기, 독서와 짧은 글쓰기 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에서 부족함 없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지하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 교육은 미래의 근간이며 한국은 사람의 힘으로 발전한 역사가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더 건강한 자극을 주고 싶다. 아이들의 성장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자극 말이다.
학교가 '세속의 성소' 기능을 일부 수행해야 한다면 나는 단순하고 충만한 배움을 추구하고자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41개 주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대기업 메타가 의식적으로 어린이의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주장하며 메타를 상대로 소송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현장 교육자로서 심정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메타 고소'의 의의에 동의한다. 영양 과잉은 식물을 죽게 만들고, 과한 자극과 물자, 서비스도 아이 교육을 망친다.
내가 추구하는 교실은 평범하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나란히 가서 책을 고르고, 단정하게 빌려온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을 쓴다. 수업 중에는 휴대전화를 끄고, 충분히 이야기하고 몸을 움직여서 하는 활동도 꾸준히 한다. 제철 식재료를 아끼지 않은 급식을 맛있게 골고루 먹는다. 축하할 일이 생기면 하이 파이브를 하고 가끔 춤도 춘다.
올드하고 식상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최첨단 교육과는 거리가 멀고 결핍이 발생할까 걱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통제되지 않는 과한 자극보다 차라리 단단하고 안정적인 보통의 방법 혹은 통제된 결핍이 낫다. 몇 년에 한 번씩 학급의 아이를 심리상담 센터에 보내 전문가 상담을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