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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May 02. 2024

골프장 스파이와 백드롭

골프를 치지 않지만 골프장을 낀 숙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양양군 손양면에 자리 잡은 '설해원'이라는 곳이다. 유령의 집 같은 양양 공항을 지나 설해원 부지에 들어서면 시선 끝까지 골프장과 솔숲이 한눈에 보인다. 골프를 전혀 칠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45홀에 달하는 드넓은 코스를 직접 목격하고 나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마치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라도 최신형 전략폭격기의 유려한 라인에 흠칫 놀라게 되는 것처럼.


바로 옆동네인 현북면 하광정리에서 근무하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휘황찬란한 리조트가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설해원'은 온천과 야외수영장, 별장 마을 그리고 기타 부속시설을 갖춘 고급 숙소였다. 나는 평소 골프장을 '녹색사막'이라고 불러왔다. 산림이 국토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골프장을 건설하려면 숲을 밀어야 한다. 숲을 반듯한 잔디로 바꾸어 버리는 과정에서 야생생물의 서식지가 파괴된다.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지사. 골프장은 초록색 사막인 것이다.


보통 18홀을 기준으로 대략 30만 평의 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설해원은 마흔다섯 개의 홀에 펜션, 온천, 수영장 등 딸린 시설이 여럿이므로 그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최소한 마을 두서너 개는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인 것이다. 잔디 관리에 소요되는 물과 농약을 떠올리면 차라리 스크린 골프장에 대고 만세를 외치고 싶다. 나는 적진에 잠입한 스파이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체크인했다.


설해원에 머물 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온천과 조식, 면역공방(힐링 찜질방이라고 하는데 이용하지는 않았다)을 포함한 1박 2일 패키지 숙박권을 선물 받았다. 나에게는 아내의 언니의 남편, 즉 동서 형님이 있다. 형님은 S전자에서 특별 승진으로 부장에 오를 만큼 성실하고 유능한 분이다. 형님이 일을 잘해서 포상 개념으로 국내 여행 이용권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형님네 가족은 텍사스에 3년 간 머물고 있으므로 우리 가족에게 여행권을 선물로 준 것이다.


내가 육아휴직 중이라 외벌이인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현재 우리의 수입으로는 황금빛이 도는 듯한 리조트 풀코스를 즐기기 힘들다. 두 자녀와 맛있는 밥을 먹고, 신선한 커피 원두를 사 마실 정도가 육아휴직 가정의 적정선이다. 처형과 형님은 매년 우리 경제력으로는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물건이나 서비스를 잘 챙겨준다. 우리도 보답해야 하는데 언제나 받는 것이 훨씬 많다. 수입의 문제라기보다 마음 씀씀이의 차원이겠지.


숙소의 로비에는 인류 문명의 진화를 다룬 비디오 아트가 연속 재생되고 있었다. 순수에서 유기물로 다시 유기물로 무환 순환하는 우주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었다. 딸과 나는 어두운 공간에서 비디오를 관람하는 느낌이 좋아서 세 번이나 영상이 돌아갈 때까지 반복해서 지켜보았다.


노천 수영장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이배 작가의 대형 스트로크 작품이 걸려있었다. 먹색의 농담과 붓질의 흔적으로 에너지를 담아냈다. 여러 각도로 보아도 여운이 남았다. 리조트 곳곳에 설치된 도자기와 오브제도 수준급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그림과 조각을 감상했다. 예술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 숙소가 상위 등급이라는 사실은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규칙이다.


나는 1박 2일 동안 가명으로 살았다. 예약자가 형님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체크인할 때도, 온천에 들어갈 때도, 조식을 먹을 때도 Y라고 이름을 댔다. 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글을 쓸 때도 필명을 따로 쓰지 않는다. 이름을 빌려온다고 해서 정체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내 입으로 타인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참으로 어색했다. 잠시 그림자를 빌려온 것처럼 나는 Y라는 이름을 발음하는 연습을 했다.


설해원에서는 불편한 것이 없었다. 딸과 미디어 아트 작품을 서서 보고 있을 때 청소하는 여사님이 활짝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고객님, 작품 좋죠? 편히 앉아서 감상하세요. 다른 분들은 스마트폰에도 담아 가시더라고요." 친절한 여사님은 자주 뵈었지만 도슨트처럼 말하는 분은 처음이었다. 객실에서는 전화로 침구류를 부탁하자 폭신폭신한 이불 세트가 곧장 배달되었다. 모두들 온화하게 웃었고 공손한 말투를 사용했다. 여기는 안전해요, 당신은 환영받는 답니다. 미움과 질시, 괴로움은 멀리 어딘가로 보내버린 듯한 세계. 인생의 어둡고 부정적인 색채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래서 골프장을 좋아하는 건가. 생활의 무게감이 덜어진 반중력의 세계에서 멀끔하게 입은 사람들이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리조트 지하에는 온천과 찜질방(면역공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런저런 테라피 서비스가 딸려있는 듯했다)이 제법 번듯하게 운영 중이었다. 아내와 나는 패키지상품에 포함된 면역공방과 온천을 모두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면역공방은 나이 제한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설해원의 주요 타깃 고객은 철저히 어른이었다.


면역공방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해당 금액만큼 다른 시설 이용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아이들 사우나 비용은 추가로 지불했다. 면역공방 이용요금은 투숙객 1인 기준 41000원. 예상을 상회하는 액수였다. 나는 설해원 직원들이 왜 그렇게나 손님에게 친절하고 나긋나긋한지 피부로 이해할 수 있었다. 1시간 30분짜리 이용권에 그만 금액을 치러야 한다면 적국의 스파이라도 격하게 위로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온천은 이용객이 많지 않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샤워기 수압이 충분히 강해서 머리와 등에 물줄기를  실컷 맞았다. 나는 강한 물살이 몸을 두드리는 느낌을 좋아한다. 탕의 규모나 물 온도도 적당했다. 차가운 물은 시리지 않을 정도로 시원해서 몸을 담가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온탕과 열탕의 온도 차이도 합리적이었다. 나는 탕을 번갈아 가며 몸을 담갔다. 명태만 얼리고 녹여야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도 뜨겁고 차가운 온천수를 오가면 기분이 좋아졌다.


야외와 연결된 노천탕이 온천 사우나의 메인 스테이지인 듯했다. 누워 잘 수 있는 선베드도 비치되어 있고 스팀 사우나도 나쁘지 않았다. 노천탕 사이드에 몸을 반쯤 담그고 앉았다. 동해에서 불어온 바람에 솔숲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걸리는 것 없는 맑은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고개를 들자 구름은 하나도 없었다.


사우나를 위해 별도의 준비물은 필요하지 않았다. 수건과 샤워타월이 수 백장씩 쌓여 있고, 로션과 스킨도 자체 어메니티로 채워져 있었다. 샵에서 따로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 끌리지는 않았으나 품질을 염려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설해원에서 제작하고 판매하는 샴푸와 바디워시, 트리트먼트 역시 흠잡을 데 없었다. 무엇보다 온천수가 매끄러워 사우나 마니아 분들은 숙박이나 골프장 이용과 무관하게 할인가로 이용해도 좋을 듯했다.


딸들이 모두 엄마를 따라 여성 사우나로 갔기에 나는 자유였다. 한가하게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냈다. 모든 것이 풍요롭구나, 이곳에서 나는 결핍의 낌새를 조금도 찾기 힘들었다. 노천탕에서 눈을 감고 있다가 설해원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고액이라는 진입장벽만 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알아서 다 맞춰드립니다.'


여기는 사유지의 유토피아. 충분한 비용만 지불하면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로 고객의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곳이었다. 다음날 조식만 해도 그랬다. 우리 가족은 '곧은 식당'에서 황태 해장국과 소고기 미역국, 얼갈이 해장국을 시켰다. 골프장 시세답게 한 그릇에 24000원이나 했지만 정말 맛있었다. 기본적으로 황태나 소고기가 아주 넉넉히 들어가고 야채도 싱싱하고 푸짐했다. 국물에서는 감칠맛이 돌아서 아이들도 잘 먹었다. 창밖으로 그림 같은 골프홀에서 사람들이 싱긋싱긋 웃으며 클럽을 휘두르고 있었다. 클럽헤드에 정확히 맞은 골프공이 반짝이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여유 있게 아침 식사를 하며 바라보기에 결코 심심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두 가지 생각이 두 마리 뱀처럼 몸을 배배 꼬며 떠올랐다. 부자로 산다는 건 진실로 편리하겠구나, 기업이 소유했다고는 하지만 산과 숲과 하천이 이렇게나 광범위하게 훼손되어도 무방한 걸까. 기후 변화를 막기 힘든 배경에는 지구가 일종의 공공재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태평양에 거대한 부유 쓰레기 섬이 있지만 어느 국가도 책임지고 치우지 않는다. 아마존이 불타고, 해수의 온도가 상승하여 바다가 흡수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이 줄어든면 인류 모두가 피해를 본다. 그렇지만 지구 차원으로 흩어지는 대기 오염과 해양 오염은 따져 물을 수 있는 대상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골프장을 탄도미사일로 폭격할 수는 없다. 폭력적인 데다가 순전히 판타지다. 파괴된 잔해는 또 다른 폐기물과 쓰레기가 될 것이므로 나쁜 방안이다. 세상에는 진지한 골프 러버가 존재하고, 리조트와 컨트리클럽의 수도 무수하다. 다들 기쁜 마음으로 근면하게 골프를 연습하고 운명을 걸고 골프 사업을 수행한다. 그분들의 세계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타협점은 찾을 수 있다. 내가 개인차원에서 골프장 및 관련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일종의 미약한 소비권을 행사하여 산업의 규모를 낮추는 방안이다. 가끔 문제의식을 담은 문장을 쓰고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우리 가족은 세심하게 조성된 정원을 지나 가로수 길을 걸었다. 화초에서는 생기가 돌고 나무는 쑥쑥 자랐다. 설해원은 주말을 만끽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있었다. 그러다 골프 라운지 입구에서 '골프장 스파이'의 흔적을 발견하고 말았다. 호텔 입구에 벨보이가 서 있듯 자동차가 정차하는 곳에 직원 한 분이 서 계셨다. 옆 기둥에 재미있는 글씨가 써져 있었다. 골프 백드롭 장소, 트렁크만 열면 직원이 골프백을 내려주는 곳이었다.


근사한 서비스임에 틀림없지만 '골프 백드롭'은 환상적인 디스 문구 아닌가. '골프 백 드롭'도 아니고 '골프백 드롭'도 아니며 무려 '골프 백드롭'이다. 백드롭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로레슬링에서 상대를 뒤로 내리찍어 허리를 작살내는 공포의 피니셔 기술.


나는 직감했다. 설해원 '골프 백드롭 장소'를 레터링 작업한 분은 분명 지구와 환경을 사랑하는 골프장 스파이일 것이라고. 차마 골프장을 통째로 뽑아 동해에 패대기칠 수는 없으니 간절한 소망을 담아 '골프 백드롭'을 구현한 것이다. 이름 모를 골프장 스파이의 혁혁한 전과를 보며 나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 멋있는 사람. 골프장을 백드롭시키는 경지에 이르기는 힘들겠지만 나도 내 돈 내고는 골프장을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울트라 메가 슈퍼 골프 백드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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