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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Nov 30. 2023

인공지능 교과서 도입, 그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민들레> 150호 교육동향

'챗GPT놀이'


우리 반 애들하고 재미 삼아 하는 '챗GPT 놀이'가 있다. 대화형 인공지능인 챗GPT는 질문에 따라 뭐든 척척 대답을 해줘서 놀이치고는 꽤 유용하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허점을 이용한 질문을 던지고, 우리는 자주 배를 잡고 웃는다.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는 모두 한국사로, 고조선부터 한국 전쟁까지의 방대한 역사를 다룬다. 고려 역사를 배울 때 나는 챗GPT에 이런 질문을 입력했다. 


“김만수(우리 반 학생, 가명)가 안시성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를 어떻게 공격했는지 설명 해 줘.”


그럼 기막힌 답변이 돌아온다. 


“안시성 전투는 고려 시대에 일어난 역사적인 전투 중 하나이며, 당나라(당)와 고려(고려 왕조) 사이의 충돌로 발생했습니다. 이 전투는 1014년에 발생했으며, 당나라의 황제 시종(師宗)이 고려의 광개토왕을 정복하려고 한 시도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김만수는 안시성(안성, 경기도)의 지휘관으로, 당나라의 공격을 맞서 싸웠습니다. (하략)”


역사 수업을 듣기 전이었다면 '그런가?' 하며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배운 내용이니 너도나도 킬킬거리며 “이게 뭐야” 하고 웃는다. 우선 안시성 전투는 서기 645년 고구려 시대에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군대와 고구려군이 대결한 싸움이다.(고려 시대에는 이미 당나라가 멸망하고 없었다.) 그럼에도 챗GPT는 사라진 제국의 유령 군대와 맞서 싸운 우리 반 김만수 장군의 전략을 4가지로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맥락과 관련 없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마치 옳은 답처럼 내놓는 ‘할루시네이션’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챗GPT에 엉뚱한 질문을 넣고 난 후 사실관계를 바로 잡는 놀이를 하는 이유가 있다.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하는 인공지능의 허점을 짚음과 동시에, 과제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챗GPT 내용을 그대로 베끼면 어떤 참담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미리 체험해보기 위해서다.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교육부는 지난 8월 말,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개발 지침」을 발표했다. 인공지능으로 학생의 학습 상태를 진단, 분석하여 최적의 학습 경로 및 콘텐츠를 추천할 수 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25년 도입을 목표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여러 민간기업이 뛰어들었고, 주식 시장에서는 에듀테크 테마주가 형성되어 자본이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학급 아이들의 '디지털 디톡스'를 추진하고 있는 나는 이 계획안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숏폼과 릴리스, 틱톡 등 짧고 자극적인 영상물과 SNS가 아이들의 뇌 속 도파민 시스템을 교란하는 세상이다. 학교의 지향점은 디지털과 멀어지게 하고 운동, 독서, 글쓰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천문학적인 국고를 투입하여 개발한다는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가 우려스러웠다. 사실 나는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개발 소식에 알트스쿨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알트스쿨은 너무나도 유명한 '미래교육의 실패 사례' 중 하나다. 대안적 교육을 표방하는 이 학교는 스마트한 인재들이 넘쳐난다는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되었다. 데이터 과학자이자 구글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맥스 벤틸라는 2013년 학교를 만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하여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개인형 맞춤학습은 알트스쿨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기존 학교의 경직성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학교의 등장에 열광했고, 알트스쿨은 3년 만에 1억 달러가 넘는 투자금을 끌어모았다.(투자자 명단에는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가에서 연령 별로 정해놓은 커리큘럼은 구시대적이다” “각 학생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흥미와 특성에 따라 개인별 커리큘럼을 제공하겠다.” 정말 멋지고 달콤한 말들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를 배반했다. 최첨단 기자재를 도입하고, 우수한 교사진을 배치했음에도 학습부진아들이 대거 발생했다. 10년의 시간이 흐른 2023년 현재, 알트스쿨 9개 중 5개교는 문을 닫았고, 4곳은 다른 학교에 합병되었다. 


실패 이유를 분석해보면, 처음부터 기초 학습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아서 관심사를 기반으로 무학년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예 글자를 못 읽는 사례도 있었고, 자동 맞춤법 교정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철자나 문법에 취약한 학생이 다수 나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맞춤형 개별화 수업을 내세운 이 시스템이 그런 수준 차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스템 분석을 통해 학생의 특정 교과 수준이 형편없다고 진단할 수는 있어도 학생의 자율성이 컸기 때문에 회피하면 그만이었고, 흥미가 안 생긴다는 이유로 추가 학습을 받지 않는 선택도 가능했다. 자유와 방임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나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 시즌을 겪으면서 알트스쿨의 실패를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반강제로 디지털 기반의 교육을 했던 시기였다. 갑작스러운 전염병으로 사람이 모일 수 없게 된 시기에, 학교는 ‘온라인 수업’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가동했다. 오프라인에서만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와이파이가 설치되지 않아 개인 휴대전화 요금제를 데이터 무한으로 바꾸고, 무선 마이크와 카메라를 구입했다. 


실시간 쌍방 회의 서비스인 ‘줌zoom’을 이용하여 조례를 하고, 수업은 실시간 화상과미팅  미리 촬영한 영상을 섞어서 진행했다. 다행히 우리 반 학생 모두의 가정에 디지털기기가 갖춰져 있어서, 물리적 환경이 따라 주지 않아 수업을 못 듣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온라인 수업은 하루하루 전쟁이었다. 9시 10분까지 모든 학생을 컴퓨터 앞에 앉히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화면 앞에 나타나지 않아 열 번 이상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학생, 온라인으로 접속만 하고 비디오와 오디오를 차단하는 두더지 모드의 학생…. 갖가지 어려움이 실시간으로 발생했다. 


수업의 질도 성에 차지 않았다. 오프라인 수업 준비의 두 배 이상 시간을 투자하여 영상을 제작하였지만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들의 학습 상황을 제때 확인하기 힘들었다. 과제를 제출하고 피드백하는 과정도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협동 수업도 어려웠다. 3월에 등교를 못 하다 보니 교사나 학생들이 서로 알아갈 기회가 없었다. 감정적으로 끈끈하고 믿음이 쌓여도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조그만 화면 속 작은 얼굴만 비춘 사이에서 ‘우리는 한 팀’이라는 소속감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교육은 돌봄의 기반 위에 이루어진다는 상식도 재확인했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 중 일부는 밥도 제때 챙겨 먹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뭘 먹었는지 물어보면 편의점에서 사온 삼각김밥과 후랑크 소세지 봉지가 화면에 띄워졌다. 보호자 없이 혼자 집에 남은 아이들은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교육의 핵심은 교육 주체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이다. 이론으로 배워서 알고는 있었지만 두 눈으로 생생하게 관찰한 ‘온라인 수업 시기의 폐해’는 끔찍했다. 강박적으로 중독 현상을 야기하는 SNS와 동영상 플랫폼은 몹시 위험했다. 온라인 수업 중에 노트북 아래로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들통난 사례는 일일이 손꼽기 힘들 정도다. 디지털 중독의 대책은 ‘차단’이다. 그런데 버젓이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고, 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을 들으라고 하니 아이들도 참 막막하지 않았을까. 


시력이 나빠지는 사례도 속출했다. 온라인 수업 당시 모든 수업과 출석 체크, 과제 제출 및 피드백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이뤄지니, 자연스레 눈에 부담이 갔다. 스마트폰은 아이들의 쉬는 시간마저 잡아먹어 버렸다. 겨우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유튜브나 게임 앱을 켰다. 거실이라도 한 바퀴 돌거나, 집 밖에서 줄넘기라도 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디지털 세상의 유혹이 너무 컸다. 


온라인 수업은 내게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했던 암흑의 시기로 남아있다. 알트스쿨이 그랬듯, 우리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다. 값비싼 노트북과 고성능 스마트폰은 아이들의 성장에 이바지하지 못했다. 코로나 시대의 차선책이었다고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뼈아픈 차선책이었다. '코로나 키즈'라 불리는 아이들은 양질의 상호작용과 편안하고 믿을 만한 관계라는 면에서 큰 결핍을 겪었다. 


친구와 어깨동무하고 등교하는 아침, 선생님의 설명이 잘 이해가 안 되면 슬쩍 짝꿍 책을 보고 베끼며 힌트를 얻거나, 친구에게 문제 푸는 방법 좀 가르쳐 달라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아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점심 먹고 학교 숲을 가볍게 걷거나, 운동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다가 화단에서 기어 나온 지렁이를 잡아 들고 노는 즐거움은 더없이 훌륭한 사회성 함양 프로그램이었다. 주기적으로 산책을 하면 사계절이 변하는 모습이 다 드러난다. 자연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느끼면 점심 급식에 올라오는 메뉴가 바뀌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바뀌며 계절 별로 기온 차가 나는 이유도 어렵지만 유추가능하다. 


미술시간에 찰흙이나 유토를 가지고 동물농장 만들기는 평범해 보이지만 얼마나 흥미진진한 활동인가. 사슴뿔은 단풍나무에서 꺾어온 잔가지를 꽂아 넣고, 양털은 화단 잔디를 살짝 뜯어 붙여 넣는다. 기린, 원숭이, 코끼리 온갖 동물들이 즉흥적으로 탄생한다. 여러 재질을 다루어 보며 질감 차이를 느끼는 경험은 값지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생각이 있고 삶의 방식이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함께 모여 생활하다 보면 각각의 개성과 조화로움, 그리고 치열함과 피곤함을 몸으로 흡수할 수 있다. 특히 초등학교는 기초 지식과 기본 생활 습관을 함양하는 곳으로 이 시기에 아이들은 삶의 토대를 쌓는다. 


알고 보면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미래에 어떤 기술 등장하고 환경이 바뀌더라도 본질만 알고 있으면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꾸려져 있다. 학교가 보수적이고 투박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마도 이 탓이리라. SNS 과잉의 시대에 개인이 건강한 도파민 시스템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더구나 어린 학생은 외부 자극에 취약하다. 이런 시점에 교육부의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개발 소식은 우려스럽다. 이미 학교마다 비치되어 있는 각종 스마트 장비와 보관함, 완벽한 무선 와이파이망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들이 말하는 미래교육


교육부 보도자료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교육청 지정 연구학교 연구 보고서처럼 인공지능 교과서 도입의 긍정적인 효과만을 나열한 문장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 자료를 제시하고, 교사에게 AI보조교사 서비스를 제공하여 학생들의 학습 정보 제공하고, 맞춤형 수업 설계가 가능하다고 했다. ‘객관적 정보’에 기반한 소통 강화가 특징인 학부모 참여 기능도 눈에 띄었다. 이른바 ‘하이터치 하이테크(High Touch High Tech)'다. 


그렇지만 왜 내게는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이 알트스쿨의 변형으로 다가오는 걸까. 교육은 산업현장과 달리 투입이 곧바로 산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동차 공장에서는 신형 자동 조립 로봇의 도입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만, 학교에서는 VR 교육용으로 갖다 놓은 메타 퀘스트3가 오락기로 전락할 수 있다. 


『다시, 책으로』의 저자인 인지심리학자 매리언 울프는 종이책을 읽을 때와 디지털 매체를 읽을 때 인간이 뇌를 사용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종이 재질의 매체를 읽을 때는 ‘깊이 있는’ 뇌의 부위가 가동되는 반면, 디지털 매체에서 정보를 습득할 때는 ‘훑어보기’ 회로가 활성화된다. 훑어보기 회로가 무조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요즘 아이들에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계에 익숙하므로 균형 잡힌 아날로그 경험이 더 필요한 세대다. 


세계 각국에서도 교육과 기술의 원만한 조화를 위해 갈등 및 중재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2023년 8월 말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디지털을 활용한 교육을 줄이는 대신 종이책을 활용하거나 독서, 글쓰기 연습에 중점을 둘 것을 교사에게 당부했다. 국가의 디지털화된 교육 접근 방식이 학생의 학습 수준 저하를 가져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발간한 「2023 세계 교육 현황 보고서 - 교육 분야에서의 기술: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이어진다. 보고서의 핵심은 교육에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할 것을 긴급히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IT를 비롯한 각종 기술이 교사가 주도하는 대면 교육을 완벽히 대체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41개 주 교육당국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IT 기업 ‘메타(MET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화제가 되었다. 메타가 의식적으로 중독성이 강한 구조로 콘텐츠를 제시하여 어린이의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 소송의 근거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기술의 진보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언제나 생존과 경쟁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신기술 개발에 자원을 아끼지 않았던 역사가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신기술을 어떻게 어떤 정도로 교육 활동에 적용할 것인가는 매우 섬세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인공지능은 기존의 데이터를 학습해서 가장 그럴싸한 결과값을 도출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결과물을 스스로 평가하지는 못한다. 정보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거나 정교한 추가 질문으로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비판적 사고력과 메타 인지는 성찰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특히 초등학생에게 이러한 능력은 디지털 화면보다는 종이책 독서와 토론, 글쓰기로 더 잘 함양할 수 있다. 


나는 동료 선생님 두 분과 협력하여 사진 전시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강릉에 거주하시는 사진 작가분을 초청하여 사진 강의를 듣고, 필름 카메라로 출사도 세 번 나가고, 괜찮은 작품을 현상하여 대관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도 연다. 물론 학생 작가들이 직접 작품 설명을 단 하드커버 도록 또한 제작 예정이다. 소통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종이 위에 연필 흑연을 묻히고, 침을 튀겨 가며 진행될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깊이 있는 아날로그 역량을 기른 인간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세계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갈수록 디지털화 되어가는 세계에서 적어도 학교만이라도 오감이 살아있는 리얼 월드로 지켜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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