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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 하는 남자

2018 좋은생각 기고

by 이준수

아내는 면순이 저는 고기돌이입니다. 찜닭을 시키면 서로 웃는 얼굴로 닭다리와 당면을 양보하는 훈훈한 부부이지요. 7년이 넘는 연애 기간과 3년이 다 되어 가는 결혼 생활 동안 식성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잘 먹고 잘 소화시키며 사는 동안 첫째도 낳고, 작년 12월에는 둘째가 들어섰습니다.


아이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한없이 기뻤습니다. 아내는 공복 상태에서 약간의 메스꺼움을 느낄 뿐 첫째 때와 달리 입덧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한겨울에 수박을 사러 온 동네를 돌아다녔던 2014년을 떠올려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 차가 움직이지 못하던 날, 계획했던 외식 대신 중국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로 하였습니다. 아내는 늘 그런대로 짬짜면을 골랐고 제가 선택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볶음밥이야 탕수육이야?”


탕수육을 단품으로 즐길 정도로 고기를 사랑하는 저에게 나머지 선택지라 해봐야 볶음밥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습니다. 바삭한 튀김옷에 휩싸인 돼지고기를 떠올리는 순간 구역질이 일었습니다. 갑자기 목을 내빼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저를 괴이쩍게 여긴 아내가 걱정스레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짬뽕.”

“나는 짬짜면 시켰다니까. 자기 음식 말하라고.”


아내가 메뉴를 되물었습니다. 저는 뜨겁고 빨간 국물에 담긴 굵은 면발이 진심으로 먹고 싶었습니다. 그 전에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낯선 욕망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힘주어 짬뽕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깔깔 웃으며 후회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혹시나 짬뽕을 받아들고 먹기 싫어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완전한 기우였습니다. 주문하기 전 상상했던 얼큰하고 시원한 짬뽕국물의 느낌이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입에서 호로록 거리는 면도 어찌나 맛있던 지요. 짬짜면을 뚝딱 비워내고 제 그릇을 호시탐탐 노리던 아내의 시선도 무시하고 면을 들이켰습니다.


짬뽕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딸을 재우고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 가자미 회국수와 들깨 칼국수가 생각났습니다. 더 믿기 힘든 건 치킨 가게에서 풍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견디기 힘든 메스꺼움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입맛이 변한지 삼 주째입니다. 저는 예전의 고기돌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으뜸아, 아빠가 입덧까지 하면서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왠지 라면이 당기는 구나.”




Ps-5년 전 글인데 어쩌다 발견. 이런 글도 썼구나. 오늘도 저녁은 뽀모도로 파스타. 면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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